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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정률 Mar 18. 2024

통곡의 시간

육아에서 가장 몸이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통곡 마사지를 아시나요


드라마의 임신과 출산에 관한 흔한 클리셰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식탁에 앉아 "우욱, 우-욱"하고 후다닥 달려가던 여성이, 임신테스트기와 초음파 사진을 꺼내고, 둥글한 배를 분질렀다가, 뿅 하고 아가를 안고 다시 나타난다. 화면 속 연출이야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잘라내어 버린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출산의 과정은 겨우 이 정도일 뿐이다.


괜스레 티브이의 누군가들을 탓해보는 이유는, 그 과정에 설명되지 못한 것이 너무도 크고 낯설고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존과 행복에 필수적인 영아기와 엄마의 생활에 대해 이렇게까지 모를 수가 있었을까. 우리 모두가 그 시간을 반드시 지나온 사람들인데 말이다. 돌 전까지 꿀은 먹으면 안 된다는 필수적인 지식부터 아이들을 해칠 수 있는 베개와 이불, 원한다고 전부 모유 수유를 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그냥 달려있다고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


특히, 여성의 가슴에 관한 부분은 더하다. 나는 그것을 시원하게 이름 불러본 적도 없다. 왠지 부끄러운 것, 훔쳐지는 것, 가려야 하는 것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출산과 동시에 부풀어 오르며 찡한 울림을 주는 가슴은 말 그대로 인간의 젖줄이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생명의 신비가 내 몸에서 일어난다는 경이로움은 잠시다.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가슴의 할 일이 있었다.


분만 후 며칠 동안 분비되는 초유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병실에 누워 알게 되었다. 간호사들은 초유를 보물처럼 대했고, 나는 보물을 캐내는 금광 같았다. 초유는 나중에 나오는 모유들과는 색부터가 다른 진한 노랏빛을 띠는데, 면역과 영양도 더 풍부하다. 몇 방울도 잃어버릴까 봐 유축기에 붙어있는 노란 방울을 떼어내려고 간절하게 병을 흔들어 소중하게 모유저장팩에 담았다.


그리고 통곡 마사지라는 것이 있다. 통곡은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것을 말한다. 통곡마사지는 트러블이 있는 유방에 손으로 케어해 주는 마사지이다. 이름으로 예감이 되는가? 그것은 진짜 통곡을 위한 것이다.  


수유, 나의 육아에서 가장 신체적으로 고통스러웠던 순간


몇 개의 덩어리들을 꺼내느라 내 자궁은 구멍이 나있었고 제왕절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옵션이었다. 진통이라던가 자연출산의 고통스러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자연출산은 일시불이고 제왕절개는 할부식이라는 선배님들의 말에 따르면 쉽지 않은 고난이라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제왕절개는 이전의 수술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인상적인 고통의 과정은 아니었다. 살갗의 따가움이야 불에 타는 듯했지만 페인부스터의 은혜가 있었다. 오히려 대단한 두통이 올 거라며 하루 동안 고개도 들지 못하고 누워있어야 하는 시간이 더 어려웠다. 출산과 육아의 과정에서 가장 신체적으로 아팠던, 고통스러운 사건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조건 젖몸살이라고 답할 것이다.


내 가슴은 유난히 작은 것이라, 쓸모없는 게 붙어 있다는 우스갯소리로 자주 희롱을 당했었다. 아무렴 나에게는 부족해서 더 편한, 나의 몸이었을 뿐이다. 아가 울리는 소리만 들어도 애 낳은 엄마들은 가슴을 어루만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된 순간, 그러니까 나도 신생아실을 지나며 들리는 울음소리에 정말로 가슴이 찌리릿하고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내가 가슴 달린 동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아가의 입과 첫 대면을 한 나의 유방은 그 주인이 배고픈 시간이 되면 자꾸 차올랐다. 뚝뚝 내 몸에서 노란 물이, 누군가의 귀중한 식사가 흘러나왔다. 병실과 조리원에서 아가를 만날 수 없을 때 유축기라는 펌프로 길어 올렸다. "쉭- 푸시쉭-" 규칙적인 소리를 들으며 깔때기를 가슴에 꽂고 생각했다. 난 누구인가?


쓸모라곤 없을 것 같았던 내 유방들은 갑자기 자신의 쓸모를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크게 부풀어올라 쭉쭉 모유를 생산했다. 80, 120, 마지막에는 200까지 나왔다. 모유저장팩에 출렁거리는 모유를 들고 신생아실에 찾아가면 왠지 내 물음들이 무의미해지는 존재가치를 만들어낸 듯하여 발걸음이 가벼워지곤 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였다. 첫 아이는 (여전히) 먹는 것이 즐겁지 않은 아이였고, 겨우 몇 모금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아이가 먹는 양은 많아야 50 정도인데, 내 멍청한 가슴은 - 아니 멍청한 주인의 인정욕구에 반응해 버린 착한 가슴은 - 100 이상씩 생산하고 있었으니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은 디플레이션에 공황이 생겼다.


젖이 지나치게 차서 돌처럼 땡땡하게 변하며 아프기 시작했다. 유선이 막히고 나갈 곳이 없어 나오지 못하는 고통, 젖몸살이었다. 젖몸살이라는 말은 참으로 절묘한데, 젖이 아픈데 온몸이 몸살처럼 후들후들 떨린다. 고작 젖이 안 나오는 것뿐인데 아파도 너무 아프다. 목이 뻣뻣해지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통 열감이 있다. 그런데 진통제를 쉽게 먹을 수도 없다. 걸레처럼 쥐어짜서라도 꽉꽉 눌러 모유를 다 빼버리고 싶은데, 그것도 안된다. 그저 입에서 꺼이꺼이 소리가 나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양배추도 얼려보고 손으로도 짜보고 크림도 바르고 얼음찜질도 했지만 견고하게 닫혀버린 나의 꼭지.


마지막 남은 건, 마사지사님을 찾아 옷을 벗고 눕는 일뿐이었다. 이를 악물고 누워있으면 마사지사님은 뜨거운 수건으로 내 몸을 데웠다가 바늘로 톡톡 입구를 무너뜨렸다. 뚝배기를 엎어서 가슴을 왕복운동하거나 놋그릇을 옆구리에 대고 징징 울려대었다. 그 과정들이 일종의 주술적인 의식 같기도 했다. 비 오는 날 칼국수의 밀가루 반죽을 치대듯이 마사지사님은 한참을 손으로 가슴을 조몰락 거린다.


나오지 못했던 모유들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점점 거칠어지던 마사지사님의 숨소리, 벽에 추상화처럼 그려지던 물줄기, 얼굴에 떨어지던 뜨끈한 방울들이 순식간에 차가워지던 온도, 달큰하고 고소하던 나의 모유의 냄새. 난 몇 번이나 목구멍으로 끄윽끄윽 올라오던 고통의 소리를 다시 집어삼켰다. 타인의 손에 가슴을 맡긴 채로 흔들리는 몸을 느끼며, 나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무엇인가?



아픔을 알게 된 가슴으로 산다


젖몸살의 가장 나쁜 속성 중 하나는 단유를 할 때까지 언제고 다시 재발한다는 것이다. 어리석게도 난 몇 번의 고통스러운 몸살과 마사지를 더 겪고 나서야 단유를 결심했다.


쉽게 끊어낼 수 없었다. 따끈하고 말랑한 아이의 감촉도 좋았고, 젖병을 씻어내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도 좋았지만, 약을 먹을 수도 없고 남의 손을 빌려야 해결이 되는 고통의 불편함이 항상 더 컸다. 그 굴레 속에서 찾고 싶었던 안정감은 내 자리라는 위치 감각이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쓸모로 답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모유수유를 한다'는 문장이 나를 증명해 줄 것이라고, 어쩌면 찬란한 훈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건, 마음이 좁은 내가 한 일이다.


누군가가 조리원에 들어간다고 내게 말을 한다면, 나는 젖몸살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아이의 먹는 양과 유축양을 맞출 것, 호기롭게 더 뽑아내지 말 것.


모유의 양은 가슴이 크거나 작다고 해서 산모가 뭘 먹고 어떤 운동을 해서, 나아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육아의 복불복 세트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양에 집착하지 말아라, 분유에 기대라, 아이를 믿어라, 행복하지 않은 엄마의 가슴을 먹고 자란 아이가 행복할리 없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나의 모유수유는 나의 무엇도 증명하거나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상상할 수 있는 가슴을 달았다. 단지 공기가 왔다 갔다 할 뿐인 규칙적인 유축기의 소리가 유난히 슬프게 들릴 수도 사람을 고양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욕탕에서 보던 엄마들의 가슴이 배꼽까지 내려온 이유도 알았다. 유아차에 첫째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는 임산부 엄마의 어깨결림과 아랫배에 징-하고 울리는 묵직함을 떠올릴 수 있다. 아이를 수유하기 위해 더듬던 기민한 밤의 감각처럼, 아이를 안고 있는 팔이 견뎌야 하는 무게와 매일의 고단함을,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한숨을 상상할 수 있다.


내 몸으로 타인을 먹이고 나서야, 타인의 몸과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의 수만큼 다른 모양의 아픔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내 통곡이 다른 이의 통곡과 같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들의 젖에 대해 알려지지 못했던 것처럼. 끊임없이 소곤거렸지만 - 말하지 못하고 들리지 않았던 고통들이 듣고 싶어졌다. 가슴에 귀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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