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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osh Apr 16. 2021

누가 즐거이 여호와께 드릴 것인가

인생의 이분법


2020.12.17 말씀묵상 


[대상29:5-9]

5 금, 은 그릇을 만들며 장인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하는지라

6 이에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이 다 즐거이 드리되

7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위하여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만 다릭 은 만 달란트와 놋 만 팔천 달란트와 철 십만 달란트를 드리고

8 보석을 가진 모든 사람은 게르손 사람 여히엘의 손에 맡겨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드렸더라

9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


 누가 오늘 즐거이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하는 말에 즐겁게 응답할  있는 사람이   있는가? 아니  이전에 다윗과 같이, 만백성들 앞에서 누가 오늘 즐거이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하는 도전을 강력하게 선포할 수있을까?


하나님에게 사로잡힌 바 된 사람의 삶은 이런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먼저 하나님께 전부를 드리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기 백성들을, 그것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움으로 드릴 수 있게 만들수 있겠는가. 다윗은 하나님앞에 모든 것을 드린 전무후무한 왕이다. 말씀에서 그가 계속해 거론되며 다윗과 같지 않았다 라는 평가가 후대의 왕에게 전해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신앙인의 목표는 다른게 아니다.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사는 그것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말은 다시말해 그 행동기저 동기에 기쁨과 자원함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은 고행이 아니다. 욕심과 집착을 버리는게 맞지만 텅빈상태로 허공을 응시하는 게 아니다. 그 빈공간을 새로 부어주시는 주님의 영으로 채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은 관계성이다. 과거 우리는 자주 서로에게 신앙을 도전할 때에 예수님과의 관계가 어떻냐는 질문을 주고 받았다.


나는 하나님을 자원하는 기쁨으로 섬기고 있는가? 나는 사실 생존하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 옛날에는 이런 신앙이 토테미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기복신앙. 내가 묵상하지 않으면 그에따라  영혼이,  삶이 힘들어지고 결국 위험이 찾아온다는 그런 약간의 공식. 그러나  혼란을 넘어서 지금은, 영혼이 말라 죽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혼돈이 고스란하게 피부에 닿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주시는 말씀으로 날마다 깨어있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손을 붙잡아주시지 않으면 나는 끝이 안보이는 칠흑속에 영혼의 불안함을 겪는다. 어떤 친구들은 내가 묵상을 꾸준히 하는게 대단하다고들 하는데, 그저 나는 삶을 연명하기위해  묵상을 지속한다고   있다. 동기  자체가 그다지 자랑스럽지는 못하다. 말씀묵상을 하지 않고도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가 어쩌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는 이유의 근본일 것이다. 나는 주님을 자원함으로 섬기고 기뻐하는가?


나는 지금  무기력함과 우울에 젖고있다. 코로나 전염병이 창궐해서 헬스장에도 못간다. 해야하는 일을 하고 도전해야할 일에 도전하는 것들을, 할수있다고 생각하고 덤벼들었던 때가 너무 오래된 것만 같다. 요즘엔 할수있다는 생각보다 할수없다는 생각이  커져가는 것만 같다. 몸을 오래 안쓸수록 근육이 굳어가는 것처럼,  안의 용기가 점점 말라가는 것만 같다. 아직 이런 생각을 하기엔 이른데. 아직 나의 날은 오지않았는데.  성장할  있는데. 자꾸만 무릎이 시리다. 주저앉고만 싶다. 이런  모습이 싫다. 코로나 전염병이 창궐하니까, 다들 넘어져있다들 힘드니까,  하나 힘들어도 상관업잖아 하는 마음이 든다.


근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내가 너무 싫고 다시 일어나고 싶다. 모든 것들이 귀찮은데, 귀찮아  수록  시간이 안간다. 많은 시간들을 소모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만 제일 괴로운 것은 사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자신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인생길이 복잡하고 힘들어보이지만, 사실 내가 내릴  있는 선택은 너무도 간단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인가. 뭐라도  것인가. 신앙의 세계도 같다.  하나님을 계속해서 피해갈 것인가.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길것인가. 둘중에 하나다.  앞의 위험으로부터 끝없이 도망치는 동안 육체도 영혼도 병들고 만다. 다시 일어나야한다.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는 즐거운 영을 나에게 부어주시길 소망한다. 나의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함으로 나아갈수 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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