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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구 경영인 박영곤 Apr 12. 2020

기성용 vs 페르난도 토레스 (2/2)

Input vs. Output

당시 전북 현대의 이철근 단장은 분명 월드 스타의 영입이 구단에 줄 수 있는 가치, 엄밀히 말하면 구단의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에 부여할 수 있는 마케팅 가치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구단은 팬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항상 지역 팬들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여기셨으며 이는 분명 단장님 이하 구단 직원분들의 업무에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구단의 소유주이자 재무적으로 절대적 서포트를 이어가고 있는 현대자동차에게 유무형의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구단의 또 다른 존립 이유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고민을 놓치지 않으셨다.



유럽 축구에 대한 관심도 일반 팬 이상이셨기에 이 단장님께 페르난도 토레스 옵션의 긍정적 효과를 설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더 고무적이었던 부분은 당시 선수단을 이끌고 계셨던 최강희 감독님 역시 이런 접근을 쌍수를 들고 반기실 분이었다는 것이다. 고리타분하게 마케팅적 기대 가치를 분석하고 설득하고 할 필요가 없었기에 사실 이 일은 반은 끝난 프로젝트로 보아도 섣부른 넘겨 집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싱거운 결말일 수 있으나 결국 걸림돌은 돈이었다. 페르난도 측이 원했던 수입 규모는 세 자릿수 억 단위였는데 이는 순수 연봉이 아니라 현대 브랜드 대사embassador로서 얻는 광고수입 등이 합쳐진 금액이었지만 - 이들이 더 관심 있었던 건 선수의 은퇴 후 지속적으로 취할 수 있는 브랜드 포트폴리오였다 - 어찌 됐든 전북으로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팀 전체 예산의 30%에 육박할 비용의 진행은 본사의 승인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고 설사 본사(국내영업본부)에서 승인을 내려준다고 해도 이후 성적과 마케팅 효과 측면에서 가시적인 결과를 얻지 못할 경우 구단이 짊어질 책임의 무게는 적지 않다. 선수가 경기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팬들이 동 선수 영입에 대해 쏟아낼 비난 여론 역시 적지 않은 리스크 요인이 될 수도 있다.


'12년 5월,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찾은 현대자동차 브라질 대리점 사장단. 경기 후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스터디, 조사, 인터뷰 등을 통해 만들어낸 기회였기에 꼭 추진을 하고 싶음 바람이 컸었다. 전북이라면 적어도 불가능한 프로젝트는 아니라는 판단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자동차 재직 시절 전북 현대와 인연을 맺으며 팀이 모기업의 마케팅 미디엄medium으로서 역할을 고민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을 보고 또 직접 돕기도 했기에(브라질 브랜드 관계자들의 한국 방문 시 전북 현대 경기 참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등) 분명 페르난도의 영입이 다양한 측면에서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는 계산도 하고 있던 터였다.



페르난도 케이스가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 이유는 최근 기성용 선수의 K리그 리턴이 불발되며 팬들의 갑론을박이 달아오르는 것을 보면서였다. 기 선수가 K리그에 복귀하지 못했던 건 (1) 선수가 팀에 기여할 수 있는 경기력의 기대감  (2) 선수 영입을 통한 구체적인 마케팅 효과  (3) 기타 정성적인 이유(특히 관계자 간의 경기 외적인 관계)라는 세 가지 요소가 얽힌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반면 페르난도가 전북의 품에 안기지 못한 이유는 필요 투자금의 크기가 안기는 리스크의 크기였고,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이런 리스크를 지고 싶지 않았던 구단 경영진의 선택에 기인한다. 물론 전성기를 지났다는 측면에서 같은 궤도의 의문점을 두 케이스 모두 공유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마케팅적인 측면, 투자(input)와 취득 가치(output)의 관점에 한정해서 보았을 때 페르난도는 반드시 잡았어야 했고 기성용 선수는 구단의 판단을 어느 정도 지지해 줄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 물론 기 선수 측이 FC 서울 등에 요구했던 연봉 규모는 잘 모르기에, 만에 하나 선수가 아주 작은 정도의 조건에도 이적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면 내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아울러 그 요구 금액을 구단이 불필요하게 집행하고 있는 항목들을 줄여서 부담할 수 있었다면 그 역시 진행을 검토하는 것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구단에서 쉽사리 수용하기 힘든 요구를 했고, 다른 비용들을 최적화하여도 끌어모으기 힘든 규모의 투자가 필요했다면 이는 구단으로서도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


페르난도 토레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면 전세계적으로 전북'현대'에 대한 conversational capital은 급증했을 것이다


팀의 상징적인 선수, 국가대표 출신, 유럽 빅리그 출신 등 상징적인 측면에서 선수가 가지는 가치는 분명 적지 않겠지만 Input 대비 Output이 너무 떨어진다면 구단 경영진은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논리를 그대로 옮기자면 전북은 페르난도를 영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한다. 선수가 전북으로 옮기는 그 순간부터 전북'현대'의 이름이 전 세계 축구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에 무수히 뻗어나갔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결과이다. 그리고 예를 들어 기 선수 영입에 100원, 페르난도 영입에 1,000원이 든다고 해도 이는 투자금 10배가 넘는다는 문제가 아니다. 앞선 케이스가 50원, 후자가 2,000원의 가치를 낳는다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명확하게 갈리게 된다.



구단 운영 전문성에 대한 의문을 달고 이를 지적하는 팬들의 목소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팬은 감정적 집단이면서도 동시에 이성적 판단을 요구한다. 하지만 팬 개개인의 이성적 판단은 여전히 그 개개인의 감정적 편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구단을 운영한다는 것은 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동시에 팬들이 그렇게 바라는 이성적이고 전문적인 접근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구단은 중장기적 전략을 갖추고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무채색의 냉철함으로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한다. 페르난도는 과감하지 못했고 기성용은 냉철했다는 판단이다.



나 역시 월드 스타들이 더 많이 우리 리그를 찾고 해외파들이 한국에 복귀하여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구단들이 역동적인 운영의 묘를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팬들은 이런 구단의 행보에 가하는 비평의 목소리가 건설적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버는 것은 없고 쓰는 것에 익숙한 우리 프로 축구의 행태를 바꿀 수 없다면 쓰는 행위에 구단과 팬들 모두 더 신중하고 영민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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