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 문 고장으로 카센터에서 오래 머물렀다. 차를 뜯어고치는 일은 그리 즐겁지 않다. 그 차마저 없다면 일을 아예 할 수 없는 상황... 아쉽지만 고쳐 쓸 수밖에 없다. 유튜브로 작가회의 정기총회를 보았다. 화면을 통해서일까... 뭔가 조용하고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건 내 마음이 쓸쓸하고, 거칠고 피폐해서 그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과 딸은 확진자에서 벗어났다. 다행히 아내는 함께 생활하면서도 음성을 유지했다. 아들은 삼일절에 기숙사로 들어간다. 일부러 배차를 빼 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을 데리고 기숙사로 향해야 할 마음이 그리 가볍지 않다. 한 번도 집을 떠나 생활한 적이 없는 아들은 얼마 전 홀로 제주도 여행을 일주일 다녀왔다. 아이 마음에 풀어야 할 응어리가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어서 그렇다고 말은 하지 못했다. 어쩌면 아들의 무거운 마음 한가운데는 무거운 아버지가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나는 인생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 왜 사는지 모른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왜 아프고 병들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죽어야 하는지 모른다.
삶과 죽음의 공통점은 인간의 개인 의지로써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그것은 인간 영역을 벗어난 인간 한계의 부분이라는 점이다. 어떤 쓸쓸함은 체계적이지 못한 소외론에 골몰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문제는 자기 자신이다. 고장 난 나를 고칠 수 있을까. 오늘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해 기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