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미안 Jan 19. 2023

티 없이 맑은 마음속 영원한 햇살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보고

 대학 도서관 DVD 감상실에서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지. 이건 로맨스가 아니야.

  조금 부끄럽긴 해도 그것이 나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 영화에서 어떤 용기, 혹은 결연함 같은 것을 읽는다. 어느덧 그런 나이가 되었다.


 사랑이 괴로워 조엘과의 기억을 지운 클레멘타인과 이에 질세라 같은 선택을 한 조엘. 사실 기억은 뇌가 아니라 온몸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는 것이었을까. 잊기 위해 밤새 머릿속을 헤집은 노력이 무색하게도 둘은 다시 운명처럼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설렘도 잠시, 또다시 사랑의 입구에 마주 선 둘은 지난 사랑의 아픈 흔적을 발견한다. 기억을 지우기 전 마지막 인터뷰가 녹음된 테이프엔 달콤한 사랑의 말 대신, 서로에 대한 단점과 불만으로 가득한 날 선 목소리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고작 이것이 사랑의 결말이라면, 누구라도 이 사랑을 시작하고 싶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사랑하기를 ‘선택’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나는 다시 사랑을 하고야 말겠다고. 결말을 아는 러브스토리에 대한 조엘의 대답은  망설임 없는 ‘Okay’였다.


 영화가 끝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아니러니 하게도 사랑이 아니라 죽음을 떠올렸다.


사람은 다 죽고, 우린 그걸 알고도 살아가잖아.

그것도 꽤나 열심히.


 인생은 원래 괴롭고, 사랑은 본디 아프다. 살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고통 따위 없을 것이 분명해도 그렇게 얻게 되는 ‘Eternal sunshine of spotless mind (티 없이 맑은 마음속 영원한 햇살, 영화의 원제)‘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느 티비 예능에서 한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솔로였기 때문에 외로움을 모른다. 외로움이란 겪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이다.

 이 말이 유머로 들리는 이유를 우리는 잘 안다.


조금 해지고 닳아 얼룩져도 좋다. 유현이와 재이를 나는 사랑할 테다. 너희와 함께 삶을 살아낼 테다. 힘든 앞날이 뻔하게 두려워도 결연한 마음으로.

작가의 이전글 세상 마지막 날까지 난 변하지 않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