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의 시간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한풀 꺾인 저녁 시간.
빌딩 창문에서 하나 둘 새 나오기 시작하는 불빛.
거리를 지나가는 무표정한 사람들.
그리고 처음 와본 건물 앞에서 두리번거리는 젊은 엄마.
갑자기 15년도 더 지난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며칠째 기억의 조각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더니,
급기야 오늘 아침에는 그 사람이 생각났다.
“나 내일 집에 가요.”
새해를 맞이해 나는 장난감으로 가득 찬 아이 방을 기필코 정리하리라 마음먹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마침 올해로 스무 살이 된 아이를 위해 장난감을 조금 줄여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전문가의 의견도 있었다.
이런 변화는 아이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놔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대신 허락한 물건에 한해서 천천히 줄여나가기로 했다.
나 역시 변화는 반갑지 않다.
한때 나는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아이의 발달장애검사를 미룬 적이 있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 흉내를 내면서, 원치 않는 변화도 나를 못 본 척 지나쳐 주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속으로는 실눈을 뜨고 조만간 앞을 봐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아이가 네 살이 되던 해 검사를 받기 위해 동네 지역 센터 (Regional Center)를 찾았다.
지역센터 빌딩은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지 천정이 유독 낮았고 조명마저 어두웠다.
금요일 오후, 직원들의 표정은 답답한 조명만큼이나 지루해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주말을 맞이할 생각으로 조용히 들떠있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웅성이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들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분이 불쑥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나 내일 집에 가요.”
나이에 맞지 않게 그의 몸짓이나 눈빛은 천상 아이의 모습이었다.
순간 나는 이 센터가 발달장애인을 돕는 곳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왜 오늘이 아니라 내일 집에 간다는 건지 그 당시 나로서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에게 친절하고 싶은 마음에 정말 좋으시겠네요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도 활짝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무리들을 따라 다른 쪽 문으로 사라졌다.
곧 아이와 나도 호명이 되어 진료실로 향했다.
그날 아이는 예상대로 자폐 진단을 받았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나도 더 이상 그때의 젊은 엄마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먼 미래 아이의 하루를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때가 되면 아이는 정부가 제공하는 그룹 홈이나 혹은 사설기관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마도 지역센터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던 그처럼 주말이나 연휴가 되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외출을 할지도 모르겠다.
산다는 것은 원치 않는 사건과 변화 속에서 흔들리다가 허무하게 끝나는 것 아닌가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가 우리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살면 살 수록 나는 삶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세상에 증명하려는 오기가 생기는 쪽이다.
특수안경을 끼면 보이는 드래곤 볼 캐릭터들의 전투지수처럼 세상을 향한 나의 전투력을 눈에 보이는 숫자로 측정가능하다면 감히 프리저 급이라고 말하고 싶다. (전투력 530000!)
그는 상대방과 풀파워로 싸우지 않는다.
나 역시 내 현실과의 싸움에(주로 내가 지는) 온 힘을 쏟을 생각은 없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처해진 상황보다는 내가 주도하는 나의 오늘을 집중하는데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렇게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 자체에 몰두하다 보면, 현실을 향한 나의 마음은 한층 무심해지고 결국엔 나라는 존재가 죽든 말든 관심은 1도 없는 무심한 이 현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늦어진 방 정리를 겨우 끝내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어쨌든 오늘도 어김없이 나에게 찾아와 준 저녁시간,
지금 내가 추구하는 삶은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삶이다.
죽는 건 딱 한 번이지만, 사는 건 매일이니까.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서둘러 아이패드에 ‘집밥 백종원’을 쳤다.
며칠째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그날의 기억은 백주부의 명랑한 목청에 묻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어때요 여러분!! 참 쉽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