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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구 경영인 박영곤 Feb 28. 2020

K리그 팀의 선수단 규모에 대하여 (2/2)

구단운영 시리즈 #1

그렇다면 K리그 팀들은 왜 이렇게 큰 규모의 선수단을 운영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다소 한정적이다. 한국 프로 축구 산업 내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기에 추측성 발언, 분석에 그칠 수밖에 없겠지만 경기 외적인 부분이 작용하는 경우가 있는 건 아닐까 한다. 팀의 성적 향상을 위해 꼭 필요한 계약이 아니더라도 '관계'에 의해, 구단 관계자의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불필요한 선수를 담아 가는 경우가 있진 않을까. 사실의 진위 여부를 따져봐야겠지만 모 구단의 모 관계자가 청탁을 받고 선수를 계약했다는 내용의 기사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한발 물러나 이런 사유로 계약된 선수들을 제외한다고 해도 여전히 K리그 팀의 선수 수는 많다. 예를 들어 35명으로 1군을 꾸린 팀이 있고 이 중 5명의 선수가 경기 외적인 이유로 계약된 케이스라고 해도 이 팀은 여전히 30명의 선수로 시즌을 치를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숫자가 여전히 불필요하게 크다고 생각한다. '30명 정도면 적정한 수 아닌가?' '유럽 팀들이 25명 이내 선수로 팀을 구성한다고 우리도 꼭 그래야 하는 법이 있는가?'라고 반론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안 그래도 구단 수가 적은 K리그에 국내 선수 양성을 위해서라도 로스터 수를 늘려 기회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라는 의견도 나올 수 있을 거 같다.



크게 세 가지의 이유로 나의 주장을 지켜보려 한다. 첫째, 나의 경험이다. 나는 22명의 선수들로 38경기 시즌들을 치러보았고, 그중에는 6경기의 플레이오프가 더해진 시즌도 있었는데 이 22명의 숫자도 과하지는 않을지언정 부족하지는 않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였다. 솔직히 구단을 인수한 초반엔 나 역시 너무 적은 수가 아닌가라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게다가 팀의 부사장(선수 출신의 스포츠 변호사)은 필요하면 21명까지 줄여서 운영해보자고까지 했으니.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이 숫자도 시즌을 운영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시즌 전 선수단 구성을 위해 작성했던 선발 기준 매트릭스. 주로 정성적인 부분을 스크리닝 하는데 쓰였다

 

당연히 부상 선수가 나온다. 경고도 참 줄기차게 받곤 했다. 이가 아닌 잇몸으로 싸워야 하는 경기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경기의 한 부분이고 시즌 전 선수단을 구상할 때 이런 변수들을 계산을 하여 스쿼드 밸런스를 이미 맞춰놓아야 하는 것이 응당 구단의 임무이다. 극악의 운이 팀을 덮쳐 10명의 선수가 경기를 뛸 수 없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2군이나 유소년에서 콜업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수십 시즌에 한 번 생길까 말까 한 경우를 놓고 매 시즌 십수 명의 선수를 추가하여 운영할 순 없다. 만약 성적을 위해서 선수단 규모를 크게 가져가야 한다고 말하는 코칭스태프나 전략 강화 인력이 있다면 그들부터 정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구단이 이들을 고용한 이유는 더 연구하고 더 조사하고 더 공부하여 최적의 스쿼드를 만들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주길 바라는 것이지 불필요하게 운용의 폭을 넓게 가져가길 바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예산을 낭비하는 것은 능력 부족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K리그가 국내 축구 발전을 위한 요람이 될 필요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발전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까지 자금을 들여 보듬어줄 만큼 경제적 여유를 부릴 리그가 아니라는 것이다. 년 예산의 1/10 정도도 홀로 벌어오지 못하는 상황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운영 효용성을 높일 방안을 강구해야지 이것저것 다 들춰보고 선반에 채워놓고 할 자격이 있을까? 혹자는 1천 원으로 백 원짜리 열 개를 사는 것보다 50원짜리 스무 개를 사는 게 더 나은 전략이라고 할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K리그 선수단 과잉의 문제는 이렇게 사온 스무 개중 5개는 쓰지도 않고 버려 결국 250원 만큼의 기회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250원을 구단은 필요 선수들의 급을 올리는데 써야 한다(이게 아니라면 모기업, 지자체, 축구팬을 위한 활동에 써야 한다). 즉 S 급 선수가 한 명이었으면 이를 두 명으로, A급 선수가 세 명이었으면 이를 다섯 명으로 올리는데 이 250원을 쓸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쉽지 않은 일임은 잘 알고 있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S 급, A급 선수의 몸값은 크게 오르는 반면 D, E 급 선수들은 여전히 50원이다. 전자의 선수들을 쫓다가 불발되면 어쩔 수 없이 D, E 급에 남은 돈을 쓰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이건 구단의 능력과 관련된 부분이다. 비전을 가지고 중장기적으로 사업을 운영해야 하는 직원들의 전략과 노력에 직결된 일이다. 우리나라 축구에서 중장기라는 발언이 얼마나 공허하고 작위적인 표현인지는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충분히 느껴왔다. 그러나 팩트는 팩트이다. 250원을 흘려버리는 결정은 경제적 자립이 불가한 K리그 팀들에게 있어 그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시킬 수 없는 경영실패이다.


놀리토의 FC 바르셀로나 이적 계약서가 담긴 폴더. 선수의 계약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만큼 전략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셋째, 선수들의 기량 발전과 팀 케미스트리이다. 위의 두 번째 논리와 상접하는 부분이 있는데 뛰지도 않을 선수를 영입하는 건 해당 선수가 임금을 받는다는 것 외에는 선수-구단 양자 간 남는 거 없는 장사다. 베테랑의 경우는 다소 다를 수 있지만 선수들은 뛰어야 기량이 발전하고 기량이 발전해야 커리어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울러 뛰고 싶어도 못 뛰는 선수들이 많을수록 팀 케미스트리는 어그러지기 마련이다. 라커룸 분위기는 선수 개개인 및 코칭 스태프의 능력 이상으로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친다. 팀 분위기가 좋으면 질 경기를 비길 수 있다. 비길 경기를 잡을 수도 있다.



앞선 글에서 여담으로 곁들였지만 1월 이적시장에서 영입했던 선수가 리그 최종전에서나 데뷔를 했다. 그 말은 22명의 선수단을 가지고도, 아니 21명의 선수만을 가지고도 38경기 한 시즌 운영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선수 외에도 출전 시간에 대해 불만을 가진 선수도 몇 명 있었다. 그런데 선수 수가 35명이다. 40명이 넘기도 한다. 경기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이 40명 중에 못 뛰어서 불만인 선수가 얼마나 많을까? 아마 몇 명은 이미 전력 외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비운 선수들도 있겠지만 이들 역시 팀 케미스트리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진 않을 것이다. 선수도, 팀도 얻을 게 없는 구조이다.



유럽이 한다고 우리도 이를 따라 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리그가 100개면 100개의 서로 다른 고유성을 가지는 게 축구다. 그러나 훨씬 축소된 선수단 규모로도 팀은 충분히 운영될 수 있다. K리그는 작은 돈 하나라도 낭비할 여유를 부릴 리그가 아니다. 그리고 40명에 육박하는 선수단 구성은 선수와 구단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선수단 수를 줄이는 것을 제안한다. 누군가에겐 생활과 미래가 직결된 일이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음에도 불필요하게 거대화된 선수단 규모는 경제적, 경기력적 측면에서 그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선수단 규모의 축소는 단순한 숫자 줄이기, 군살 빼기의 의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무국과 코칭스태프가 좀 더 영민하고 전략적으로 팀의 사업을 바라보게 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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