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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Jan 04. 2022

또다시 먹구름이(02)
​브로커의 삶

내 남자 이야기 (61)

그날도 난 충무로역 근처 던킨도너츠 매장으로 향했다. 한 사장 입에서 또 무슨 얘기가 나올지, 어떻게 나를 옭아맬지 걱정이 앞섰다.

'아. 내가 지금 제정신으로 사는 게 맞나?'


한 사장. 그는 안양 금정 공단 공장에 자리한 '0 정밀' 대표이자 실질 경영주였다.

그와 나와의 관계?

그는 입버릇처럼 나에게 말했다

"김 사장, 내 나이가 58세야. 당뇨 합병증에 발톱도 썩어 들어가고 이빨은 다 빠져서 모두 틀니야. 이제 눈도 침침해 잘 안 보여. 그럼 내가 오래 살기나 하겠어? 어차피 60세 넘기기 힘들 거라고... 그럼 새끼도 없는 내가 길거리에 쓰러지기라도 할라치면 행려병자로 얼어 죽어야겠니? 나 죽으면 뒤처리 해 줄 사람은 석이 너 밖에 없어..."


그는 늘 이런 식이다. 나를 어떻게든 옭아맬 구실을 찾는 사람.

"안양 공장, 강남 집 모두 그 새끼들한테 뺏기지 않도록 정리만 잘하면 다 니꺼야. 내가 석이 너를 양아들로 생각하는 거 알잖아! 나 억울해서 그래. 조금만 도와주면 돼..."


그는 나를 '0 정밀' 부사장이라는 직함과 함께 '양아들'로 만들어 버렸다. 말로는...




한 사장을 알게 된 건 경찰 신문기자 행세하든 형님 때문이었다. 솔직히 아직도 그 형님의 실체를 정확히 모르겠다. 가끔 명동에서 만나 막걸리 한 잔 하면서 형님의 한숨 섞인 하소연만 실컷 듣다 헤어졌던 기억이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형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석아. 내가 오늘 말이야. 캬~기표만 잘 마무리됐으면 울 아우 신세 다 갚고 술 한 잔 거하게 살려고 했는데.. 그 개 같은 브로커 새끼들이 사기를 쳐서 쩐주를 안 까는 바람에 또 여의도 빌딩 한 채 날렸다...!"


그놈의 빌딩 타령. 형님은 언제나 빌딩을 지었다 무너뜨리는 말만 반복했다.

"아, 형님! 또 그놈의 빌딩 타령이에요? 좀 웬만하면 레파토리 좀 바꿔요. 지겹지도 않나! 언제까지 그 쁘로카 생활할 건데... 형수랑 애들이 뭐라고 안 해요? 형, 진짜 기자 맞아? 확 신고해 뿔라.."


무슨 인연이 이리도 흉할까! 그 형님은 경찰 신문 기자도 아닌 부동산 채권 브로커였다. 그리고 나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그가 소개해 준 사람이 '0 정밀' 한 사장이었다.


한 사장은 첫 만난 자리에서 한껏 들떠 이야기를 꺼냈다.

"김 사장, 날 아버지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도와주게"

지긋해 보이는 나이에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졌다. 그의 말, 다정다감한 그의 첫마디는 나의 마음을 슬금슬금 녹이더니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나를 켜켜이 얽히고설킨 인간 군상들 늪으로 빠져들게 했다. 또다시 먹구름이 내 인생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아니. 나 스스로 검은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던킨도너츠 매장에서 나를 맞은 한 사장은 반색을 하며 나를 맞았다. 그는 공장을 담보로 기업자금 대출을 받으면 곧바로 공장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며 대출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이번 일만 잘 되면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겠다고... 그는 새치 혀를 마르지 않도록 주물럭댔다.


사실, 안양 금형공장은 당시 약 30억 정도의 가치가 있는 규모로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고급 인력 30명이 매달려야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있는 첨단 시설들. 공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전량 수출만 했던 공장의 화려했던 시절을 이야기해 주는 사진들이 사무실과 공장 복도마다 붙어 있었다. 미국 월풀 사와의 100만 불 거래 실적, 그리고 협업 조인식 사진 등 다양한 기록이 담긴 사진들과 플래카드가 즐비했다.


'0 정밀'은 마지막으로 80만 불 수출 계약을 맺었는데 IMF가 터지면서 모든 일이 엉망으로 망가졌다고 했다. 금형틀을 만들기 위해 스웨덴으로부터 특수강철을 수입해야 하는데 달러 폭등으로 원자재 수급에 차질을 빚었다. 그로 인해 금형 제작이 어려워지면서 월풀 사에 납입기한을 지키지 못해 결국 국제 소송이 걸린 것이다. 모든 것이 중단되면서 수개월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나는 어떻게든 한 사장을 도와주고 싶었다.


한 사장과 헤어지고 난 뒤. 나는 보험 판촉물 영업을 하면서 틈틈이 주변 지인들은 물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인맥들에게 연락을 취해 공장 기업자금 대출을 받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모두 '불가'

기계 담보 대출 불가. 공장부지 담보대출 불가. 수출 실적 운영자금 대출 불가. 불가. 불가. 불가....


모든 것이 꽉 막혀버린 상태였고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0 정밀 공장 곳곳에는 빨간딱지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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