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말괄량이, 남자 같은 여자아이.
어릴 적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를 꼽아보자면 단연 “남자아이 같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남자애 같다는 게 뭘까?
확실히 몰라도 어른들이 보기에 남자아이 같을 때는 존재한다. 산만하게 행동해 주변에 소란을 일으켰을 때, 혹은 짓궂은 장난을 쳤을 때, 안에서보다는 밖에서 활동하는 것을 좋아할 때, 총싸움 같은 조금 과격한 컴퓨터 게임에 매달릴 때였던 때.
남자애 같다는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어도 남자아이 같다는 말이 나에게 좋은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은 어린 시절에도 느낄 수 있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아래 나를 돌보셨던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13살 이전 아동기 때의 나는 바깥 활동을 좋아했다고 한다. 동산 어귀에 풀어두기만 하면 어린 야생마처럼 여기저기 알아서 들 쏘시고 다니며 놀 거리를 찾아다녔고 벌레 채집에 취미가 있던 나는 잠자리채와 채집통을 들고 온종일 산을 누비며 메뚜기와 사마귀를 채집했다. 친구와 개울에 가서 한가득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당차고 낯가림이 없어 할머니 손을 잡고 나가 벤치에 있는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할머니를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할머니들은 동네 정자에 모여 앉아 고스톱을 치고 놀았는데 그 모습을 보던 어린 시절의 내가 할머니 손을 잡고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우리 할머니랑도 놀아요” 하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할머님들은 어른들에게도 스스럼없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나의 모습에 심술을 부리듯 “누가 네 할머니인데!”라고 물었고 어린 시절의 나는 “우리 할머니는 아빠의 엄마예요!”라며 지지 않고 말대답을 했다고 했다. 고스톱을 안 좋아하는 할머니는 놀이에 낄 수는 없었지만 이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껄껄거리며 유쾌한 웃음을 지으시는 것을 보아 썩 나쁘지 않은 기억인가 보다.
또한 데리고 다니다 보면 얼마나 가지고 있는 장기가 많은지 동네 할머니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하모니카를 연주하여 끼(?)를 부렸고. 할머니는 그랬던 나와 돌아다니는 게 심심하지 않아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이리저리 걱정이 많은 부모님은 나를 더 까다롭게 생각했지만 직접 우리를 돌본 할머니는 또 다른 입장인 모양이었다. 활발한 것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씩씩하고 당차다 혼자 알아서 잘한다.'
어쩌면 남자아이 같다는 것은 그런 것을 말하는 걸까?
하지만 호기심이 많고 행동이 빠른 만큼 말썽도 많았다. 장롱 위가 궁금하다며 장롱 위에 기어 올라가다 장롱을 넘어뜨리기도 했고 창문에 붙은 매미를 구경한다고 지금은 통 보기 어려운 뚱뚱한 텔레비전 위에 올라가다 텔레비전을 넘어뜨리기도 했으며 바깥세상에 정신이 팔려 연락도 없이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오는 일도 잦았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나에겐 고문과도 같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성이 찼고. 몸으로 움직여 그 궁금증을 풀어야 했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질 때문에 예쁜 원피스를 사주면 며칠이 되지 않아 흙먼지에 굴린 걸래 꼴로 만들었고. 장난감을 사주면 모조리 망가뜨리고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말괄량이’ ‘사고뭉치’라는 호칭은 내 이름 대신 불러 어느 순간 이름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너는 여자애가 왜 이렇게 말썽이니!"
그럴 때마다 나오는 말이 '여자애 답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부모님은 그런 여자아이답지 않은 나를 ‘교정’ 해보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셨다. 우선 산만하고 정신이 없는 나에게 보탬이 돼라, 무용과 미술을 가르쳤으며 찍찍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나에게 걸음걸이를 몸가짐을 조심히 해야 한다고 말씀했다. 나는 그런 부모님의 말씀에 항상 “왜?”라고 반문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나중에 시집 못 간다”라는 이야기뿐이다. “시집 못 가는 게 그렇게 큰일이야?” 나는 또 물어봤지만, 말꼬투리를 잡는 버릇 나쁜 아이라 또 혼날 뿐이다.
언제는 내가 선물로 받은 바비인형을 가지고 동생과 놀이를 하다 바비 인형의 머리를 커트해보자! 하고 자르기 시작했고. 어떻게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민머리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는 바비인형. 콜라병 같은 잘록한 허리 금발의 긴 웨이브 머리가 생명이었던 그 바비 인형은 몇 없는 모공이 드러나 조금 흉측한 모양새가 되었고 나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부모님에게 혼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금발의 웨이브가 진 머리카락 하나 없어졌지만, 바비인형은 그 머리카락을 잃음으로써 그들이 칭송하는 여성성, 아름다움이 제거되었다. 바비인형은 더 이상 예쁘지 않았고. 예쁘지 않은 '바비'인형은 망가진 것이었다. 나 또한 그 바비인형을 “망가뜨렸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장난감 박스 한구석에 눈에 띄지 않게 바비인형을 처박아 두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에게 발각되었고 역시나 ‘장난감을 망가뜨린’ 죄로 호되게 혼이 났다.
"여자아이가 그렇게 해선 못써"
만일 내가 남자아이였다면, 남자아이로 태어나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망가뜨렸다면 그렇게 호되게 혼이 났을까? 어쩌면 바비인형의 긴 머리가 잘린 것이 망가진 것이라고 치부되는 것처럼 나 또한 망가진 여자 아이로 보였던 걸까? 그때의 나는 이유 모를 억울함에 이삼일을 내리 펑펑 울었다.
"여자아이가 뭔데?"
여자 아이다운 것은 얌전한 것, 여자아이다운 것은 물건을 아끼는 것, 그들에게 여자아이가 얌전한 것은 여자아이가 세심한 것은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스러운 그런 것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여자 아이 다운 게 무엇인지 왜 여자다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나는 그저 부모님의 불호령이 무서워 그 순간순간 '여자아이'답게 행동하려고 했다. 그들이 준 틀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 스스로의 행동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호되게 혼나도 나의 산만하고 충동적인 행동들은 잦아들지 않았다. 여자아이 다뤄지는 것은 그렇게 조신해지는 것은 얌전해지는 것은 나에겐 너무 힘든 일이었다. 특히 ADHD 아동이었던 나에게는 남들보다 수어 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겹겹이 악감정으로 남았고. 중학교에 들어갈 때쯤 나의 반항끼가 터져 나왔다.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의 만든 틀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혼을 내며 매를 드는 부모님, '그들의 말처럼 내가 바르고 곱게 자란다면 부모님이 스스로 매를 든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겠지? 절대 그렇게는 두지 못해’라는 독기와 ‘에라 내 맘대로 하자’는 반항적인 심보에서 시작된 몸부림. 나는 부모님이 하라는 것을 모두 반대로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정해준 틀을 부시고. 말썽을 피우고 온갖 심술을 부렸다. 마치 ‘말괄량이 삐삐’에 나오는 삐삐처럼.
그것은 어쩌면 그들이 바라는 '여자아이'로 길러지길 거부했던 내 나름의 혁명이었지만. 나는 사회도 부모님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고뭉치였다.
하지만 어른들이 말하던 그 몹쓸 '호기심' ‘충동성’등 여자아이 답지 않은 '사고뭉치'라는 특성이 제야의 종을 치고 BBC100인의 여성에 오르도록 한 그 '디지털 성폭력 근절' 운동을 하게 했던 원인 중 하나다.
19살 때 인터넷에서 사람을 모아 조직을 꾸리기 시작한 것도, 대책 없이 스무 살에 집을 나와 단체를 시작하게 된 것도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고 할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남자아이 같다'며 핀잔을 들었던 '여자아이'답고 싶지 않았던 그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나는 여느 때처럼 큰 사고를 친 기분인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사고뭉치라는 것은 어쩌면 끝없는 도전정신과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 아닐까? 어쩔 땐 대책 없어 보일지 몰라도 답이 없어 보이더라도 가능성 하나를 믿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그 태도가 날 여기까지 인도했다는 것이. 이 또한 신비롭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