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우니와 행복의 역학관계에 대하여 고찰하다
지난 일요일 아침, 비내리는 창밖을 보니 갑자기 다크초콜릿이 듬뿍 들어간 진하고 꾸덕한 브라우니가 먹고 싶어졌다. 학교 체험수업때 쓰다 남아버린 둥글고 덩어리진 초콜릿을 또깍또깍 썰고 있는데 친구 P가 전화를 했다. 그녀는 최근 진지하게 만나는 상대가 회사에서 겪고 있는 스트레스로 그녀자신까지 꽤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연애는 나이가 먹어도 왜이리 어렵냐. 우리가 원하는 건 별거 아니잖아? 결혼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행복하고 싶은 거잖아"
맞다. 우리가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다. 누가 행복하고 싶다는데 태클을 걸 수 있겠는가. 세상이 불공평한 것처럼 행복도 불공평한 거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냔 말이다. 그럼 왜 쉽게 행복해지지 못하는 거지? 여기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건 뭘까.
다행스럽게도 '행복은 키 키우기보다 쉽다'는 의견을 제시하신 분이 있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행복연구센터장인 '최인철 교수'이다. 그는 <굿라이프>라는 책에서 행복 칼로리표를 표기해 두었는데, 의미와 재미가 높은 1사분면의 활동을 더 자주할 수록 행복하다고 말한다. 여행이나 산책, 데이트, 운동, 사교활동이나 요리, 육아 등이 포함된다. 바꿔말하면 의미도, 즐거움도 약한 3사분면의 활동들을 줄이는 게 행복 칼로리를 높이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게임, SNS, 회식, 이동중, TV시청 등이다.
P와 나는 평소에는 명상도 하고, 산책도 하면서 마음을 평온한 상태로 잘 유지하다가도 연애가 잘 안풀리면 평상심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곤 한다. 이는 일까지 영향을 줘서 스트레스가 더 쌓이는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자는 명분으로 널브러져서 유튜브를 본다거나 유튜브를 본다거나... 유튜브를 보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시간은 한없이 흘러가 있고 기분은 결코 나아진 게 없다. 그러다가 상대를 원망하고 의기소침해지는 사이클이 반복된다. 뭔가 다 엉망이 되어가는 것 같고, 급기야 '내 행복은 어디에?'를 부르짖게 되는 것이다.
최인철 교수는 이 책에서 '굿라이프'를 위한 7가지 좋은 것들도 소개했는데 그 중 하나가 'Good self'이다. 잠시 인용해 보자면 이렇다.
좋은 삶이란 좋은 자기로 사는 삶이다.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기 자신이다. 따라서 좋은 삶은 자기 자신에 대햐여 좋은 기분, 만족, 그리고 삶의 의미를 경험하면서 사는 삶이다
브라우니는 기똥차게 맛있었다. 비록 칼로리는 높을지언정, 너무 오래 구워서 촉촉함이 사라졌을 지언정 향이 그윽한 홍차와 먹으니 말그대로 '좀 살 것 같았다'. 완벽한 브라우니는 아니었지만, 좋은 초콜릿을 사용했기 때문에 충분히 괜찮았다.
나는 브라우니를 먹으며 그녀와 내가 때때로 아니 자주 이 부분을 혼동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브라우니와 초콜릿의 관계를 말이다.
초콜릿은 자체로도 너무 맛있지만, 다른 재료와 섞이면 섞인대로 또 멋진 맛이 난다. 단, 한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초콜릿의 기본이 탄탄해야 한다. 초콜릿은 원래 양질의 카카오버터와 카카오 그리고 설탕으로만 이뤄져있다. 카카오버터를 팜유나 다른 식물성유지로 대체한다거나 카카오원두 자체가 품질이 떨어진다면 초콜릿이 맛없는 건 물론이고, 그냥 '비만촉진용 쓰레기'가 될 수 있다. 이런 건 어디에 섞어놓아도 그냥 코코아맛 불량식품이 된다(함께 섞는 재료의 품질도 그리 좋을리는 없을 것이기에). 그래서 쇼콜라띠에가 무언가를 만들려면 '초콜릿'을 중심에 둘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좋은 초콜릿으로 있을 수 있다면 그럭저럭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골치아픈 연애와 일의 무게감에서 조금 덜 눌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