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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한끼 Mar 20. 2024

이혼 후 3년, 왜 여기로 온 거야?

상간녀와 전남편이 집 근처로 발령받아 오다.



3년이 흘렀다.

이제 엄연히 남남이다.

간섭할 권리도 없고 챙겨줄 의무도 없다.

아이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의 모든 걸 공유할 이유도 없다.

굳이 아이들의 자라는 모습을 매번 친절히 알려주고 싶지는 않다.

아마 이혼 후 양육비를 착실하게 보낸 것만으로 본인의 역할을 다 했다 생각할 것이며,

본인이 어디에 살든  자유라고 생각할 게 뻔하다.

그러니 지척에 발령을 받고

같은 지역에 다시 이사 온 것이겠지.

혼자도 아니고 상간녀와 함께 말이다.




몇 년 전, 상간녀가 그토록 아니라고 부인했던 기억이 난다.

당신이 예민하게 굴어서 그렇게 보이는 거라며 언성을 높였다.

CCTV를 확인하겠다고 했을 때

당혹스러워하던 표정에서 진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사실 한번 던져본 말이었는데 말이다.


이후 이혼을 진행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조금이라도 있었단 말일까?



이혼 후 멀리 떠나기를 요구했다.

아이들과 나의 생활영역에서 벗어나주기를,

근처에 친정가족들도 많이 살기에

그렇게 떠나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전남편은 이혼 후 타지로 떠났다.

하지만 3년이 지나 얼마 전 근처로 온 것이다.



도대체 왜...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죽을 고비를 넘기듯 힘들어하는 전아내와

아파하던 아이들을 기억하고 있다면

어떻게 상간녀와 나란히 근처로 발령받아 올 수 있단 말인가?



맛있는 밥집,

저렴하고 괜찮은 카페나 단골술집,

산책하기 좋은 골목,

장보기 좋은 마트

드라이브하기 좋은 코스 등

십수 년 동안 익숙한 곳들이라

동선이 겹칠 확률이 많다.


오며 가며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쩌란 말인가.

무심코 들어간 식당에서...

대형마트에 아이들과 장을 보다가 마주치면 어쩌려고

근처로 왔단 말인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모든 선택의 기준은 본인임에는 틀림없다.




이혼 전,

이혼만은 하지 않으려 버틸 때에도 비슷한 감정을 여러 번 느꼈다.

사람이라면, 인간이라면, 일말의 미안한 마음이라도 남아있다면

그러지는 않겠지. 멈추겠지.

아내가 죽을 듯이 아파하고 아이들이 그렇게 힘들어한 걸 봤으니



네가 남편이라면, 아빠라면

이제 더 이상 상처 주는 행동은 하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든 붙잡고 살아내려고

여러 변수를 생각하며 미래를 그려보았지만 모든 예상은 빗나갔다.

미래는 알 수 없는 암흑이었고

하루에도 수십 번 감정이 파닥파닥 날뛰거나

어느 날은 폭풍전야 같은 불안감,

산산이 부서지고 망가져가는 정체성,

남은 거라곤 악을 쓰고 분노하는 중년의 아줌마..

자기 객관화가 되는 날이면 비참해서 견딜 수 없었다.


아마 그대로 살았더라면

 삶의 의욕을 잃은 채 무기력의 바다에 빠져버려

살아도 죽은 것처럼 살지 않았을까?


잘못이 없는 자신에게

용기가 없다고, 왜 널 아끼지 않고 버티냐고

스스로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하는 일종의 학대였다.


배우자의 외도를 겪은 후

사람들은 이혼을 할 것이냐, 가정을 지킬 것이냐

그 결과에 집중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커다란

나 자신과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견딜 수 있을 것이냐 못 견딜 것이냐.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냐 못 볼 것이냐

자신을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아니면 스스로 한심하고 못났다 생각이 드는지


어떤 선택이든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그곳에 최선의 길이 있을 것이다.



현재

애들 아빠에 대한 따뜻한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

그렇다고 표독스러운 독기가 남아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처음 집을 장만하거나 큰애가 태어나던 날,

행복했던 시기가 슬프게 느껴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

 그런대로 현재의 삶에 적응하고 잘 지내는 편이다.



그런데도 오늘은 여러 감정이 들었다.

이 애매한 감정을 글로나마 풀어내야 평온을 찾을 것이기에



행여 거의 매주 가던 단골밥집에

나와 아이들, 전남편과 상간녀가 마주친다면

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세상은 점점 더 나를 강하게,

이성적으로 만들어가는 듯하다.

감정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들겠지만

그건 또 글로 풀어내면 되니깐..



따뜻한 봄날인 것 같지만

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는 오늘 같은 날..

날씨가 꼭 내 마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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