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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파티쉐 Jun 07. 2020

나랑 닮은 사람과 연애한다면?

“네가 그 사람과 만난다면 훨씬 잘 맞을텐데.”


오랜 친구인 P가 이상형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몇 번 내게 던진 말이다.  ‘그 사람’이란 그녀가 최근에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 남자 J를 가리킨다.  

그녀의 말인즉슨, j를 만날 수록 그와 나의 성격이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가 내 이상형에도 가깝다는 것이다.  현재의 내 남자친구는 내 이상형과는 멀기 때문에 j쪽이 내가 사귀기에는 훨 좋은 사람이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다.  

그렇다고 내가 내 남자친구를 옆에 두고 J를 만나고 싶어했다면 P를 J에게 소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러 번 듣다보니 ‘그런가’하며 가정을 해보기는 했다.  


뭐 나름 좋은 점이 많았을 지도 모르겠다.  우선 공통점도 많았을 테고, 때때로 남자친구에게서 터지는 불만은 j에게는 장점이 되었다.  거꾸로 말하면 j가 갖고 있는 많은 좋은 점들이 남자친구에겐 없었다.  게다가 내 남자친구와 나는 너무나 달라서 공통점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그래.  나와 성격이 비슷하고, 공통점이 많은 사람을 만난다면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적어도 서로가 이해되지 않아 싸우는 일은 적지 않을까?


버스로 5시간쯤 걸리는 지역에 살던 첫째 동생이 사정이 생겨 당분간 내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둘이 같이 지낸건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이니까, 무려 27년만이다.

세 남매중 막내는 꽤 차분하고 조용한 성정을 갖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 둘은 시끌벅적한 편이다.   닮은 부분이 많아 얘기도 잘 통하고, 식성도 잘 맞는다.  호기심도 많고, 창조적인 작업을 좋아하며, 자신의 성장에도 관심이 높다.  큰 동생이 나의 남자버전이랄까.  

만약 동생같은 남자가 있다면 그는 분명 예쁜 들꽃을 한묶음 꺾어와서 선물하는 로맨틱함을 지녔을테고, 가족들을 데리고 수시로 캠핑을 다닐만큼 가정적일 것이다.  산후조리하는 아내를 위해 퇴근후 미역국을 직접 끓일만큼 세심하게 잘 챙겨주고, 유기견을 데려다 키울만큼 따뜻한 남자일 것이다.  안이하게 사는 쪽보다는 삶을 용기와 모험심으로 채울 것이다.  게다가 동생처럼 얘기도 잘 통하고, 책임감까지 있다면 분명 근사한 남자일 것이다.   이런 남자라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겠다.

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다.


동생은 남을 잘 배려하고, 상대를 불편하게 하느니 자신이 불편해 버리고 마는 류의 인간이니까 얼마간 같이 지내는 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나름 일을 같이 진행하며 으쌰으쌰 에너지를 주고받으니 꽤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다.

물론 다 큰 성인끼리 한집에서 지내면 마냥 편하기만 할 수는 없다.  그냥저냥 불편해도 2주일정도 잘 지내고 있었는데 오늘은 저녁밥을 먹다 말고 울컥 화를 내버렸다.  아무것도 아닌 말을 자격지심으로 되받아치는 동생을 보니 갑자기 사람이 열등해보였다.  얘가 이렇게 답답한 애였어?  열을 올리는 날 보더니, 동생은 왜 흥분을 하냐며 따진다.  그래, 넌 돌처럼 침착해서 좋겠다 에라이.

서로 똑부러지게 상대의 잘못한 점을 지적하면서 한치 양보없는 설전을 벌이고 나니 아...이 찝찝함이란...  


사람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가장 싫고 어두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던가.  이른바 그 ‘투사’를 경험했다.  오늘 나는 씩씩거리며 말싸움을 하던중 나의 많은 단점을 지적받았고, 스스로 발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생에게도 똑같이 되짚어가며 나쁜 점을 평가해주고 그것도 모자라 넌 사람이 왜 그 모양이냐며 ‘인격이 덜 자란’ 또는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는’이라는 수식어까지 달아줬다.  그러니 투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 자신에게도 그런  꼬리표를 단 셈이다.


돌아보니 나는 나와 닮은 사람과의 연애에서 더 상처를 많이 받았다.  이해심도 적어졌다..  그는 나랑 비슷하니까 나를 더 잘 알고, 더 쉽게 이해해 줄줄 알았다.  그래서 기대가 컸고, 뜻대로 안될때마다 속이 좁다고 몰아부쳤다.  때문에 같이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갔던 것 같다.  

어찌보면 현재의 남자친구는 너무 달라서 오히려 이해해보려고 치열하게 노력하게 된다.


사람관계에서 ‘당연히’ 되는 일은 무엇도 없었던 것 같다.  작은 이해심에 감사하고, 사소한 배려에 기뻐하는 내 태도가 그 관계를 결정한 건 아닐까.  상대는 나와는 ‘전혀 다른 개체’라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을때 이해심은 더 커지는 게 아닐까.  

나랑 닮았든, 내 이상형과 멀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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