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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r 27. 2024

너무나 아름다운 황홀경

아쉬발쿰

오늘 잠에서 깼는데, 우리 집이 폭발해서 사라진 건지 아무것도 없었고 내 침대만 들판 위에 뎅그러니 남아 있었음. 적당한 산들바람이 너무나 따스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구릉의 목장이었지.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았으면서도 저 계곡 너머로 햇살이 비집고 올라오는, 새벽 여명의 장엄한 경관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음. 들판에 일부 소들이 한가로이 노닐며 풀을 뜯고 있었고 소수의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며 역시나 한가로이 걸어 다니고 있었더랬다.


집은 어디 갔지? 나는 '침대째로' 납치되어 이런 구릉에 버려진 건가? 왜? 누가 그런 짓을? 하면서도 눈앞의 경관이 너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그 황홀경에 도취되어 슬픔이 느껴지지도 않았음ㅇㅇ


황당했지. 꿈인가? 싶으면서도 오감이 너무 생생해. 산들바람이 구릉의 풀들을 들썩이며 지나가는 소리 하나하나까지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해.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어서, 침대에 누운 채로 손을 뻗어 주변의 풀들을 만져보았는데 손 끝에 닿는 들풀의 촉감도 너무 생생해.

(추가로, 들풀을 만진 내 손가락에선 달달한 바닐라향이 묻어나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랬다. 나는 어제 분명 내 방 침대에서 잠이 들었지. 설령 그 집이 폭파됐다 하더라도 잔해나 상흔이 전혀 없다는 건 이상하고, 누군가가 날 납치했다 하더라도 어째서 '침대째로' 들어 옮기는 수고를 한 거지? 이는 너무 비효율적이야. 심지어 날 없애거나 원하는 걸 받아내지도 않고 그냥 들판에 사뿐히 눕혀놓고 나온 것도 납득할 수 없고 말이야. 그래, 아무리 생생해도 이성적으로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이런 상황은 결국 꿈일 수밖에 없어!


어라? 지나칠정도로 생생하지만 쨋든 이제 꿈인 걸 인지했으니 이제부턴 자각몽이네? 그럼 내 맘대로 해도 되겠네? 이 동네 미인들이랑 다 헠헠... 하면서 사람들 있는 곳으로 다가가 손을 뻗으려는 순간 눈앞의 경관이 안개처럼 흩어지면서 꾸쉬꾸쉬한 내 방으로 순간이동 당함..;;


아 쉬 천국인 줄 알았는데..

사후체험한 사람들이 천당이라고 언급했던 그런 곳이었는데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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