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운 <유리유화>, 시를 읽고 이어씀
고개를 치켜든 첫 싹을 보면서 웃었을 것이다. 울었을 것이다. 뭐든 간에 태어난다는 건 지독한 일이었으니까, 또 한편의 외로움이 시작된다는 일이었으니까, 축하할 만한 괴로움이었다.
_번식하는 숲, 부분, 이유운 <유리유화> 89p
최초의 얼굴은 파란색이었다. 최초의 소리는 울음이었다. 세찬 울음은 하얗게 부서지는 폭포처럼 쏟아져나왔다. 세상의 것들을 처음으로 몸 안에 들이기 위해 거쳐야 하는 일이었다.
“괜찮은거죠?”
“네,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한 아기입니다”
그녀도 그제서야 한때 자신의 집이었던 사람을 느낀다. 타인의 허락이 떨어진 뒤 닿는 것의 감촉은 말랑하고 따뜻했으나 군데군데 거칠었다. 제 살로 만들어낸 별도의 인간을 마주할 때 눈물을 흘린다는 건 여느 다른 것과 같은 소문이었다. 차가운 침대 위에 팔이 묶인 또 다른 그녀에게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어미에게서 유일하게 느낄 수 있었던 체온이 그녀가 알아들을 법한 유일한 말이었다.
뿌연 빛들 속에서 세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그림자들로 움직였다. 그녀가 가진 유일한 말은 습기가 있는 것 뿐이었기 때문에, 아기는 주로 울었다. 그녀가 누워 있는 이불에는 빛이 달라붙은 것 같은 꼬수운 냄새가 나 대개는 잠이 들었다. 꿈 안에는 아무 것도 없어 황량했다. 눈을 뜨면 그림자들이 없어 적막했다. 몸이 불편할 땐 두려웠다. 파르라니 울음을 내면, 빛 사이로 그늘이 졌다.
허기져서, 축축해서, 쉬고 싶어서, 놀고 싶어서, 세상이 커서, 세계가 좁아서, 그저 여기에 있어서, 울었다. 그것 모두를 전할 수 없어서, 그러니까 외로워서. 울었다. 누군가를 불러야 하기 때문에, 세상이 안으로 처음 들어올 때처럼 울어야만 했다.
애초에 자기의 것을 나누어 만든 이조차도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희미한 형상이 건네는 매일의 감촉은 따뜻했으므로 비명의 길이는 점점 짧아졌다. 높낮이와 습기도 미묘하게 변했다. 세상의 음성들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번역해 보았다. 몸을 기울였고 품에 넣거나 손가락을 감아 쥐었으며, 심장과 비슷한 리듬으로 두드렸다. 또 다른 그녀도 그랬다.
“사랑해”
아기는 울음 뒤에 감촉의 이름을 그것으로 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