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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정률 Apr 05. 2024

내 꿈나라에 와서 같이 와플 먹어요

수면교육이 뭔가요?

악동과 괴물의 동침


짧게는 40분, 길게는 1시간 30분. 유난히 잠들기 어려워하는 아이였다. 잠잘 시간이 언제나 공포스러웠다. 어둠이 무겁게 내려 않은 침대 위에서 나는 나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사투를 벌였다.


기분 좋은 목욕을 하고 오일로 마사지도 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동화책도 읽어보았다. 함께 전등 불을 끄며, "식탁 안녕, 신발 안녕" 집안의 온갖 사물들에게도 굿나잇 인사를 했다. 온갖 자장가를 섭렴하고도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라 가면' 노래를 40분 동안 반복해서 불렀다. 그럼에도 분연히 일어나, 침대 끝을 기어 오르고 벽에 손을 댄 채로 철지난 테크노 댄스와 엉덩이춤을 추는 것이다. 방언 같은 외계 언어와 이유 없는 고성은 수면교육만큼 규칙적인 코스였다.


핸드폰의 불빛도 허락하지 않는 숨막히는 시간. "엄마는 잔다"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자는 숨소리를 연기해보아도, 으르렁 목소리를 최대한 깔아보아도 겨우 팔 하나 크기만큼 밖에 자라지 못한 인간은 자신의 에너지를 스스로 끄지 못했다. 세상에 눈꺼풀 만큼 무거운 것이 없다던데, 너에게는 어떤 힘이 있어 눈꺼풀을 자꾸 밀어 올리는 걸까.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내 속의 괴물들을 자주 만났다. 그때 만난 괴물은 눈앞의 악동보다 더 공포스러웠다. "오늘 읽고 싶은 책이 있었는데, 마블의 새 시리즈도 나왔는데, 오징어게임은 꼭 봐야할 것 같던데, 진짜 오늘만큼은 떡진 머리를 씻어야해" 아이의 칭얼거림보다 내 목소리가 더 큰 날들에 그랬다. 한 점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해 숨이 막힐 때, 나를 유지하기 위한 어떤 장치도 챙기지 못했을 때, 내가 정말 없어질 것 같았을 때. 서러움이 목에 꽉 걸려 소리를 질렀다.


 "왜 이렇게 안 자는데! 제발 나도 살려줘라! 제발! 제발!”


아이의 혼란한 애착 수면등


꿈나라로 데려가는 괴물들


협박도 울음도 애원도 포기도 꿈나라로 가는 쾌속열차는 아니었다. 당연히 그렇다. 그게 될 리 없다. 엄마의 자리에 서툰 인간의 폭력적인 하소연이었을 뿐이다. 말 못하는 아이라고 스스로를 내려놓은 안일함이고 말을 알아듣는 아이에 대한 외면이었다. 여전히 그 감정의 오르내림이 나를 지키겠다는 욕심인지 아이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통제하겠다는 욕심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나를 구원한 것도 괴물이었다. 아기 돼지 삼형제의 늑대, 혹부리 영감님의 도깨비, 햇님달님 오누이의 호랑이였다. 아기 돼지들의 집을 부수는 늑대가 숨을 후욱 마셔 후욱후욱 불때, 아이도 같이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도깨비가 착한 영감님의 혹을 똑 떼어갔다가 나쁜 영감님에게 툭툭 붙여 넣을 때, 아이는 이불을 폭 덮고 누었다. 호랑이에 쫓긴 햇님달님 오누이가 기도를 할 때 눈을 함께 꼭 감았다.

 

아이를 눕히기 위해 이야기를 했다. "치카하자"를 20번쯤 말한 날에는 양치질을 못해서 이가 아픈 고래가 엉엉 울었던 이야기를, 하염없이 세면대에서 장난 치다 결국 "이노옴" 소리를 들은 날엔 집을 잃은 북금곰 이야기를 했다.


한창 젤리와 초콜릿을 좋아했지만 하루에 하나씩만 먹을 수 있었을 때, 꿈나라에 가면 초콜릿을 많이 먹어도 이가 하나도 썩지 않는다고 했더니 아이는 발을 구르며 키득거렸다. 엄마의 검은 속내와 달리 아이는 한결 같이 슬퍼하고 무서워했고, 또 기도하고 응원했다.


이제 하루 중 가장 말랑해지는 시간이 있다면 아이들을 재울 때이다.



엄마 꿈나라에는 뭐가 있어요?


우리가 잠자기 전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는 꿈나라이야기이다. "너의 꿈나라에는 뭐가 있어?"라고 물으면 제법 자란 아이는 스스로 이야기를 만든다. 비가 오는 구름으로는 구름빵을 만들 수 있으니 자신이 설탕을 많이 넣고 빵을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그 구름빵을 먹으면 하늘을 날 수 있을테니. 높이 날아가서 구름에 사는 곰들을 만나 회전목마랑 기차가 있는 놀이공원에서 신나게 놀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와플을 먹어야 한다. 와플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자 주말이면 자주 산책을 나가는 곳 카페에서 꼭 먹고 온다. 음식을 가리는 아이가 직접 포크질을 해가며 끝까지 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아이는 꼭 자기전에 자기 꿈나라로 놀러오라서, 거기서 만나자고 한다. 같이 와플을 먹고 주스를 마시고 소풍을 가자며 온 얼굴로 미소를 짓는다.


아직도 아이는 꿈속에서 아무리 먹어도 이가 썩지 않는 초콜릿 나무를 키운다. 숲이 커져서 젤리나무와 딸기 나무도 있는데, 어젯밤에는 나에게 씨앗을 나눠주었다. 우리는 함께 나의 꿈나라에 가서, 씨앗을 심고 물을 주기로 했다. 이 특별한 나무는 물은 딱 한번만 주고 그 다음엔 햇빛만 잘 주면 된다.


언젠가부터는 엄마 꿈나라에서는 뭐가 있어요? 하고 되묻는다. 그리고 아직 말 못하는 동생의 꿈나라에는 뭐가 있을까? 하고 또 묻는다.


오늘도 난 발차기에 능한 두 아이의 사이에 옆으로 누워 잠을 잘 것이다. 종종 얼굴에 멍이 드니 얼굴 주변으로 인형을 두루두루 배치하는 것은 필수다. 먼저 내 꿈나라에 들러 달콤한 나무들을 한번씩 어루만지고 아이들의 꿈나라로 놀러가야 한다. 꿈나라에서 못보면 섭섭해 하니까. 요즘 유치원 친구들과 말랑핑과 커핑 머핑이 그곳에 자주 놀러온다 하니, 오늘은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어떤 주스든 나오는 만능 물통을 챙겨갈께. 엄마도 꿈 속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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