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축구 경영인 박영곤 Dec 04. 2023

강등의 아픔을 이겨내는 법

아픔은 하지만 기회였네, 그 기회를 놓치지 마시오 수원삼성

0.


'17년 3부 승격을 이루고 승격 축하 퍼레이드를 마치고 경기장에서 열렸던 팬 이벤트. 이때의 감격은 그러나 더 큰, 그 반대의 경험을 선사하게 되었다.



나는 대단한 구단주, 대표이사는 아니었다. 오히려 강등에 떨어진 팀을 재건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크다. 그렇기에 이렇게 누군가 볼 수 있는 자리에 글을 쓰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구단운영 마지막을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기억이 더 크다. 팀이 위치했던 에시하 시의 축구팬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크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선수들에게도 - 지금은 편하게 연락을 주고받지만 - 더 좋은 대표가 되지 못함에 마음의 짐이 크다. 물론, 동시에 내가 겪어야 했던 능력외의 부분들 - 선수들의 승부조작 경기 등, 결국 스페인 검사의 조사까지 들어왔던- 에 의해 좀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위쉬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당시 나는 너무 유약했다. 단지 멘털적인 것뿐만 아니라 경험적인 부분에서도, 그리고 사실은 좀 더 용단 있게 판단하고 팀운영에 스스로 유연성과 여유를 가졌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한 부단함과 연약함이 있었다. 여기에 욕심과 재승격에 대한 맹목적 목적에 주변을 살필 영민함 역시 부족했다. 그냥, 한마디로 부족한 대표였다. 그리고 팀을 떠나 몇 해가 지나도록 마음의 큰 부담을 미쳐 때 버리지 못하고 고통의 기억으로 움켜쥐고 눈을 감고 외면해 왔다.


그러다 지난주 수원삼성의 강등 경기를 보고서 응어리졌었던 과거의 감추고 싶은 기억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나의 과거에 대한 회고이자 과거의 실수에 대한 사죄이자 한 편으로는 영광스러웠던 열정의 시간에 대한 소소한 도닥임이다.



1.


나는 한국인 최초 스페인 축구팀 구단주였다. 축구 산업에서 일하는 것은 대학시절부터 나의 오랜 꿈이었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 직장에서도 축구산업에 대한 갈망은 변함이 없었다.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다니던 회사의 축구팀에 가 여름인턴을 했고, 결국 퇴사 후 스페인으로 향했다. 학부 전공이 스페인어였고, 미래 커리어를 위해 유럽의 유명 MBA(경영학석사)를 한다는 논리는 아내와 한 돌 딸을 설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정신없이 바빴던 석사 시절 이미 나는 마드리드에 스포츠 매니지먼트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학업과 병행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이라는 것이 사실은 열정만 있었지만 경험이 미천했던 때였기에 무작정 부딪혀보는 것이 다였다. 그래도 그렇게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즐겁고 행복했었다. 스페인, 그리고 유럽 곳곳을 다니며 사업의 결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축구팀, 관련 업체들,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러는 사이 회사생활 중 모아두었던 자금도 서서히 말라갔고 일은 생각만큼 잘 되지 못했다. 프로젝트들은 성사를 앞두고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오늘이 힘들지 않았던 건 내일이 더 힘들 걸 알았기 때문일 정도로 하루하루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밤을 새워서 버스를 타고 비고시를 방문하고, 눈길을 뚫고 지그나 이두나 경기장을 찾았다. 런던에서 FA를 만나고 마케팅 패키지를 타진했다. 눈물 젖은 빵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바게트 빵을 하나 사서 하루를 보냈던 기억도 있다. 아픈 딸 애와 병원을 나와 약국 앞에 서 핸드폰으로 통장 잔고를 확인했던 때는 약을 사기에 잔고자 충분히 있다는 안도와 함께 지금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나의 욕심이 야기한 이기심의 결과 아닐까 자괴감에 빠져들었던 순간이었다.



당시 김영규 김우홍 선수가 소속되어 있던 라리가 UD알메리아 단장과 마케팅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찍은 사진.



그러나 노력에 대한 결과가 조금씩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정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건 노력의 결과였다. 물론 나 혼자의 노력이라기 보단 가족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의 도움과 믿음에 대한 결과가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축구팀 스폰서십 사업, 선수 인도스먼트 사업 등을 비롯해 스포츠를 통한 마케팅 활동 관련 프로젝트들이 성사되기 시작했다. 레알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 샬케04 등등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내 회사 포트폴리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선수대리(에이전트) 사업도 결과를 맺었다.


선수대리 관련해서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이렇게 결과를 만들어내기 1년 전쯤, 그러니깐 고난의 골짜기를 정신없이 헤매고 있을 즈음 선수 이적에 대한 선수-구단 간 협의를 이끌어냈고 사인만을 앞두고 있었던 날 밤, 고생한 아내를 데리고 마드리드 내 위치한 인도식당을 간 적이 있었다. 한창 들떠서 그간 고생과 노력에 대한 결과를 얻게 되었다고 아내에게 오랜만에 패기 있는 모습을 보이던 때, 선수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무래도 해외로 아들을 이적시키기엔 너무 걱정이 크다, 미안하지만 이적 건은 없던 것으로 하자는 청천벽력 같은 통화내용이었다. 딜이 깨진 것에 대한 아쉬움에 앞서 아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통스러웠던 당시가 떠오른다.



구단을 인수하고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둘째를 품에 안고 가족들과 경기장을 찾았다.


아무튼 하나둘씩 딜들이 성사되며 회사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 힘들었던 시절을 너무 구구절절이 썼던 것 같지만 그만큼 성과에 대한 기쁨과 자부심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열정과 자신감 하나로 이국으로 넘어와 스타트업을 시작했고 꿈에만 그리던 일들을 좋은 결과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말로 설명하기 힘든 쾌감을 주었다. 이렇게 회사의 자금상황은 좋아졌고 이익잉여금도 쌓여가면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어떤 프로젝트로 회사를 키워야 할지 생각할 때 즈음이 되어 나는 단 하나의 주저함 없이 축구팀 인수를 결심했다. 아주 오랜 시간 품어왔던 내 꿈의 종착역.


유럽 축구팀의 구단주. 이제 나에겐 스페인 축구계에 네트워크도 쌓여가고 있었고, 자금도 준비되었고, 산업에 대한 경험, 선수에 대한 이해도 적지 않게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직원들과 인수가 가능한 규모의 모든 스페인 축구팀에 대한 스터디를 시작했고 그중 십 수 개의 구단을 방문했으며 몇 개 구단의 오우너들과 협상을 진행하였고 결국 '16년 10월, 안달루시아 지방의 소도시 에시하에 위치한 75년 역사의 에시하 발롬피에 축구팀을 인수하게 되었다. 마드리드 공증사무소에서 주식양수도 계약서에 사인을 하던 그날, 나는 완전히 세상이 달라 보이는 기분을 느꼈다. 드디어 무언가 하나를 이루었다는 벅찬 감정에 빠져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2.



스페인에서 축구팀을 이끌며 맞이했던 두 번째 시즌, '18년 여름 카르타헤나에서의 시즌 마지막 경기. 추가 시간이 끝나고 선수들과 모여 다른 경기장의 결과를 핸드폰으로 확인하며 초조와 긴장에 떨었던 순간을 온몸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결국 한 골 차이로 강등이 확정되었을 때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던 절망감은 지금도 마음 한 편에 큰 상처와 아픔으로 남아있다. 세상을 살며 그때 그런 고통은 정말이지 다시 한번 겪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너무도 아프고, 너무도 힘들었던 그때. 그 감정을 소환한 건 지난 토요일이었다.



강등이 결정되었던 카르타헤나 경기장.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떠오르는 당시의 감정을 억누르기 쉽지 않다.



수원삼성이 지난 토요일 시즌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2부 리그행을 확정 지었다. 수원삼성이 어떤 팀인가. 축구팬이 아니더라도 이름은 들어보았을, K리그를 대표하는 팀으로 수십 년을 강림해 온 전통과 아우라를 갖춘 한국 프로축구의 상징적인 클럽 아닌가. 유럽 탑 티어 클럽이 2부로 강등당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듯 수원삼성의 강등을 예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축구공은 둥글고, 그에 더해 축구팀 운영의 변수 역시 무궁무진하다. 특히 우리 K리그에서는 이러한 변수가 유럽 빅리그 대비 상대적으로 더 높은 확률로 일어날 수 있는 구조라고 본다. 레알마드리드가 2부로 강등당하는 일이 라리가에 일어날까? 절대 이 가능성에 베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승부조작과 같은 요소 등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러나 K리그가 상대적으로 변수에 취약한 이유로 유럽 빅리그 대비 비교할 수 없이 작은 선수풀(pool)과 구단 간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예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레알마드리드는 전 세계의 재능들이 찾아오는 곳이고, 리그 가장 가난한 구단 대비 수십 배의 예산으로 운영된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리그 최하위 팀들에 비교해 그 역량의 차이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더 적은 풀의 선수들 중에서 선발하여 팀을 꾸리고, 예산의 차이도 몇 배 수준 밖에 되지 않는 K리그에서는 변수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유럽 빅리그 대비 훨씬 클 수 있다.


승격 플레이오프 두 번째 라운드에서 승리 후 선수들과 호텔 앞에서 한 컷. 경기력에서 열세였던 우리가 승격할 수 있었던 건 프런트와 스탭이 조화롭게 노력한 결과였음을 재차 깨닫는다



결국 팀의 승리를 이끄는 건 "경기력"과 "구단운영능력", 두 쌍끌이배다. 위에 말하고자 했던 건 K리그에서는 전자인 경기력의 차이가 무소불위의 넘보지 못할 절대성을 갖추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그 누구도 경기력만으로는 변수라는 불청객을 차단하지 못한다. 그래서 후자인 구단운영능력이 또 다른 조작변인으로 힘을 얻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불편한 괴리가 발생하곤 한다. 바로 구단운영=프런트, 구단운영능력은 프런트의 능력이라고 간주하는 접근이며 그래서 사무국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런트가 불균형적으로 힘을 갖추게 되면 구단 성적이 고꾸라지고, 그 결과로 한 해 결과를 망치게 되면 다시금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프런트에 힘을 실리게 된다. 즉 경기력의 종말의 발단과 뒤처리 모두에 프런트의 득세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프런트가 무조건 그 힘, 혹은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론부터 운영과 경기력구성의 양 날개를 책임지는 주체들이 각자의 영역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가 마주치는 교점의 구간에서는 상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기민한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Juan Carlos Goméz 감독(가운데). 에시하를 3부 리그로 승격시켰지만 이듬해 시즌 중간 팀의 성적이 흔들리며 경질당했고 그 해 팀은 결국 강등되었다.



나는 스페인에서 구단을 운영하면서 프런트와 코칭스탭(이하 선수단)의 관계를 장교와 부사관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의 역할은 (구단주라는 지위뿐만 아니라) 구단 운영의 총괄을 맞고 있었고 따라서 주로 재무, 마케팅, 사업운영 등이 직접적인 업무의 내용이었다. 1군 감독은 여타 코칭스탭과 함께 선수단을 운영하고 경기력이라는 꼭지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실, 협력 관계이면서도 불편함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성적이 잘 나오면 모두가 해피하겠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서서히 결과에 대한 탓을 상대방에게 찾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은 필드 경험이 미천한 대표이사에게(혹은 단장에게) 귀 기울이는 것을 꺼려한다. 그러나 대표이사는 실제 권한을 일임해 준 감독이 결과를 만들지 못함에 그에 대한 믿음을 잃어간다.



3.



'17-'18 시즌 초중반 리그 1위를 달리며 고공행진했던 에시하는 어느 순간부터 경기력이 급하강 하면서 리그 테이블에서 촉고속으로 미끄러졌다. 나는(대표이사/단장) 마음이 조급해졌고 감독에게 결과에 대한 분석을 요구했다. 감독은 일시적인 부분이라며 직접적인 논쟁을 피했지만 팀의 성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해고되었고(나는 그를 해고하였고) 그럼에도 팀은 결국 강등을 면치 못했다.


나는 여기서 프런트의 수장으로서 미숙했던 운영에 대해 인정하고 후회하곤 한다. 그러나 동시에 감독은 선수단에서 감지되고 있던 문제점을 분명히 공론화하고 그를 바로잡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는 팀 내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선수들이 승부조작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감독이 쉬시 한다는 것, 적어도 이에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는 건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에시하의 강등은 그래서 프런트와 코칭스탭 모두의 패착이 빚어낸 결과였다.



겨울이적시장 동안 선수를 영입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깨진 유리창은 선수가 아니었다. 곪은 곳을 치료하지 못하고 덧칠만 하는 격이었을까.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그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자세와 방법이었을 것이다. 스페인에서 축구팀을 운영하면 겪었던 강등 이듬해에 대한 경험을 비추어 수원삼성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본다. 안타깝게도 이 경험의 전달은 내가 잘했다는 것이 아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피해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에 대한 것이다.


수원삼성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감정적인 요소와 조급함을 걷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조직 내 각 주체 간의 밸런스를 재정립하는 것, 그리고 아주 세밀한 요소들부터 다 수면 위로 끌어올려 새롭게 그림을 그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강등의 아픔을 치유하는 건 재승격이 아니라, 승격 및 그 이후 1부 안착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만약 내년 1부 복귀만을 무조건적으로 요구하고, 근원적인 시스템과 펀더맨털의 개선을 위한 호흡을 다잡는 것에 비난하는 팬이 있다면 소신을 가지고 대응하라고 말하고 싶다. 조급하게 쌓은 팀은 모래성과 같다. 조급하게 수급한 선수와 감독, 그리고 구단 운영방식은 더 큰 구렁텅이에 팀을 몰아넣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수원삼성의 대표이사, 단장의 임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행여 외적인 요소에 의해 그 교체 주기가 잦다면 사실 위의 호흡 이야기는 어불성설일 수도 있겠다. 사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은 결과를 성적이 아닌 체질 개선, 시스템 개선으로 간주하고 움직여야 한다. 누군가는 이런 방향성을 세우고 지켜줘야 하며 팀의 레거시를 이번 기회를 통해 더 단단하고 굳건하게 재건해야 한다.



4.


첫째, 예산이다.


2부 리그는 1부 리그가 아니다. 1부에서의 예산을 가지고 2부 리그를 임하는 자세는 견지해야 한다. 예산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1부에서 유지하던 예산으로 2부를 임한다면 다른 팀 대비 더 좋은 성적을 2부 리그에서 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순간 모든 밸런스가 무너지게 된다. 그렇다고 단순히 예산을 삭감하고 시작하자는 뜻은 아니다. 더 비싼 선수, 더 좋은 선수로 단숨에 박차고 올라가겠다는 단방향적 사고로 자칫 기울어질 수 있는 위험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선수단의 밸런스, 내년, 후년, 그리고 그 이상의 시간 동안 팀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어떤 목표로 움직 일지에 대한 청사진이 나와야 그것을 바탕으로 예산을 짤 수 있다. 물론 기업구단의 특성상 모기업에서 예산 책정의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더 많이 쓰기도 불가능하고, 적게 쓰겠다는 것도 어색하다. 다만 이는 예상되는 예산의 규모가 어느 정도 가늠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오히려 마일스톤을 짜는데 긍정적일 수 있다. 특히나 Financial fair play가 적용되는 만큼 재무적인 접근에서 현금흐름을 중심으로 input과 output 메트릭스를 영민하게 짜서 운영해야 한다. 예산의 부족은 간혹 팀에게 더 현명한 판단을 요구하여 더 건강한 결과를 기대케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철저하게 매일, 매주, 매월을 재무제표에 철저히 입각하여 영리한 씀씀이를 바탕으로 움직여야 한다.



둘째,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탭이다.


특히나 강등이 된 팀에는 코칭스탭, 특히 감독이 중요하다. 감독이 중요하지 않은 팀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팀의 분위기를 추슬러야 하는 상황에서 감독의 정량적 능력만큼이나 정성적 역량은 중요하다. 단순히 형님 리더십이니 카리스마 지도자니 하는 것보다는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본적으로 갖추면서도 선수들과 구단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잘 이끌어줄 감독이 필요해 보인다. 감독의 프로필보다는 구단은 감독의 보이지 않는 면면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현 염기훈 감독을 포함) 감독을 선정해야 할 것이다. 사실 쉽지 않은 판단이고, 특히나 팬들에게 민감한 부분이기에 구단에서도 부담이 많이 드는 부분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 2년 이상은 겉으로 보이는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철학을 펼칠 수 있는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 그가 팀 케미스트리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가 자신감을 가지고 팀을 이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그만큼 감독은 최선의 성실함과 프로페셔널함으로 팀을 운영해야 할 것이다. 선수단의 잡음을 진화하는 것은 그의 몫이겠지만 그의 선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점들에 대해선 구단과 상의의 자리를 열 수 있는 적극성이 있어야 한다. 이런 자세는 결국 구단과 팬 간의 연결고리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다만 감독의 이런 열린 자세는 프런트의 그것과 합을 이뤄야 더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하기 프런트의 구성에도 언급하지만 투명성이다. 이에 대해선 길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투명성이 흔들리면 선수단 구성 역시 그 기틀이 뿌리째 흔들리게 되고, 모든 것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셋째, 선수단 구성이다.


선수단 구성에 관련해서는 이전에 작성한 글이 있다. 선수단 구성에 대해서는 이 글로 의견을 갈음해 본다.

https://brunch.co.kr/@yunggonpark/21

https://brunch.co.kr/@yunggonpark/22


선수단 구성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반영되고 조율되어야 한다. 단적인 예로 왼발을 잘 쓰는 선수가 온필드에 한 명은 있어야 한다는 등의 디테일 같은. 감독과 만들었던 선수구성 메트릭스



넷째, 프런트의 구성이다.


철저하게 프로페셔널해야 하며 강력한 동기부여를 갖춘 집단을 만들어야 한다. 앞서 쓴 것처럼 프런트는 쌍끌이배의 한 축이다. 선수단이 아무리 프로페셔널 해도 프런트가 그 능력을 못 받쳐준다면 결국 다시 고꾸라지게 된다. 프로페셔널의 정의는 한마디로 본인 업무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에 주저함이 없어야 하며 상황에 대한 탓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자세를 말한다. 이는 스마트한 사람, 똑똑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루틴 할 수 있는 구단의 운영특성상 현실에 안주하고 편안함을 찾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이것에 불편해하고 항상 생동감을 가지고 맡은 바 최선의 결과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잠바를 걸치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선 의자에 반쯤 누워있는 그런 사람들에게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프런트는 에너지가 중요하다. 그렇기에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동기부여는 개인에게만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프런트에게도 상여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사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주말도 반납하고 고생하는 사람들이 프런트 인원들이다. 경기를 이기면 누구보다 기뻐하는 이들도 이들이다. 축구가 좋아 일하는 이들도 프런트 사람들이다. 팀의 성적이든, 마케팅 성적이든, 이들에게도 노력을 치하하는 접근은 단순히 돈으로 동기부여를 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프런트에게 중요한 자세는 ESG적 관점이다. ESG,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는 단순히 친환경을 요구하는 표현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구단 운영에 있어, 특히 프런트에게 있어서는 특히나 '투명성'이 중요한 덕목이고 이는 ESG에서도 매우 중요한 축을 이룬다. 구단 운영, 살림을 맡은 이들이 투명하지 않으면 구단의 성립이유가 삭제된다. 이들이 모든 활동을 투명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이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모든 조직원들이 평등한 대우를 받고, 존경을 받는 환경을 만들어야 진정한 투명성의 기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구단 운영에서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내가 뼈저리게 피눈물을 흘리며 배운 경험이다. 구단 운영에 반드시 확보해야 할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다.



마케팅/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던 구단 직원들. 특히 선수들과 프런트 간의 교량 역할을 굳건히 해주었던 소중한 인원들이었다.



다섯째, 팬들을 대하는 구단의 자세이다.


팬들은 고맙고, 밉고, 의지되고, 부담스럽고, 복잡한 관계의 축이다. 그러나 세상 누구와 갈등 없이 살 수 있겠는가? 비단 그것이 가족이라고 해도. 그래서 오히려 담담한 자세가 필요하다. 담담하다는 건 미온적으로 대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구단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격렬하게 사랑할 것도, 거칠게 힐난할 것도 아니다. 어차피 팬들은 평생을 함께 할 존재이다. 옆에 항상 있을 이에게는 담담하지만 꿋꿋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방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투명함을 숨기지 말라. 아울러 잘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끄럼 없이 자랑할 필요가 있다. 구단이 하고 있는 일들을 공유하고 잘하고 있는 것들은 칭찬을 받자. 비루한 비유일 수 있겠지만 열심히 공부한 학생에게 결과를 가지고 모질게 대할 사람은 별로 없다. 구단이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런 과정을 숨김없이 공유한다면 팬들 역시 조급함 보다는 성장에 대한 응원을 보여줄 수 있다. 물론 알고 있다. 나 역시 맹목적으로 비난과, 잘 되지 않기를 바라는 듯한, 팬인지 뭔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격과 비난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대하고 나면 팬을 보는 나의 관점이 크게 흔들리곤 했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팬은 평생을 함께 할 존재이다. 정말 악성적으로 구단에 해를 끼치는 정도까지 온다면 그에 대해서도 팬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도움을 구해보자.


그러기 위해서, 묵묵히 미래를 그리며 열심히 일하는, 준비하는 구단의 청사진, 마일스톤,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믿음'의 공유이다. 구단 운영 성공의 키워드는 결국 이 '믿음'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 감독을 믿고, 선수를 믿고, 프런트를 믿고, 팬들을 믿고, 구단의 목표와 계획을 믿어야 한다. 이 믿음이 건강하게 회전하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다시 한번 뛰기 시작하는 것이다.



5.


서두에 말한 것처럼 나는 성공한 축구팀 운영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스페인에서 구단을 운영했다는 소중한 경험 자체의 가치를 부정할 이유는 아닐 것이다. 축구는 여전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이자 언젠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산업이다. 세계 축구의 최정상에 위치한 스페인에서 7년 간 축구산업에 종사하며 겪었던 경험들을 나누는 것이 축구팬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지 않을까.


리그를 대표하는 수원삼성, 그리고 그의 팬들에게 지금의 고통이 결국 시간이 지나 돌아봤을 때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음을, 그것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수원삼성을 응원하는 팬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24년 1부 승격이라는 결과뿐만 아니라 오히려 구단이 더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강력한 기저를 다지는 것이라 확신한다. 강등의 아픔은 겪어내야 할 부분이지만 이 기회를 통해 더 비약할 팀을 기대하는 것도 팬들에게는 더 감동과 추억이 될 수 있고, 이를 시작하는 것은 분명 가슴 뛰는 일이고 새로운 열정을 불어넣어 줄 일일 것이다.


양적 성장의 변곡점을 찍고 성장의 미래가 예견되는 K리그가 더 많은 감동의 스토리로 한국 축구팬들에게 멋진 경험을 제공해 주길 기대해 본다. 수원삼성과 수원삼성 팬들이 그 스토리의 중심에서 다시 한번 멋진 응원의 함성을 뿌려줄 것이라 믿는다.


이 날 나 역시 빅버드에서 눈바람을 맞았다. 구단의 팬은 아니었지만 축구는 정말 아름답고 감동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던 순간이었다. 축구여, 영원하라!





                    

매거진의 이전글 K리그 팀의 선수단 규모에 대하여 (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