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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클레어 Jul 05. 2023

너의 이름은, 태양

너의 안테나까지 사랑해

네 이름을 짓기까지는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어. 네 아빠와 나는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짬이 날 때마다 어떤 이름을 지어주면 좋을까 이야기를 하곤 했지. 인기 많다는 1000개 이름 순위도 찾아보고, 괜히 성공한 사람들 이름을 따라 지어주면 네가 성공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예쁘다는 순우리말 단어 목록도 뒤져보고 말이야.


좋은 이름을 짓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았어. 엄마와 아빠는 너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이름을 선물해주고 싶었거든. 특히 아빠는 본인의 이름이 이름 외에도 다른 의미를 가졌다는 점("기대")이 살면서 참 마음에 들었대. 그러다보니 이름이 될 만한 단어 중에 너에게 딱 짓고 싶을 정도로 의미까지 와닿는 단어를 찾기 힘들었던 것 같아.


그러다 우리가 생각한 이름은 바로 "서울" - 아마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살게 될 네가 뿌리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특별하고도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어. 미국에서 부르기도 쉬울거라고 생각했고 말이야. 주변에서는 너무 도시 이름이고 독특하니 아이가 싫어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만류가 있었지만, 우리는 William 이라는 영어 이름이 있으니 네가 원하면 William 으로 살아갈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서 괜찮겠다 싶었어,


*윌리엄이라는 영어 이름은 벨라 이모가 같이 지어준 이름이야. 뮤어우즈 국립공원을 함께 걸으며 1시간 넘게 네 이름 얘기를 하다가 우리가 예전에 "I can, I will" 이라는 팔찌를 만들었던 게 기억나서, 의지라는 뜻을 담은 Will 로 영어이름을 짓자고 했었지.


William Seoul Hong - 이게 우리가 한동안 생각했던 너의 이름이었어.


독특하고 의미가 담긴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지만, 걸리는 게 없는 건 아니었어. 이 이름을 얘기하면 대개 아주 특별하다고 좋아하거나 너무 특이하다고 손사래를 치거나 둘 중 하나였거든. 네 할머니 두 분은 너무 도시 이름을 아이의 이름으로 쓰는 게 아니냐며 걱정을 하셨고, 미국에서 교사를 하는 우리 친구도 자칫하면 놀림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지.


그래서 생각한 다른 이름들 중 하나가 "태양"이었어. 네 사촌형의 한국 이름이 "태경"이잖아. 정식은 아니지만 돌림자처럼 한 글자를 같이 쓸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 물론 의미도 좋았고 말이야. 이 이름은 더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좋아하는 이름이었고 네 할머니의 승인(?)도 받을 수 있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낳기 전 우리는 거의 네 이름을 '서울'로 지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러다 2월 13일, 예정보다 일주일 일찍 네가 태어났지. 진통 시작부터 출산까지 12시간이 되지 않는 순산이었어. 자궁문이 열리고 나서 40분 열심히 푸쉬를 한 끝에 드디어 너를 만났지. 신기하게도 Circle of Life 노래에 맞춰 이 세상에 나온 너를 의사선생님이 내 품에 안겨준 순간 - 그 소중한 순간 나는 네 귀와 볼에 나있는 여러개의 귀젖들을 발견했어. 정말 몇 초 안되는 짧은 찰나의 순간인데 너무 많은 생각이 아빠와 엄마의 머릿 속을 스쳤단다. 너의 청력이 괜찮을지가 무엇보다 걱정이었고, 또 네가 살아갈 기간동안 흉터를 안고 살아가야 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수고했다고 엄마를 바라보는 아빠의 눈에도 기쁨과 함께 걱정이 서려있었지.


그 순간 아빠는 생각했대. 어쩌면 서울이라는 이름은 짓지 않는게 좋겠다고. 혹시나 네가 조금 더 특별하게 태어났다면 다른 놀림거리가 될만한 요소는 모두 없애주자고 생각을 했던거야.


그렇다면 어떤 이름을 지어주지? 이젠 정말 네가 세상에 나와 하루 이틀 내로 출생신고를 내야 하니 참 고민이었어. 그런 생각을 안은채로 너를 데리고 우린 회복실로 왔지.


양쪽 귀와 볼에 작은 안테나들이 달려있던 너


갑자기 그렇게 부모가 된 우리는 서툴고 조심스럽게 너를 안아보고, 아직 잘 나오지 않는 젖을 물리고, 너를 담요로 감싸는 법과 기저기 가는 법 등을 연습하며 잠 못 드는 첫 날 밤을 보냈어.


그리고 둘째 날 아침, 우리가 가장 걱정했던 너의 청력 테스트. 아빠는 그간 못 잔 잠을 보충하느라 깨어있지도 못했을 때였지. 아침 9시경 간호사가 와서 네 청력 테스트를 해주는데 엄만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몸인지라 화면도 안 보이고 얼마나 긴장했던지.. 게다가 한참이 지나 간호사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거 아니겠어? 아직 양수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을 애써 진정시켜봤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어.


게다가 귀젖이 있다는 건 다른 유전적 질병과도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거야. 그래서 넌 태어나자마자 이런 저런 검사를 받아야 했어. 피검사도 여러번 하고 초음파도 찍고.. 그 시간동안 아빠와 엄마는 네 건강상태가 어떻던지 간에 너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지지해야지 몇 번이고 되새겼어.


그러다보니 처음엔 걱정되어서 말도 못 꺼냈던 귀젖이 귀여운 안테나처럼 보이기 시작했어. 특히 너는 내 젖을 물 때 그 조그만 손을 올려 양쪽에 있는 귀젖들을 부여잡고 젖을 먹곤 했거든. 네 아빠와 나는 아직 안테나로 하늘이랑 교신하는건가? 농담도 하곤 했지.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던 너의 탄생 둘째 날. 이제는 정말 출생신고서에 네 이름을 작성해야 할 때가 왔어. 끝까지 고민의 끈을 놓지 못하던 아빠는 별 기대 없이 너에게 우리가 생각했던 많은 이름들을 불러보기 시작했어.


"세상아"

"서울아"

"윌리엄"

"태양아" - 씨익


"태양아?"


태양이라고 부르자 세상에 태어난지도 얼마 안 된 네가 빠알간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었다는 게 아니겠어? (아쉽게도 이 모습은 아빠만 봤어)


그렇지 않아도 네 쌍둥이 삼촌이 네가 태어나기 이틀 전 명상하면서 '빛나는 빨간 원' 가운데서 명상하는 사람을 봤다던데 그게 태양이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태양이라는 이름이 문득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오기 시작했어. 그리고 네 탄생곡인 "Circle of Life (삶의 순환)" 뮤직비디오를 다시 보며 생각을 정리해보자 했지.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보니 이 뮤직비디오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바로 태양이었어. 해가 뜨면서 전체 곡이 시작하고, 모든 동물이 해가 뜨는 곳으로 모인 후 마지막에 심바를 들어올리는 순간 구름속에서 태양빛이 나와 심바를 비추더라구.



그 순간 엄마 아빠는 알았지. 네 이름은 태양이라는 걸.


그렇게해서 네 이름은 William Taeyang Hong (홍태양) 이 되었단다.


이후 이어진 다양한 테스트를 통해서 우리는 다행히 네가 건강하고 청력에도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어느덧 귀여워보이기 시작했던 네 안테나들도 생후 3주 되는 시점에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었단다. 지금은 사라진 안테나지만, 우리는 네게 태양이라는 이름을 안겨준 그 안테나들에 감사해.


햇살같은 미소로 엄마 아빠의 삶에 내려와 준 아들아.

너의 이름은, 태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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