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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예나 Aug 27. 2020

여자와 남자가 달랐던 인터넷 환경

여성혐오의 매트릭스 속에서

그때 그 시절 정보통신망법에서 '아동 청소년'을 보호 하기 전 버디버디의 채팅 채널에 들어가 보면 성적인, 또는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수집해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나는 그 속에서 3살도 채 되지 않는 아이가 강간 당하는 사진을 보았다. 나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디시인사이드에도 ‘그런’ 사진이 매일 올라왔다 여성의 성기에 남성의 성기가 삽입된 사진 오빠는 그것이 ‘섹스’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섹스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게임 속에서 내가 여자라는 것을 알자 접근해 여자 친구가 되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몸 사진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야한 것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변태 여자)변녀냐고 물었다.  


 어린 시절 남자아이들이 많이 하는 게임 ‘스타크래프트’ 에는 ‘유즈맵’이라는 유저들이 만드는 게임 콘텐츠가 있었는데, 당시 디지털 성폭력의 피해자였던 연예인을 유즈맵의 장난거리로 삼았다.


유저의 캐릭터가 맵을 모두 확인하기 전까지는 맵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게 하고 복잡한 미로 맵을 만들고 그것을 모두 풀면 맵 전체가 들어나는 미니게임. 그들은 그것을 이용해 맵을 모두 확인하면 특정 피해자와 닮은 모습을 한, 또는 영상의 한 장면을 캡쳐한 듯 벗은 형태의 여성이 드러나는 맵을 만들었다. 게임방의 제목은 피해자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게임을 통해 디지털 성폭력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어렴풋히 그 사건으로 그때부터 피해자를 알고 있었다. 


 그 디지털 성폭력은 어찌나 유명했던지 1999년 한국에 막 인터넷이 상륙할 때 즈음 PC통신업체 하이텔에서 진행한 통계에서도 그 저력이 드러난다.  당시 네티즌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올해 사이버 공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O양 비디오'는 40.9%, `스타크래프트 열풍'은 23.3%의 지지를 얻어 1, 2위를 각각 차지했고. [연합뉴스: 네티즌들 o 양 비디오 가장 기억에 남아] 한국의 언론은 그 성착취 영상이 한국의 인터넷 문화를 키운 장본인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후발 주자 일지 모르는 스타크래프트 안에서는 당연히 피해자를 희롱하고 모욕하는 글이 넘쳤다. 그중 ‘걸레’라는 말이 없었을까?  


여성을 비난할 때 ‘걸레’라는 말을 쓰는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일찍이 컴퓨터와 게임을 접한 남자아이들이 그것이 경멸의 의미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이상하다. 커뮤니티나 뉴스 기사에서 여성 연예인들을 비하할 때 그들은 ‘걸레’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아이들은 그것을 빠르게 흡수했고. 흡수한 대로 쏟아낸다.  


남자아이들이 많이 하는 게임이 아닌 혼성이 섞여서 하는 게임, 메이플 스토리 , 크레이지 아케이드, 알투비투 등의 게임에서는 “여자 친구”을 구한다거나 “초등학생 걸레” “초등학생 변녀”를 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들은 아이들이 가진 당연한 호기심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자 했다. 


호기심이 왕성한 유년기를 보냈던 나 또한 그중 여자 친구를 구한다는 게시글에 호기심을 가지고 말을 걸어본 적이 있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던 나에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이제부터 연애를 하자고 말했다. 연애에 대하여 잘 모르던 나는 그렇게 첫(?) 연애를 시작했다. 시답지 않은 대화를 나누던 그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 달라며 요청했다. 어릴 때부터 오빠를 통해 간접적으로 ‘한국의 비틀어진 성착취 산업’을 알게 된 나는 나의 신체 사진이 어떻게 쓰일 것이라고 그때부터 어렴풋히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강력하게 거부했고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을 몰랐던 아이들도 그렇게 거부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내가 여자라는 것을 알면 또는 여자라는 것을 알고 접근해 몸 사진이나 웹캠을 통한 ‘영상 통화’를 요구하곤 했다. 한 번은 ‘언니’라고 주장하는 한 사람이 나에게 서로 몸 사진을 교환하자고 요청했다. 나는 모니터 너머의 그 사람이 진짜 ‘언니’인지 혹은 중년의 남성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단지 자신이 ‘여자’라고 주장하는 그 말에 사진을 ‘교환’하자는 말에 진심으로 혹했을 때가 있었다. 신체의 변화가 일어났던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나의 신체의 변화를 타인에게 확인받고 싶었던 감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사진을 교환하는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학교에서는  남자아이들은 여자애들에게 ‘보지’를 아냐며 낄낄거렸다. 나는 그들의 말을 알아들으면서도 알아듣지 못한 척 딴청을 피웠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잘 몰랐다. 다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서 그런 것을 알게 되었는지 알았다. 모를 수 없었다.  


의미를 모르고 툭툭 내뱉는 아이도 있었다. 나도 뜻과 의미를 모르고 걸레라는 말을 부정과 경멸의 의미로 사용하다가. ‘걸레’라는 단어의 뜻이 궁금해 인터넷에 검색했다. ‘걸레’는 아무에게나 몸을 내어주는 사람, 아니 여자였다. 여자 애들은 ‘걸레’의 의미를 알고 난 후로부터 ‘걸레’가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야 했다.  

 ‘걸레’라는 낙인이 찍히면 자연스럽게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에서 걸레란 당연히 괴롭힘 당해도 되는 하나의 ‘낙인’이었고 아이들은 그것을 흡수했다. 


그 와중에도 "야동"의 열풍은 초등학생들에게서도 피해 갈 수 없었다.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김본좌를 비롯한 수많은 '지켜주지 못한' 지못미 본좌들이 있었지 않았던가. 남자아이들은 서로를 '본좌'라고 부르며 놀았다. 저녁 7시 가족들이 함께 보는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 순재는 우리의 기억 속 깊게 각인되었다. 


그 시절 나에게 소라넷을 포함한 ’ 야동‘이란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아이들은 말만 하지 않을 따름이지 아이들은 대게 ’ 야동‘을 접한 적이 있었다. 남자애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남들이 보는 앞에서 낄낄거리며 야동의 관련된 이야기를 했으며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들도 너 혹시 ’ 야동‘ 본 적 있니? 친한 친구 사이끼리 물어보기도 했다. 아이들은 ’ 야동‘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미성년자가 감히 누려선 안 되는 어른들의 문화였을 뿐이다. 학교에서는 그저 ’ 어른들‘은 저런 것을 보는 구나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생으로 넘어가는 무렵 알게 된 사이트가 소라넷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지나가는 말로 소라넷’이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그 사이트에는 변태적인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듣고 그 사이트를 접속해보았다. 그때가 처음 소라넷이라는 사이트를 접한 때였다, 그때의 소라넷도 폐쇄되기 직전의 소라넷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2010년도부터 상용화되기 시작한 스마트폰의 물결과 함께 아이들은 ’ 야동 사이트‘의 이름만 알면 손쉽게 영상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나 또힌 또래 아이들과 집에 모여 놀다가 한 번은 같이 문제의 사이트에 접속해보기도 했다. 호기심이 많은 여자아이들은 소위 ’ 야동‘이라고 불리는 문화를 탐구하니 위해 함께 영상을 시청하기도 했다. “나는 일본 영상은 좀 과장된 거 같고, 서양 영상은 좀 역겨워 역시 한국인이라서 그런가?.”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영상속의 여성이 과장된 행동을 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생리적인 거부감과 호기심이 같이 휘몰아쳤다.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다. 이상 깊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역하다, 난 동영상은 취향이 아닌가 봐” 그렇게 머쓱하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다른 것도 많잖아”   나는 그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취향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중학교 때쯤 내가 아는 것을 숨기는 것이 억울했다, 나는 남자아이들 사이의 농담에 끼어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싸이월드에서 ‘야동’ 사이트를 공유하는 이들을 보고도 그냥 코웃음 치며 넘어갔다. 한 술 더 떠 나는 아이들이 공유하고자 올린 사이트를 몇 번 뒤적거리다가 카테고리로 나뉜 여러 종류의 영상들을 보고, 그냥 국산 야동이라는 것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흐릿한 화질, ‘전 여자 친구’ ‘00 학교’ ‘화장실’을 마주치고도 그냥 저런 걸 보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남학생 여학생이 때로 몰려 학급 컴퓨터로 ’ 야동‘을 틀어놓기도 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 사건에 동조했었다. 


남자아이들은 그런 폭력적인 표현을 모방하는 나에게 깨어있는 사고를 가졌다고 했다. 어쩌면 그들의 그룹의 들어가기 위한 통과 의례가 아닌가 싶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부모님의 아이디를 통해 '웹하드' 아이디를 공유해 돈을 충전하고 그 아이디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했다. 반마다, 그룹마다 그런 '웹하드'를 공유하는 '본좌'가 멀리가 아닌 가까이 존재했으며. 


당시 웹하드는 그런 아이들과 성인들의 돈으로 급속도로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저 자신의 비밀을 알려주는 그들의 반응에, 어쩌면 그들의 바운더리에 그 카르텔 속에 속하게 되었음을 기뻐했다. 어쩌면 내가 포식자의 굴에 들어간 피식자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나는 한발 더 나아가 그들에게 농담처럼 '야동'의 취향을 물어봤다. 어떤 아이는 외국 영상은 거북하다고 했다. 국산 야동이 좋다고 했다. 외국 야동을 좋아한다는 아이에게 백마가 좋은 거냐며 낄낄거렸다. 한국은 포르노가 불법이라며 투덜거리던 아이들은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말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은  '야동'을  봐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말보다는 어른이 되어서 보라는 말을 더 많이 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포르노가 1990년도 극장에서 상영되던 애로 영화일지는 몰라도, 그들은 학생들이 ’ 야동‘을 접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그때 당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 교내 집단 강간 사건‘들이 그것에 일조했는 언론의 말에.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야동) 포르노에 중독되면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없어서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어른이 돼서 보거라” 아이들을 어르는 어른들의 말에 아이들은 “우리도 현실과 야동을 충분히 구분할 수 있어요!”라고 뾰족하게 대답했다. 나는 아이들의 의견에 전부 동의하지는 못해도, 현실과 포르노를 구분할 줄 모를 정도로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 성욕에 약한‘(성교육 교과서에 따르면) 남자아이들이 그런다면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마음껏 보렴” 


아이들은 야유했다. 왜 지금 볼 수 없는 건가요? 


중학생 때였을까, 연예인의 몸캠 영상이 터졌다며 떠들썩했다. 아이들은 배신당한 것처럼 씩씩거렸다. 그 사람을 조롱하고 경멸했다. 나는 그 사건을 보며 사진을 공유할까 말까 머뭇거리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나는 그 사람의 편을 들어주려다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아이들은 타인의 사적인 사진 또는 영상물을 찍어 유포하거나, 타인이 유포한 사진이나 영상물을 보는 것이 범죄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 그들의 사행화를 헤집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급속도로 퍼져나간 SNS 문화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고 익숙한 것이었을 뿐이다. 


 또한 나는 그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정신이 아찔해졌다. 사람들은 욕설을 하면서도 너도나도 그 영상을 다운로드하여보고자 했다. 아마 내가 그때 인터넷의 사람들의 유혹에 넘어갔다면. 나도 그와 같이 걸레 낙인을 두려워해야만 했을 것이다. 나는 걸레가 되지 않았음을 안도했다 


인터넷에서는 여성 혐오적인 글이 쏟아져 나왔다.  “걸레”를 구분하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을 나는 불쾌해하면서도 유심히 읽었다. “성기는 핑크색이어야 처녀다.” “걸래는 성기가 많이 마찰되어 갈색으로 착색이 되어있다.” “소음순이나 대음순이 늘어져있다.” 나는 2차 성징이 오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한 나의 성기를 보며 성기의 모형이 그들의 말하는 ‘이상적’ 모양이 아닌 것에 혐오감을 느꼈다. 나는 그때부터 ‘예쁜이’ 수술이라는 일명 성기 개조 수술에 관심을 가졌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뛰어놀다 질 주름이 찢어진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이를 나중에 남자 친구가 생기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걱정했다. 나의 신체를 하나하나 조각내어 어떻게 평가당할지를 두려워했다.  


인터넷 속의 성 관념은 폭력적이고 일그러진 성범죄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여성이었다. 잘 나가는 게임 캐릭터의 몸매와 얼굴을 이리저리 세분화해서 커스터마이징 하는 것처럼, 그것이 잘 나가는 게임 상품이었던 그 속에서.  


"역시 가슴은 크게 만드는 편이 났지 않아? 허리는 더 잘록하게. 종아리는 늘씬하게 " 


게임 속 여성의 (플레이어 캐릭터 제작) 캐릭터의 커스터 마이징 좁고도 폭은 넓다. 그들은 '그 사회'가 만들어낸 이상향인 유아와 20대 여성에서 떠날 수 없다, 하지만 신체의 한 부분 한 부분 얼굴 가슴부터 허리 사이즈 엉덩이 사이즈 모든 것을 쪼개어 변형할 수 있다. 물리 엔진으로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가슴 '일명 바스트 무빙'에 얼마나 많은 기술력이 투자되었는지 모른다. 그 여성 캐릭터는 사실 누군가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존재했다.  그에 비해 남성 캐릭터의 커스터 마이징은 어떻던가 얼굴과 근육질과 근육질이 아닌 사이에 맴돌지만 그들은 나이와 체형이 자유롭다, 뚱뚱함과 근육질, 노인과 청년 사이에서 자유롭게 넘나 든다. 우리가 조종하는 게임 캐릭터가 아닌, 게임 속 아주 이따금 마주치게 되는, 게임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불쌍한 주변인'NPC'로만 존재하는 노년의 여성들. 그 구조는 뒤늦게 2015년 페미니즘 이후 조금 바뀌었지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게임 속 캐릭터와 여성들이 얼마나 다른 처지였을까? 아이들은 게임 속 캐릭터 이상의 자신을 상상하지 못하고, 그 속의 모습은 한정되어 있었다. 같은 인터넷 환경에서도 여자 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은 다른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컴퓨터를 주류로 사용하는 남성들이었다. 그 순간에 그 문화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은 모두 그 억압과 폭력의 피해자였으며 가해자으며 방관자로 전락했다. 


 나는 그 문화 속에 어쩌면 게임 캐릭터와 같은 존재로 있던 '나의 몸' 또한 그렇게 게임 캐릭터를 커스터 마이징 하듯 바꿔 버리고 싶었다. 여자 아이들은 성형을 하기 위해, 아니 자신의 몸을 커스터마이징 하기 위해 돈을 모았다. 메갈리아 이후 탈코르셋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나는 게임의 캐릭터처럼 그렇게 쉽게 바꿔 버릴 수 없는 나의 몸을 혐오했다.  


어쩌면 지금 20대 여성들에게 탈코르셋이란 그저 꾸밈의 탈피 이상의 의미가 존재하는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이 배워온 사회, 게임의 캐릭터, '대상' 아닌 '주체' 인간으로서 인간의 시아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아마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은 경험 똑같은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디지털 성폭력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수많은 사건들을 지나쳐왔으리라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게 문제라고 지적하지 못했다. 문제라고 생각을 하더라도 ‘범죄’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일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냐며 경악하지만 그때 그 문화 속에서 살아갔던 나는 이제야 그런 모든 것들이 ‘범죄’로서 불려지는 것에 대한 안도와, 가슴 아픔을 느낀다. 

 어쩌면 격렬한 전쟁 속에서 늘 컴퓨터가 해롭다고 했던 부모님의 말은 사실이다, 컴퓨터 속의 그 네트워크가 그 안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유해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몰랐다 그들도 그 마저도 영향을 받고 있었으며 디지털 네트워크 속 사람들은 이미 대중이며 그 벽을 붕괴하고 현실에 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여성을 상품으로 키워냈다 일컫어지는 한국의 디지털 문명. 


어느새 우리는 그 메트릭스에 점령당했있었고. 깨어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황망함에 눈을 감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에겐 함께 해야 할 자매들이 같이 깨어난 자매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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