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개띠
아버지는 오 남매의 장남.
엄마가 마주하는 사람이 다르고, 거주하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밤늦도록 해야 할 일은 넘쳤지. 결혼 후 3년쯤에 시아버지 상을 당하고, 논밭 상속분을 가지고 분가를 했다는 엄마. 그때부터 세상살이가 보이더라 했다.
나,
58 개띠. 삼복더위 한가운데에서 태어났지. 울 엄마는, 첫째를 낳고 달거리 한 번 없이 들어선 가시나가 엄청 얄미웠단다. 첫째를 넉넉하게 먹이지 못해서. 지(죄)가 많은 지집아라서.
게다가 가시나 때문에 장손에게 소홀할까 아들을 데려갔다잖아. 시엄씨가 키우겠다고. 가시나를 볼 때마다 시엄씨 품에 있을 아들 생각에 화가 났단다.
우리 할머니, 멋있어서 머스마. 지(죄)가 많아 지집아라고 하셨지. 할머니 등에 업힌 오빠는 동네방네 자랑거리. 봐라, 얼마나 잘 생겼나? 자라서 큰 사람이 될 것이야. 나는? 그냥 졸졸 뒤따라 다녔어. 가능한 사람들 눈에도 띄지 않게. 나름 바빴겠지. 눈치코치 보느라.
할머니네 부엌에서 술지게미를 집어먹고. 설거지 솥단지에 붙은 누룽지 찌꺼기도 긁어먹고. 할머니에게 쥐어 박히며. 부엌 찬장 맨 위칸의 놋그릇에 담긴 동전도 꺼내고. 그러잖아도 미운 가시나가 골고루 미운 짓만 하더란다.
고혜정 씨의 '친정 엄마'는 밑반찬은 물론, 김치도 종류대로 골고루. 넘치도록 만들어 택배로 보냈단다. 주고 주고 또 주어도 주고 싶은 게 엄마 맘이라고. 어릴 때에는 남의 집으로 떠나보내야 할 자식이라서 데리고 있을 때에 맘껏 해줘야 한다고. 아버지는 그야말로 귀하게 키워주셨단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신이 모든 딸들과 함께 할 수가 없어서 친정 엄마를 보냈다.
-배추값은 네가 내라. 소금도 한 포대 사고. 그래도 양념값이 더 비싸다.
-메주 값으로 받으면 훨씬 더 비싸다. 콩 한 말값은 네가 내라.
-친정에서 '장'을 얻어먹으면 못 산다고 옛날부터 말이 있다. 다 ~~ 너 잘 살아라고 하는 거다.
김치 담아달라 한 적 없고, 장 담아달라 하지도 않았지만 엄마의 선견지명?
모두가 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가시나에 대한 생각도 동네마다 다를 수 있음이니 그다지 슬플 것도 없다. 지(죄)가 많아 지지바가 되었고. 어차피 남의 식구가 될 터인데 밥이나 먹이고. 일이나 시키지. 밥값은 해야지. 빨래를 시키며, 방 청소를 시키며 엄마랑 아버지는 종종 말했다. 둘 만의 대화로. 내 의견 따위는? 당연히 필요 없다. 그나마 미래에 대한 배려가 있었으니 감사?
-중학교는 못 보낸다. 학원은 보내주마. 양재학원이나 미용학원이나. 네가 선택해라.
그러거나 말거나 시장 바닥을 돌아다니며. 감천 냇가 모래밭을 뛰어다니고, 시냇물에서 퐁당퐁당. 잘 놀았다.
장날이면, 우리 몸속의 기생충을 담은 유리병을 세워 놓고 신나게 떠들어대는 약장수가 있었고. 모래사장엔 또 다른 약장수가 텐트를 치고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사도세자가 있었고. 콩쥐팥쥐가 있었다. 극 중간에 약을 팔고, 시커먼 빨랫비누로 머리를 감으면 안 된다고. 세숫비누 선전도 했다.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게 아예 담을 만들고 표를 받기도 했다. 그럴 땐 쥐구멍이라도 있으려나 텐트 주변을 뱅뱅 돌았다.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 엄마가 오기 전에 집구석 청소를 끝내는 것. 나머지 시간에 돌아다니며 놀기에 하루 해는 충분히 길었다. 조금 후엔 밥도 해야 했지만. 2024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