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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Jan 05. 2022

브로커로 살아간 6개월
​(인간아, 인간아...)

내 남자 이야기(62)

나는 매일같이 충무로 던킨도너츠 매장으로 향했다. 한 사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더 이상 나의 인맥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공장을 살리기 위해 대출을 알아보는 문제를 포기하자고 넌지시 건넸다. 그러나 한 사장은 완강하게 거부하며 오히려 자신의 아바타가 되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해오는 것이었다.


"자네는 겉으로 멀쩡 하잖여. 난 이빨도 다 빠져서 말도 어눌하고... 어려울 거 없어. 그냥 내가 소개하는 사람 만나서 듣고 오기만 하면 돼. 그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나한테 알려주면 판단은 내가 해."

나는 하는 수 없이 한 사장의 분신이 되어 그가 정해주는 일정대로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렇게 내가 만났던 사람들... 그들은 모두 브로커들이었다. 나는 그로부터 6개월 동안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며 비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가 알던 한 사장 역시, 그의 화려했던 과거 이력은 하나씩 무너져갔고 결국에는 노숙자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 사장은 서울 **공과대학에서 금형 분야 설계 전공을 하고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는 국내에 돌아와 지금의 '0 정밀' 공장을 경영했고, 100만 불 수출탑 수상, 우수 중소기업인 상, 국세청장상 등 내로라하는 상을 받으며 실력과 평판을 인정받았던 사람이었다. 그의 공장 벽에 즐비하게 걸려있던 상장들과 기념패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그렇게 잘 나가던 한 사장에게 위기가 닥쳤다. 아버지의 사망 후 이복형제와 유산 상속문제로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이로 인해 재산을 탕진할 위기에 처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가 터져 공장 가동이 중단된 상황이었다. 수주는 받았지만 원자재 수입에 차질이 생겨 납품 기한을 맞추지 못하게 되자 국제 소송까지 제기당한 상황. 그는 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급성 당뇨가 심해져 이가 빠지고 발가락이 썩어가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공장을 살리고자 안간힘을 썼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더욱이 IMF 직전에 월풀 사와 계약을 맺으며 받았던 수십만 불을 원자재를 수입하지도 못한 채 생활비와 경비로 탕진하고 있었다.




그의 부탁대로 아바타가 되어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을 때 스케줄에 따라 한 사장이 쥐어주는 대로 경비를 받았다. 5만 원 때로는 10만 원. 그리고 호텔 커피숍이나 백화점 식당가 또는 고급 레스토랑 등에서 자칭 '전주(쩐주/ 돈의 주인)'라 불리는 회장님네들을 만났다. 어느 날은 정당 관계자도 있었고 은행 내 기업담당 관계자들도 만났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경직된 자세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듣곤 했다. '내가 이 같은 사람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그러나 이내 몇 개월이 흐른 뒤에서야 그들 모두가 실체 없는 빈 깡통이고 빈껍데기의 사기꾼들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들의 지갑에서 나오는 화려한 이력의 명함. 번지르르한 화술,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인맥들은 감히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기조차 힘든 상위 클래스였다.


처음에 그들의 실체를 몰랐을 때는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로 마른침만 꿀꺽 삼켰더랬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지금까지 내가 아무리 고속으로 밟고 승진을 한다고 해도 만날 수 없는 레벨의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IMF가 터지면서 삶의 터전과 일터를 잃고 길거리로 내몰린 인간 군상들이 너도나도 자신을 포장하고 남을 속이면서 한탕을 잡으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서로 속고 속이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모두가 금세 될 것처럼, 금세 자금이 풀리고 공장이 가동될 것처럼, 한탕주의에 빠져 허우적댔다.

"부사장님(한 사장이 억지로 만들어 준 나의 직함), 이 정도 제조 시설이면 50억 지원 바로 승인 떨어집니다."

"이번에 강남 역삼역에 있는 스타빌딩이 1500억에 급매물로 나와서 내가 인수하려고 해. 인수하고 나면 자금 여유가 좀 생기는데... 어떻게, 제조 쪽에도 한 번 손을 대볼까? 공장은 30장 정도면 굴러가잖아. 안 그런가? 일단 돈이 되는지 좀 지켜봄세."

"부사장님, 제가 이번에 청와대 비서실에 들어갈 때 주요 중소기업 명단도 함께 브리핑하는데, 이 정도면 끼워 넣어도 손색이 없겠는데요.."

"이번 주에 **은행 본점 행장님 모시고 식사하기로 했는데... 우리 같이 일 한 번 만들어 보시죠."

"이번에 00 국회의원 만나는데, 아 글쎄 이 양반이 금융 바닥에서 알아준다니까. 그 양반 전화 한 통이면 자금 나오는 건 일도 아니야."


그래. 여기까지도 봐줄 수 있다. 참을만했다. 그러나....

"그래서 말인데... 경비가 좀 들어가요. 식사도 하고 술도 한 잔 마시고 하려면.. 고급 룸싸롱은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곳엔 가야 구색을 맞출 수 있거든. 그래야 생색이라도 내면서 아쉬운 소리라도 할 수 있지... 안 그래?"


안 그러긴 뭐가 안 그래!!!

대한민국은 사기 공화국이다!!


나는 브로커로 살았던 6개월 후 나 스스로 처절한 아픔과 비참한 생활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오면서 결론을 내렸다. '대한민국은 사기 공화국이다!'라고...


결국, 한 사장은 쌈짓돈이 떨어지고 공장 재가동에 대한 기대마저 무너지면서 점차 구석진 다방이나 공원 벤치로 만남의 장소를 옮겼다. 하루를 정리하며 간간이 회포를 풀었던 단골 술집도 지붕 대신 파라솔이 펼쳐진 구멍가게 앞으로 옮겼다. 우리는 점점 처량해지는 신세를 들여다보지 못한 채 깡소주 한 잔으로 목마름과 고달픔을 달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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