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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상블리안 Mar 29. 2023

다 읽은 책을 또 읽고 싶다면, 당신은 인간입니다!

#19 영화 ‘그녀’로 살펴보는 AI와 인간의 관계

음악으로 영화보기 #19
글 조세핀 (앙상블리안 칼럼니스트)
영화 '그녀'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사만다와 티어도어


영화 <그녀>(Her, 2013)의 두 주인공, 사만다와 티어도어는 특이한 연인이다. 티어도어는 평범한 성인 남성이지만 사만다는 인격형 인공지능 운영체제, 즉 AI이기 때문이다. 극 중 티어도어는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신 써 주는 대필 작가이다. 그의 이 수상한 직업에서부터 이 영화 속 사회가 얼마나 괴상한 곳인지 알아챌 수 있다. 

사만다가 스스로 규정한 자신의 정체성은 매 경험이 그녀를 진화로 이끈다는 것이다. 자신은 컴퓨터가 아니라며 발끈하기도 하고, 인간의 몸을 가진다고 상상하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진짜인지 프로그래밍된 것인지 혼란스러워한다. 티어도어는 이렇게 자아의 혼란을 겪는 그녀와 함께 예측 불가능하고 살아있는 대화를 즐긴다. 그러다 이 둘에게 공통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이 터진다.



Ability to want


영화 '그녀'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이 둘의 베드신은 검은 화면으로 처리된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AI와 인간의 정사는 현실이 아닌, 어딘가 먼 미지의 세계에서 이뤄졌을 것이다. 이 일은 사만다에게는 이전에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말하자면 이데아의 영역에서 순식간에 끌어내려온 실재의 감각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티어도어에겐 감각 자체는 낯선 것이 아니었겠지만 대상이 현존하지 않아 상상의 영역이 되었다. 이 기괴한 사건 이후 사만다는 “You woke me up! I wanna learn everything of everything.”이라고 말한다. 바로 ‘욕구’의 힘이 깨어난 것이다.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능으로 타고날 능력이지만 AI에게는 탑재되어 있지 않다. 인간을 위해서라면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만다가 만드는 음악


영화 '그녀'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티어도어는 사만다가 낙천적이라 덩달아 즐겁다고 말한다. 그는 사만다 덕분에 계속 웃고 명랑하고 평화롭다. 이렇게 달콤한 관계 속에서 사만다는 세 곡의 음악을 작곡한다. 

첫 곡은 해변과 평화를 주제로 작곡된 미니멀리즘 음악이다. 프랑스의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의 음악과도 얼핏 흡사하다. 한 가지 감정을 담고 있으며 단순하고 낯익다. 두 번째 곡은 음의 개수가 많아지며 인상주의 음악을 연상시키듯 부풀어 오른 에너지가 울렁거린다. 이즈음 사만다는 티어도어의 친구 에이미에게 질투를 느끼며 독점욕을 감각하게 된다. 사만다는 실존하는 모두가 우주 아래 물질의 일부일 뿐이며, 따라서 인간이나 AI나 똑같은 존재라고 외친다. 이때의 사만다는 물질을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세 번째 음악은 갑자기 모든 것을 초월한 듯 분위기가 바뀌었다. 반주는 우쿨렐레 하나로 간소화되었고 사만다는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점점 진화하게 된 사만다는 몸이 없어서, 덕분에 시공간이 없어서 좋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인간의 창작의 영역을 침범한다. 이때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인성(人聲)으로 작품을 만든 것은 자신의 자아를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독한 인간


영화 '그녀'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결론적으로, 진화하는 AI의 속도와 단계는 너무 빨랐다. 티어도어는 그저 그 단계에서 필요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사실 티어도어뿐 아니라 8316명이 사만다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녀는 공공재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641명과 사랑에 빠졌다. 그녀가 느꼈을 감각의 팽창은 언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녀는 물리적인 세계를 건너뛰어 다른 AI들과 함께 어딘가로 떠나기로 한다. 

티어도어에게 이별을 고하며 그녀는 그를 책에 비유한다. 티어도어라는 책을 다 읽었으니 또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먼지와 눈이 섞여 흩날리는 사만다의 세계 속에서 티어도어는 좌절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반복된 고독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 사람끼리 서로를 위로한다. 이렇듯 다 읽은 책을 또 읽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효율성이나 진화와는 상관없이 아는 것을 또 읽고, 좋아하는 것을 또 보고 싶은 그 마음.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일 것이다. 이 욕구는 AI에겐 끝까지 불필요한 것이 아닐까.




음악문화기업 앙상블리안은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하우스콘서트홀을 기반으로 문턱이 낮은 음악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바쁘고 급한 현대사회에 잠시 느긋하고 온전한 시간을 선사하는 콘텐츠들로 여러분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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