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항상 송곳이어야 하나
꽤 괜찮을 뻔 했던 저녁식사가 한국에서 겪어왔던 전형적인 경험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엑셀러레이터 배치 10개-20개 스타트업 중 내가 단 한명의 여자였을 때
정부 지원금을 받던 수십개 팀 창업자 중 역시 내가 단 한명의 여자였을 때
해외 견학갈 창업자 그룹 중 내가 단 한명의 여자였을 때
답답했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만 같다.
차별은 너무나도 은근하기에 (Subtle) 그 때 그 때 반응하기도 어려울 정도지만 대화 속에 당연한듯이 녹아있는 차별들이 쌓이다보면 가끔은 그냥 너무 억울하고 화날 때가 있다.
40대쯤 되는 정부 담당자는 다른 창업자들에겐 다 대표님, 이사님이라고 부르면서 나한테만은 OO씨라는 호칭을 썼다. 창업자들 간 네트워킹 행사에서 다른 대표님이랑 얘기하고 있으면 나한테는 꼭 둘이 싱글 아니냐 사귀어 보라고 엮어댔다. 해외 견학갈 창업자 그룹 중 내가 섞이자 '아 여자분 섞인 적이 없는데.. 여자분은 어떻게 운영할지 몰라서요. 여자분들은 준비하는 데 오래걸리잖아요' 하면서 전형적인 프레임을 씌웠다. 그 외에도 술 따르라는 요청을 하질 않나, 미팅 나갈 때마다 대표랑 같이 나가면 공동창업자라고 해도 자연스럽게 비서 취급 하는 사람이 수십이었다. 지금은 심지어 사업을 같이 하는 사람이 약혼자라고 하면 나는 같은 창업자가 아니라 그저 '이 사업을 이해해주는 친절한 여자친구^^ 필요한 것들을 서포트함' 정도로 포장되는 현실이다.
마치 평생을 어린애취급 받는 느낌이다.
우습게도 그냥 한 명의 어른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 매번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우리집을 경제적으로 이끄셨고, 성공한 사업가이신 내 어머니는
낭중지추가 되면 어디에서든 인정받으니 너무 궤념치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러고자 했다. 일부러 영업을 나서고 밀어붙여야 하는 일들을 맡았다.
하지만 때로는
왜 나는 항상 송곳이어야만 존중받을 수 있는지 답답하고 억울하다.
고구마를 백 개 먹은 기분이다.
때로는 무시하고
때로는 웃어넘기고
때로는 날 세워서 얘기해보지만
어떤 시나리오도 기분 좋게 끝나는 일이 없다.
때로는 나라고 말할 자격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 때마저 있다.
이런 인식은 너무나도 뿌리깊게 자리한 것들이라서 대학 때나 사회 초년생일 때 나 또한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의 일부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그 땐 그렇게 해야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고 그 인식에 편승해서 한 술 더 떠줘야 사회에 적응하나보다 생각했으니 말이다. 나 또한 어떤 그룹에 대한 차별이 나도 모르게 녹아들어서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고. 실제로 나쁜 의도를 갖고 얘기하는 건 아닌거 같은데 그냥 그 사람들에겐 어떤 컨셉들이 너무 당연한거겠지.
그리고 결국 이런 핑계들로
나는 그 날도
내 편이 되어주지 못하고
웃어넘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