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짝꿍
비밀 일기 3
감천 냇가 옆, 용두동과 황금동을 구분하는 작은 굴다리가 있고. 그 굴다리를 마주하는 좁은 골목에 여섯 살 꼬맹이가 있었다. 반지하 부엌에서 물그릇을 들고 살금살금 걷던 아이. 경부선 철로 조금 위쪽의 감천 냇가 빨래터를, 놀이터 삼아서 빨래하던 아이. 꾀죄죄한 옷가지를 흔들며 크고 작은 돌판 위를 건너다녔던 아이를 본다. 60년 세월을 넘어, 지금, 여기서.
그때 그 꼬맹이는.
몇 집 건너에 사는 아이들이 던지는 돌멩이를 맞으며 할머니 집으로 오갔다. 몇 골목 아래로 이사를 한 후엔 집 청소를 하고, 밥 짓기를 했다. 그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짓이 없었다, 어둠이 짙어질 때까지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일 때가 많았고. 골목의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초등학교 이 학년의 어느날 친구가 나타났다. 도자.
모두가 다 가버린 교실에서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나오는 나에게, 친구는 미끄럼틀 위에 앉아서 손을 흔들었고. 가까이 다가서면 손톱 크기의 캐러멜 과자를 손에 건네주기도 했다. 이거 먹어. 우리 집에 갈래? 그런데 오늘은 큰오빠가 집에 있어. 여기서 놀자. 오늘은 집에 아무도 없어. 같이 가자. 친구가 묻고 친구가 대답했다. 언제나.
친구네는 감천 둑에 덧대어 지은 집이었고. 다른 집을 지나 맨 안쪽. 게다가 양쪽 집의 처마가 맞붙어 있어 입구부터 캄캄했다. 너덜너덜한 합판을 밀면 온통 깜깜한 부엌. 왼쪽의 쪽문을 열면 천장에 창이 있어 그나마 주변이 눈에 들어오는 방 하나. 엄마랑 오빠 셋이 사는 집이라고 했다.
그 방에서 둘이 길게 누워 구구단을 외우고. 학교 이야기를 하고. 도자는 길거리 이야기를 했다. 지붕 위를 지나가던 도둑고양이가 창을 들여다볼 때면 방안은 온통 깜깜했고, 우리는 고양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저 고양이는 어디서 살까? 고양이도 무서운 오빠가 있을지도 몰라. 고양이 학교도 있을까? 뭐든 종알거리며 둘은 그냥 좋았다. 곁에 친구가 있어서.
도자는 정말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아빠가 없어서 못 가는 걸까? 나에게 물었지만 나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모르겠고. 학교에 가면 심심하지는 않아. 그냥 가는 건데. 왜 맨날 늦게 나오는지 묻기에 매일 벌 청소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구구단을 못 외워서. 받아쓰기 점수가 낮아서. 하여간 벌 청소의 이유는 매일 있었다. 진짜? 눈을 동그랗게 뜬 친구를 보며 말해 줬다. 있지. 사실, 다~ 아는데. 잘 한다고 나서면 선생님도 아이들도 다- 싫어해. 그리고 청소를 다 하고. 뒷정리까지 모두하고 나면. 나도 기분이 좋아. 할 일도 없는데 뭐. 특별히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이 없잖아. 비를 맞고 가야 하는데. 아무도 보지 않으니까 좋고. 나는 비를 맞아도 좋은데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것은 싫으니까.
아주 가끔, 부엌의 검정 솥단지에 넣어 둔, 밥이랑 생선찌개를 먹기도 했다. 도자 엄마가 생선 도가에서 일을 했던 덕분이다.
도자는 어딘가로 돌아다니다가 가끔 운동장에 나타났고. 그날은 내가 선생님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도자는 학교 첫 시간의 출석 부르기 흉내까지도 재밌어했다. 구구단을 외우고. 국어책을 읽고. 덧셈, 뺄셈을 하고.
봄이 지나고, 가을이 깊어질 때까지. 만나도 좋았고, 만나지 못하고 생각만으로도 그냥 좋았다.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양초 칠을 해서 교실 바닥은 물론, 복도 마루까지 마른걸레로 박박 밀면서 청소하던 꼬맹이를 기억한다. 텅 빈 교실. 텅 빈 학교 운동장도. 그 시간의 고요함은 지금도 느낄 수 있다. 교문을 나서기 전, 모래밭 한가운데 서 있는 미끄럼틀에 다가가 인사를 했지. 잘 있어. 도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손등의 핏줄이 보였다.
도자의 손등은 땟자국이 겹쳐있었고. 찬바람이 불면서 손등이 터지고 핏줄이 생겼다. 도자는 혓바닥으로 손등의 핏자국을 훔치곤 했다. 나는? 입가에 물집이 생기고. 가려워 손톱으로 긁어 딱지가 생기고, 엄마의 처방전으로 (마른 고추를 새까맣게 태워 재를 만들고, 참기름 한 방울을 섞어 만든) 나의 입술 주변은 새까맣고 고소한 냄새가 났다. 우리는 더럽거나 냄새가 나거나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좋은 게 친구니까. 우린 짝꿍이었음이 틀림없다. 2024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