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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 Jan 12. 2023

'효'의 무게

둘째 효진이의 이야기 


얼마 전 부모님과 통화를 하다가 아버지가 말했다.


"기억하지? 내가 너 대학교 졸업할 때 말한 거!"


나는 갸우뚱했다. 평소에 열~심히 살라는 말 밖에는 기억나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는 졸업할 때 효도 다 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그러니까 마음껏 살아."


내 이름에는 '효'가 들어가 있다.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말을 이름에 넣어버리다니 너무 치사하지 않은가.

다른 '효'들은 모르겠지만 둘째로 태어나 나름 제 멋대로 살면서 항상 숙제를 미루고 사는 기분이었는데,

이런 면죄부(?)를 주신 적이 있다니! 그것도 이미 십육 년 전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신 것도 같았다.

다만 그때는 와닿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마흔을 넘기고는 생각이 달라져버렸다.

사실 나는 철부지 그대로였지만 부모님이 달라졌다.

건강이 안 좋아지시고, 새로운 일을 하다가 자꾸 잘리시거나

힘에 부쳐 못하시게 됐다는 소식들이 들려왔다.


먼 곳에서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던 나에게 갑자기 불안이 밀려왔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거였나'


남들은 직장 잘 잡아서, 결혼해서 애를 낳고, 집도 사고, 나름 자리들을 잡아 가는데

나는 원하는 대로 산다고 돈 많이 주는 직장도 때려치우고, 여행을 다니고, 애도 안 낳고, 때로는 열심히 무언가 하다가도 별안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들도 많았다. 중간중간 들어온 잡오퍼도 거절했다. 언니는 다달이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도 나는 최근에야 조금씩 드리기 시작했다. 결혼할 때 그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히 부모님과 나 사이 그 어떤 부채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경제적인 부채는 없더라도 마음의 부채가 남아 있었다.


나는 이'효'리처럼 잘 나가는 연예인도 아니고

양'효'진처럼 배구를 기갈나게 잘하지도 않았다.


그저 '효'라는 이름을 외면하며 마음껏 살아왔을 뿐이다.

수의대에 들어간 것도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효도는 다 했다니,

진짜 효도를 하지도 않았는데...


언니의 이름을 질투한 적도 있다. 영어로 불러도 쉬운 이름, 유진.

있을 '유'는 마치 거기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는 이름 같았다.

언니는 부모님 가까이 살며 살뜰히 챙긴다. 말 그대로 거기 있어주는 존재가 '효도'를 하는 게 아닐까?


아버지에게 '왜 내가 효도를 다했다'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단순히 당신을 '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부모님이 내게 이름을 지어주며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만 이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더 이상 '왜 나를 낳았냐'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낳아줘서 참 고맙다'라고 말해온 시간이 '왜 나를 낳았냐'라고 말해왔던 시간보다 더 짧다.


'왜 이 세상에 나를 내 놓아서 이런 고통을 겪게 하는가'라는 외침은

 어느새 '이 모퉁이를 돌면 고통은 예전과 같지 않고 또 다른 좋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구나'로 바뀌어 갔다.

인생은 살아볼만 했다.  


아버지는 그 변화를 알아챈 것일까. 그것이 효도라고 생각하신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가 존재의 기쁨을 알아챈 순간,


자신이 이 세계에 존재함을 감사히 여기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기까지 인내하신 건지도.

그러니 이제 네가 태생의 숙제를 내려놓고 어딜 가도 괜찮다고 말해준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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