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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예나 Nov 25. 2019

구한말:박사학위를 포기하고 의료 선교를 나오다

"여자라는 이유로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애니 엘레스, 1885년 조선 땅에 방문한 최초의 여성 의료 선교사


 개항 이후 미국 감리교회의 목사 맥클레이는 정부 관리 김옥균을 만나 고종 황제에게 “미 감리회가 한국에서 의료와 교육 사업을 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일본어로 쓴 선교 청원서를 전달했다. 1884년 7월 2일 황제 고종(高宗 : 1852-1919)은 "미 감리교회가 한국에서 의료와 교육 사업을 곧 착수해도 좋다는『선교 윤허』통지문을 내린다. 하지만 이러한 서양식 병원의 혜택 또한 유교사상 아래 내외를 강요받던 여성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선교사들을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본국에 편지를 보낸다.

“여기에 절실히 필요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저의 길을 명확히 알았더라면 오래전에 그 사람을 요청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바로 여의사입니다.”
(알렌이 엘린 우드에게 보낸 1885년 10월 7일 자 편지)
애니 엘레스

 미국 미시간에서  태어난 애니 엘레스는 락포드 대학 재학 중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마음먹고 보스턴 의과 대학교로 진학하여, 이란 선교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사(박사)가 되기 한 학기를 남겨둔 때 "여의사를 구할 수 없어 당신이 와 줄 수 없겠습니까?"라는 전보에 한국으로 출발해 1886년 7월 4일 조선 땅에 도착한다. 애니 엘레스는 광혜원에서 여성 의료진으로 활동하였으며 명성황후의 담당 의사로 임명되어 정경부인이라는 작위를 하사 받는다. 하지만 정식 의사가 아니었기에 이후 교육 사업을 시작하여 정동(정신) 여학교를 설립한다. 이후 50년이 넘게 한국에서 선교를 진행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이자 '보구여관' 


1887년 보구여관 전경

1885년 내한하여 조선 여성을 위한 최초의 학교'이화학당'을 세운 스크랜턴은, 조선땅에는 여성이 남성이 운영하는 병원에 갈 수 없는 악습이 있음을 안타까워하며 하며 한국 여성들만을 위한 병원 설립 기금의 청원을 미국 감리교의 여성 해외 선교부에 제출하였고, 1887년 10월 31일 그토록 기다리던 여성 의사 메타 하워드(Meta Howard)가 파견되었다. 이내 ' 보구여관'을 설치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 여성 병원이 되었다.


보구여관의 첫 번째 의사 메타 하워드 

메타 하워드

 메타 하워드 박사는 노스웨스턴 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바로 한국에 선교사로 갈 준비를 했다. 부산에 도착한 그는 6일 만에 한국어 읽는 법을 배웠으며 6개월 후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한국에서 2년 정도를 머물렀으며 약국과 병원을 뿐만 아니라 거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외진 까지 진행하였고 하루에도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을 진료해야 했다. 또한 남성 의사는 여성 환자를 진료할 수 없었지만 여성 의사는 남성 환자 또한 진료할 수 있었기에 여성 의사인 그의 업무량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고되었는데. 결국 하워드는 심한 과로에 노출되어 건강이 악화되고 1889년에는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성들의 기록은 계속되어야 한다.



블로그에 한국 여성 역사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https://hyena.life/



참고 우리나라 첫 여성병원 보구여관 <의학신문> , 제중원의 여성 의사들 <의사신문>, [첫 여성 의료 선교사, 애니 엘러스] “女의사 절실” 요청에 2년 기약 왔다가 50년 사역 <국민일보> 한국콘텐츠진흥원 보구여관 , 미국 묘지 역사기록관 , [첫 여성 의료 선교사, 애니 엘러스] 제중원 女환자 돌보며 명성황후 주치의 활동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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