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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동 Nov 01. 2021

개천 용으로 캐스팅되셨어요

수능 만점자도, 행정고시 수석도, 명문대 로스쿨 재학생도 아닌 내가?

나는 한국 사람이지만 김치를 싫어한다. 스무 살 때까지 버섯, 콩나물, 토마토를 안 먹었다. 지독한 편식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지만, 이 모든 건 음식 취향에 국한되어 있는 특이함이었다. 그외 다른 방면에선 평범했다. 평균의 한국 사람. 그러한 믿음에 자그마한 실금이 가기 시작한 건 우리 집의 가난을 체감하면서부터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밀레니얼 세대 분석 기사를 읽은 적 있다.



지금의 20대는 부모보다 가난해지는 첫 세대



충격을 받았다. 전문가가 내놓은 분석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전혀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난했다. 그러나 나의 부모는 나보다 훨씬 더 가난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내가 하향 지원을 해서 그 어떤 기업에 들어간다 해도, 현재 부모가 버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나의 부모보다 무조건 부유할 것이다. 결국 저 신문 기사 속 '20대'는 내가 아니었고, 그 옆의 '부모' 역시 우리 부모님을 지칭하지 않았다. 과장일지 모르겠으나, 기사를 읽고 나는 내가 이 사회의 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좋게 말하면 난 개천에서 난 용이었다. 부모보다 좋은 학벌을 지녔고, 훨씬 더 수준 높은 문화생활, 이를테면 발레 공연이나 오마카세를 즐길 줄 알았다. 그러나 동시에 애매했다. 수능에서 만점을 맞거나, 행정고시에서 수석을 하거나, 적어도 명문대 로스쿨 정도는 들어가야 명실상부 '개천 용'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아닐까? 그에 비해 내 이력은 초라했다. 4년제 대졸에 문과. 학점은 3.7을 간신히 넘는 정도. 개천 용이라면 마땅히 부지런하고, 악바리 같고, 성실한 구석이 있어야 할 텐데 나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 나 잘못 캐스팅된 거 아냐?




초등학생  선생님이 가정환경 조사서를 작성해오라고  적이 있다. 별생각 없이 종이를 내밀었는데, 부모님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정확한 액수를 밝히기 꺼려하던 부모님의 모습. 이상해 보였다.   남짓한 나이였으니  의미는 두지 않고 지나갔으나, 아무튼 그때  아빠의 연봉이 사회적으로 부끄러운 수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20여 년이 지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 활동을 시작하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연봉은 물가상승률에 맞춰 조금씩 상승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빠의 월급은 그대로였다. 얼마 전 건강보험료 서류를 떼며 확인한 아빠의 급여는 십만 자리 숫자에서의 변화만 조금 있을 뿐, 가정환경 조사서를 작성하던 그때와 거의 비슷했다. 정말 이상했다. 아빠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 회사에 20년 넘게 장기근속하며 매달 15일마다 눈이 빠지도록 마감을 치는 사람이, 왜 노동에 대한 제값을 못 받고 있을까? 이게 바로, 자본주의라는 것일까? 자본주의의 뒷맛이 참 씁쓸했다.

 

아빠는 아직도 별다른 연봉 상승 없이 비슷한 액수의 월급을 받으며 같은 회사에 근속 중이다. 내가 아빠보다 더 가진 것은 4년제 대학 졸업장, 그리고 서울 태생이라는 점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사이에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든 걸까? 세대론적 분석에 따르면 내가 아빠보다 가난해야 마땅하다는데, 아빠는 왜 나보다 훨씬 더 가난한 상태인 걸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가족 내 공식 '개천 용'으로 캐스팅되어버린 나는, 앞으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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