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어수선할 땐
오롯이 한 자리에서 모진 풍파를 꿋꿋이 이겨낸
석탑을 보자
종교와는 다소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지만, 이상하게 종교적 장소를 방문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믿음의 여부를 떠나서 한없이 고요하고 경건한 곳에 속해 있으면 마치, 지금까지의 고민과 걱정도 하나의 흐름일 뿐이고 한 시절에 지나지 않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여행지에서 놓치고 싶이 않은 장소가 절이나 성당, 교회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절에 있는 석탑은 나의 최애 덕질 유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첫 번째로 소개할 탑은 춘천 청평사에 있는 <청평사 삼층석탑>이다. 탑은 다소 작고 눈에 띄지 않은 곳에 있지만 그만큼 주변 자연환경과 잘 어우러져서 인상적이었다.
청평사 지도(http://cheongpyeongsa.co.kr/)
이 탑을 만나러 가려면 조금 공을 들여야 한다. 춘천 소양강댐 정상에 있는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10분 정도만 가면 청평사 선착장에 내릴 수 있는데 거기서 삼층석탑까지는 도보로 약 25분 정도 걸린다. 탑이 꽤 안쪽에 있고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지는 않는 곳에 있어서 방문이 조금 번거롭기는 하다. 또한 탑을 보려면 줄을 타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과 어르신들에게는 추천하기가 어렵다. 같은 이유로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에도 추천하지 않는다.
구송폭포
그래도 석탑까지 가는 길이 지루하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공주와 상사뱀' 설화, '거북바위' 설화, 그리고 정말 구송폭포 근처에 아홉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지 세다 보면 금방 삼층석탑에 도착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설화의 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풍경이 있고 이야기가 만들어졌겠지만, 오히려 이야기가 있음으로 인하여 그 풍경이 색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특히 '공주와 상사뱀' 설화는 청평사 삼층석탑과도 관련이 깊다.
원나라(혹은 당나라) 공주가 뱀이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 상사병에 걸렸다. 날이 갈수록 병이 심해지고, 공주에게 붙은 뱀은 떨어지지를 않았다. 공주의 아버지는 온 나라 안에 있는 점쟁이들을 불러 성대하게 제(祭)를 올리기도 하고, 뛰어나다는 의원들을 불러 치료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주의 병은 점차 깊어지고, 뱀 또한 떨어지지 않았다. 왕은 마지막 방법으로 전국에 있는 사찰을 순례하면서 부처님에게 빌어보라고 했다. 공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전국에 있는 사찰들을 찾아다니며 지극 정성으로 부처님께 빌었다. 그래도 공주의 병은 치료되지 않았다. 공주는 아버지의 체면도 있고 해서 원나라를 떠나기로 하였다. 산 넘고 물을 건너 정처 없이 떠돌다가 도착한 곳이 지금의 청평사였다. 청평사에 도착한 공주는 뱀에게 “여기 있으면 절에 들어가서 밥을 얻어가지고 오겠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공주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던 뱀이 공주의 몸에서 떨어졌다. 공주는 기이하게 여기며, 청평사 안으로 들어가 밥을 얻어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그 자리에 뱀이 죽어 있었다. 이상해서 뱀을 만져 보았다. 뱀이 말라 있었다. 공주는 어찌나 기뻤던지 원나라로 돌아갔다. 공주의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청평사를 크게 짓게 했다.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그리하여 이 청평사 삼층석탑은 '공주탑'으로 불리기도 한다. 청평사 상사뱀 설화는 위 내용 외에도 다양한데 사실 상사뱀이 공주와 연인이었는데 공주의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뱀이 되었다거나, 후일에 청평사 스님의 옷을 만들어 주고 뱀이 떨어져 나갔다거나 하는 등이다.
청평사 삼층석탑 안내문
특이하게 이 석탑은 법당 앞에 있지 않고 절 주변의 암반 위에 세워져 있다. 설명을 읽어보면 지붕돌인 3층 옥개석은 계곡에서 찾아 복원하였고 탑신석은 새로 만들었다고 쓰여 있는데, 여기서 옥개석이란 아래 왼쪽 사진과 같은 탑 지붕을 말한다.
석탑 옥개석(왼)과 탑신석(오) (국립중앙박물관)
그리고 탑신석은 옥개석과 함께 탑신부를 구성하는 것을 뜻한다. 보통 탑신석과 옥개석을 하나의 층으로 보고 이것을 세어 삼층석탑, 오층석탑이라고 명명한다고. 이제 청평사 삼층석탑의 모습을 함께 보도록 하자!
아래쪽에서 본 삼층석탑
청평사 삼층석탑
청평사는 당나라 태종의 딸인 평양공주가 건립했다는 설화가 내려온다. 그래서 이 탑을 공주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반적으로는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 양식을 따르지만 청평사의 창건 시기로 볼 때 고려초에 건립된 석탑으로 추청된다고 한다.
보통 일본은 목탑의 나라, 한국은 석탑의 나라라고 말한다. 목재가 주는 부드러움도 좋지만 나는 불에도 물에도 잠식당하지 않는 석탑이 참 좋다. 특히나 석탑은 절이 아닌 풍경 속에 있어도 그 자태가 현현하고 아름답다. 춘천 청평사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탑을 보며 오늘의 근심을 덜어보자. 우리도 언젠가는 그 어떤 땅이든 당당하게 딛고 오롯하게 서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