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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탑돌이 Jan 24. 2024

남해 보리암 삼층석탑

(南海菩提庵三層石塔)

춥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따뜻하지도 않은 3월. 제주도보다는 깊고, 강원도보다는 신록의 아름다움이 더 묻어 나는 남해 보리암 정상에서 다소곳이 자리한 삼층석탑을 만날 수 있었다. 보리암은 남해 금산(錦山)에 위치해 있으며 신문왕 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이후 새로 짓고 고치며 지금의 보리암이 완성되었으나 그 업(業)을 따져 보면 굉장히 유래 깊은 절인 것이다!



남해 금산 보리암
보리암 전경



지금은 보리암과 가까운 에 주차장이 있어 주차하고 10-15분가량만 걸어 올라오면 되지만 원효대사 때만 해도 올라오기가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처음 원효대사가 창건한 때의 이름은 보광사(普光寺)이다. 지금의 보리암이라는 이름은 조선 현종 때 개명된 것이다. '보광사(普光寺)'의 한자를 보면 넓을 보(普)에 빛 광(光) 자를 써서 널리 비춘다, 혹은 두루 비춘다는 뜻이 되겠다. 도대체 무엇을 널리, 두루 비추는 것일까?


천촌만락(千村萬落)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하고 음영하여 돌아오니 가난하고 무지몽매한 무리들까지도 모두 부처의 호를 알게 되었고, 모두 나무(南舞)를 칭하게 되었으니 원효의 법화가 컸던 것이다.
- 삼국유사, 원효불기(元曉不羈) 중에서

 

해골물과 요석공주와의 결혼 스토리로 유명한 원효대사가 남긴 여러 업적 중에서 대중과 가장 밀접하다고 생각되는 업적은 바로 '나무아미타불'이다. 그는 '나무아미타불'을 읊으며 진심으로 기도하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백성들에게 전파했다. 이른바 대중불교의 시초다. 원효대사의 '나무아미타불'과 이 '보광사(普光寺)'라는 절의 이름은 그 근간이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도 향유할 수 있는 자비야말로 종교의 존재 의의임을 원효대사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보리암 해수관음상



저 멀리 보리암에서 가장 유명한 해수관세음보살이 보인다. 보리암은 한국의 '3대 관음 성지' 중 하나이다. 강원도 양양 낙산사, 강화도 보문사, 남해 금산 보리암이 그곳이다. 세상의 소리를 본다는 뜻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구제하고 이끄는 보살이다. 『법화경』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즉시 그 음성을 듣고 달려와 자비심으로 구제한다고 한다.



보리암 해수관음상 정면



또한 관음보살은 바다와 인연이 깊어 관음상도 바다 근처에 자리한 경우가 많다. 낙산사도 그렇고 보리암도 그렇다. 이름만 불러도 중생을 보살펴 주는 보살이라 그런지 보리암의 해수관음상 근처에도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해 보리암 삼층석탑


이제 석탑을 이야기해 보자. 신라의 석탑 양식을 답습하고 있어 신라 석탑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고려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두꺼운 지붕돌이나 3단의 지붕돌받침 등이 그 증거다. 이 탑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하나는 수로왕의 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돌아올 때 풍파를 만나 건너 오지를 못 하는 중에 파사석탑(婆娑石塔)을 싣고 무사히 건너왔다는 설화가 있다. 비슷한 이야기로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사리를 원효대사가 이곳에 모셔 두었다고도 전해진다.


다만, 원효대사가 이 삼층석탑을 김해 구지봉 아래에 있던 호계사에서 이곳 보리암까지 옮겨 왔다는 내용은 공통적으로 전해지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구지봉 아래에 있던 탑을 옮겨 왔다는 점이다. 왕을 내어 달라는 구지가(龜旨歌)를 부른 곳이 바로 구지봉이며 수로왕과 나아가서는 가락국과 관련이 깊은 장소이다. 원효대사는 600년대에 활동한 인물이고 수로왕은 그보다 훨씬 이전, 가락국의 초대 국왕이었으므로 두 사람이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불교의 본토인 인도에서 온 허태후가 왕비였기 때문에 불심(佛心)으로 석탑을 옮겨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험준한 산세에 비하면 소박한 이 탑은 멋스럽고 유명한 다른 탑에 비해서 크기도 작고 마모된 곳도 많아서 썩 눈길이 가는 탑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기만 커다란 탑의 웅장함에 압도될 필요도 없고, 세세하게 가공된 정교한 아름다움에 감탄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그저 이 고요한 탑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겉치장을 모두 걷어낸 것을 마주하는 것이 주는 정갈하고 깨끗한 편안함이 느껴지는 탑이다.





<참고문헌>

보리암(http://www.boriam.or.kr)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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