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계속 물음표를 던질 수 있다는 것
미국 생활 시작 후 약 3년 하고도 조금 더 지난 지금, 나는 미국에서 4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미국에 온 뒤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의외인 점은, 내가 미국에 오기로 결심했을때 그다지 고려하지 않았던 부분들에서 오히려 이 곳에 온 진정한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해
나 자신에 대한 이해, 타인에 대한 이해.
이곳에서 나는 많은 사람을 새롭게 만났다. 내가 한국에서 알아왔던 사람들과 비교하자면 가장 다른점은 배경의 다양성이다. 다른 국적, 인종, 문화, 언어. 서로 다르기에 우리는 서로 더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서로 다르지만 우리는 순수하게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친구가 되었다. 가끔 너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나는 이제 상대방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 과거에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이만큼 노력을 기울여본적은 없었다. 많은 것을 이미 전제했고, 내 기준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판단을 했다. 이 곳에 와서는 오히려 그런 기준과 선들이 조금더 희미해진 상태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와 나는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아낀다".
또한 나는 이 곳에서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삶은 많은 것들이 이미 궤도를 달리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다녀온 직장, 이곳에서 살아온 나의 삶, 예전부터 알던 친구들, 익숙한 언어와 화법. 그 모든것을 한국에 두고, 마치 갓난아이가 새로 태어나듯이 나는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다시금 삶을 시작했고, 나는 나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가치를 두는 것, 내가 참을 수 없는 것, 내가 양보할 수 있는 것, 나의 생활 습관, 내가 좋아하는방식의 시간 보내기. “나도 나를 모르겠어” 라는 말이 있을만큼,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사실 난이도가 아주 높은 일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는지에 대한 자각조차 없이 오랜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 마치 우리가 다양한 운동을 하며 나의 몸을 더 이해하고 강화하듯이, 다양한 경험과 사유가 나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결국 강하게 한다.
자립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확신
나에게 자립이란 단순히 내가 혼자 밥을 해먹고 청소를 할 수 있냐는 것을 넘어서서, 내가 혼자서도 행복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가?정신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 스스로의 선택과 삶에 의구심을 갖지지않을 수 있는가? 쪽의 정의에 가깝다. 나는 미국에 와서도 한동안 그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나는 말하자면 갓 걸음마를 뗀 상태였고, 내가 외롭진 않을지, 불안하진 않을지, 아프거나 압박감이 있는 상황에서 내가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온전히 감당하며 일상을 여전히 건강하게 영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자기의심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3년의 시간이 지나고 특히나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는 1년여의 시간은 나에게 “그럴 수 있다” 라는 확신을 주었다. 나는 홀로 생일을 보냈고, 가끔은 주말에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가족은 저 멀리에 있고, 가장 가까운 친구들은 다른 도시에 있다. 어떨때는 아주 우울할때도 있고 외로울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괜찮다- 라는 것을 이제 경험으로써 알게 되었다.
자유
사회의 시선과 잣대로부터의 자유
첫 회사에 들어가 신입사원이었을 무렵 왜인지 모르게 5년간 일하고 30살 즈음 결혼할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그 목표는 지금 생각해보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예시에 아주 부합하는 목표이다. 나는 그 당시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적도 없었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몰랐으며 타인을 이해하는 법에는 더 서툴렀다. 본인이 진짜로 원하는게 뭔지 모르는데 무작정 목표부터 세웠다는 점이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포인트이다. 나는 비교적 남의 눈치를 보지않는 성격이지만, 그런 나에게도 무의식적으로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당했다. 나는 좋은 회사에 가고싶었고, 때가 되면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가족을 만들고 싶었고, 아이를 낳고싶었다. 왜? 그래야만 할것같았기때문에.
이제 나는 더이상 그런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재밌어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고 싶고, 남들이 가정을 꾸리기 때문에 나도 그리하는게 아니라, 내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들기 위해 가족을 만들고 싶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욕망을 욕망할 수 있게 되었다.
도전
인생에 계속 물음표를 던질 수 있다는 것
사람의 인생에는 몇번의 도전이 존재할까? 내 인생에는 몇번의 도전이 존재했을까? 내 기억속 첫번째 도전은 초등학교 5학년 말 캐나다에 부모님이 날 조기유학 보냈을때 시작되었다. 나는 유색인종이 나밖에 없는 토론토 근교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에 1년을 다녔고, 그때는 너무 어렸기에 미처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도 못한채로 이질감, 외로움, 불안감과 싸웠다. 아무도 나에게 그러라고 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반에서 1등을 했다. 나는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매일 영어로 일기를 썼고, 또 외로움에 한국어로 일기를 썼다. 나는 결국 친구가 아주 많이 생겼고, 내가 떠날때 친구들은 한국어로 “잘 가 재라”를 칠판에 쓰고 송별회를 하고 서른몇명이 넘는 반 친구들이 모두 선물을 줬다. 우리는 헤어질때 엉엉 울었다.
내 다음 도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입시, 스펙 쌓기, 취업.
대학교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사했을때, 나는 생각했다. 이제 인생에 물음표는 얼마나 남았을까? 나는 몇개의 문제에 마침표를 찍었고, 이제 몇개의 문제가 남았을까? 놀라웠던 점은 물음표가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때의 허탈감이었다. 희한하게도, 그동안 물음표에 대답하기 위해 숨가쁘게 달려왔는데,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기분은 안도감이어야할텐데.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일련의 도전들이 나를 그렇게 만든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분명 내가 답할 수 있는 물음표들이 얼마남지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허무함을 느꼈다. 그럼 난 이제 무얼 기대하며 살아야하지?
미국에 와서 좋은 점은 다시 물음표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한치 앞을 모른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내년에도 다닌다는 보장은 없고, 집은 1년짜리 계약이 끝나면 이사해야한다. 몇달 전에 이 도시에 함께 있던 친구는 이제 다른 도시로 떠났다. 나도 언제든 다른 곳으로 떠날 수도 있다. 한국으로 돌아갈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안다. 물음표는 내가 완수해야하는 숙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답이든 적을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