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의 애정 한 스푼
퇴근하고 돌아와 보니 반가운 택배가 도착해 있다.
<캐치티니핑 공주들과 함께 프린세스 인형놀이>!! 새콤달콤 티니핑이 알쏭달쏭 티니핑과 뭐가 다른 것인지 1도 모르는 나이지만 이걸 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언니의 딸인 조카를 위해서이다.
얼마 전 주말을 맞아 조카가 외할머니집에 놀러 왔다. 오자마자 외할머니네 집에 보관되어 있던 종이인형부터 찾는 아이. 내가 1년 전 사다 놓은 공주 인형놀이었는데 예전에는 잘 못 가지고 놀더니 요즘에는 아주 최애 장난감이 따로 없다. 공주별로 이름도 붙이고, 어디서 과자 박스 같은 걸 용케 잘도 찾아내 각자 집까지 만들어주더니 이내 상황극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저렇게 몇 분 놀다 말겠지 싶었는데 그 상황놀이로만 1시간을 거뜬히 보냈다.
'언제 저렇게 커서 혼자서도 잘 노냐' 잘 노는 모습에 흐뭇함과 더불어 약간의 약간의 뿌듯함마저 느낀 이유는 저 인형놀이에 나의 노력이 한 스푼 들어가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어리지만 저걸 살 때만 해도 조카의 나이가 5살로 더 어렸다. 그렇다 보니 종이를 섬세하게 다루지 못해 노는 족족 종이인형이 뜯어지곤 했다. 인형에 옷이나 신발, 가방을 입히려면 조그만 틈 사이로 상단의 고리 같은 종이를 끼워야 하는데 그 부분이 쉽게 찢겨나가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전에도 몇 번이나 종이놀이를 사 주었지만 매번 한 번 쓰면 못 쓰게 되는 일회용 장난감 신세가 되었다.
이를 방지하고자 나는 당시 아이에게 종이인형을 주기 전 '약간의 수작업'을 했었다. 종이인형 위에 테이핑을 해서 일종의 코팅 작업을 해 준 것이다. 뜯기 전 한 판으로 되어 있는 종이판에 앞 뒤로 테이프를 붙이고 뜯는 선을 따라 가위로 오려냈다. 과정은 투박했지만 효과는 좋았다. 아무리 험하게(?) 다루고 끼웠다 뺐다를 반복해도 거뜬한 무적의 인형놀이로 재탄생했기 때문이다.
'저렇게 잘 노는데 하나 더 사줄까? 그런데 뭘로 사주지?' 이번에 조카의 인형놀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문득 즐거움을 한 층 업그레이드(?)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 입히기 놀이에서 선택지가 다양하면 재미가 배가 되는 법! 무려 180개 이상의 의상과 소품이 한가득 들어있다는 종이인형을 구입한 게 된 이유다. 받고 보니 소품의 수가 정말이지 다채로웠다. 수 십 개의 옷, 신발, 가방 등 각종 소품에 성인인 나마저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공주의 종류도 4명인 데다가 배경판을 파티와 콘서트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점도 좋았다. 조카가 기뻐할 모습이 벌써부터 눈앞에 그려졌다.
하지만 역시 그전에 할 일이 있었다. 코팅과 오리기. 180개에 달하는 소품이지 않던가. 일일이 가위질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또한 각 소품들이 워낙 작거니와 곡선들도 많다 보니 섬세하게 가위질을 해야 했다.
가위질을 하는 손이 이내 뻐근해지더니 나중에는 손 마디마디가 욱신거렸다. '반복된 작업을 오래 하면 그 모양대로 굳어지는 이유가 있구나.' 그거 조금 가위질했다고 손가락 마디가 부어오르고 굽힐 때 통증마저 있었다.
그렇게 가볍게 사부작거리며 해야지 했던 일은 장작 3시간 40분이 걸렸고. 새벽을 꼬박 새우다시피 해 회사 출근하기 2시간 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한 이틀에 걸쳐 나눠서 작업하면 될 걸 굳이 하루에 다 끝내려고 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조금 무식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결과물을 보니 뿌듯하기만 하다.
조카가 좋아하면 됐지 이까짓 통증쯤이야. 아이의 서툰 손길에도 끄떡없을 딴딴한 종이 인형을 바라보며. 흐뭇한 이모 미소를 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