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만점자도, 행정고시 수석도, 명문대 로스쿨 재학생도 아닌 내가?
나는 한국 사람이지만 김치를 싫어한다. 스무 살 때까지 버섯, 콩나물, 토마토를 안 먹었다. 지독한 편식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지만, 이 모든 건 음식 취향에 국한되어 있는 특이함이었다. 그외 다른 방면에선 평범했다. 평균의 한국 사람. 그러한 믿음에 자그마한 실금이 가기 시작한 건 우리 집의 가난을 체감하면서부터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밀레니얼 세대 분석 기사를 읽은 적 있다.
지금의 20대는 부모보다 가난해지는 첫 세대
충격을 받았다. 전문가가 내놓은 분석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전혀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난했다. 그러나 나의 부모는 나보다 훨씬 더 가난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내가 하향 지원을 해서 그 어떤 기업에 들어간다 해도, 현재 부모가 버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나의 부모보다 무조건 부유할 것이다. 결국 저 신문 기사 속 '20대'는 내가 아니었고, 그 옆의 '부모' 역시 우리 부모님을 지칭하지 않았다. 과장일지 모르겠으나, 기사를 읽고 나는 내가 이 사회의 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좋게 말하면 난 개천에서 난 용이었다. 부모보다 좋은 학벌을 지녔고, 훨씬 더 수준 높은 문화생활, 이를테면 발레 공연이나 오마카세를 즐길 줄 알았다. 그러나 동시에 애매했다. 수능에서 만점을 맞거나, 행정고시에서 수석을 하거나, 적어도 명문대 로스쿨 정도는 들어가야 명실상부 '개천 용'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아닐까? 그에 비해 내 이력은 초라했다. 4년제 대졸에 문과. 학점은 3.7을 간신히 넘는 정도. 개천 용이라면 마땅히 부지런하고, 악바리 같고, 성실한 구석이 있어야 할 텐데 나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 나 잘못 캐스팅된 거 아냐?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가정환경 조사서를 작성해오라고 한 적이 있다. 별생각 없이 종이를 내밀었는데, 부모님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정확한 액수를 밝히기 꺼려하던 부모님의 모습. 이상해 보였다. 열 살 남짓한 나이였으니 큰 의미는 두지 않고 지나갔으나, 아무튼 그때 난 아빠의 연봉이 사회적으로 부끄러운 수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20여 년이 지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 활동을 시작하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연봉은 물가상승률에 맞춰 조금씩 상승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빠의 월급은 그대로였다. 얼마 전 건강보험료 서류를 떼며 확인한 아빠의 급여는 십만 자리 숫자에서의 변화만 조금 있을 뿐, 가정환경 조사서를 작성하던 그때와 거의 비슷했다. 정말 이상했다. 아빠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 회사에 20년 넘게 장기근속하며 매달 15일마다 눈이 빠지도록 마감을 치는 사람이, 왜 노동에 대한 제값을 못 받고 있을까? 이게 바로, 자본주의라는 것일까? 자본주의의 뒷맛이 참 씁쓸했다.
아빠는 아직도 별다른 연봉 상승 없이 비슷한 액수의 월급을 받으며 같은 회사에 근속 중이다. 내가 아빠보다 더 가진 것은 4년제 대학 졸업장, 그리고 서울 태생이라는 점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사이에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든 걸까? 세대론적 분석에 따르면 내가 아빠보다 가난해야 마땅하다는데, 아빠는 왜 나보다 훨씬 더 가난한 상태인 걸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가족 내 공식 '개천 용'으로 캐스팅되어버린 나는, 앞으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