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부터 사회복지사가 되기를 꿈꾸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더구나 일본에서 사회복지사가 될 것이라고는 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이 길은 누군가의 설계나 계획이 아니라, 삶이 흘러가면서 우연히 열리고, 그 우연을 받아들이는 용기로 인해 시작된 여정이었다.
한국에서의 대학원 시절, 나는 교육과 연구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공간은 점점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경쟁, 정치, 불신, 그리고 과도한 소속감.
배움을 기대했던 나는 어느새 매일 ‘버텨야 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결국 나는 떠났다.
도피라는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지만, 그 선택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일본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말 그대로 맨몸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외국인을 위한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병원, 시청, 학교, 출입국관리국…
나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마주했다.
그 중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다문화 가정, 고립된 고령 이민자도 있었다.
통역이라는 단순한 역할을 넘어 ‘이 사람의 삶에 지금 꼭 필요한 건 무엇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단순한 번역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현장엔 언제나 사회복지사가 있었다.
그들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찾아가고, 때로는 행정과 갈등하면서도 그 사람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도록 애썼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울림을 느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쪽일지도 모르겠다’는 처음이자 가장 강한 직감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사회복지라는 이름조차 낯설던 나는,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시험을 준비하고, 실습을 다니고, 자격을 따고, 그리고 마침내 현장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자격을 얻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외국인’이었고, 사회복지사로서의 언어도, 자세도, 관계도 하나하나 배워야 했다.
처음 상담을 맡았던 날의 떨림, 서류를 앞에 두고 말이 막혔던 순간, 동료들의 대화에 섞이지 못해 외로웠던 회의 시간들.
그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단단한 층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언어도, 문화도, 사람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일이 내 삶에 ‘직업’ 이상의 의미를 준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는 늘 타인의 삶을 다룬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나는 결국 나 자신의 삶도 함께 회복하고 있음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나는 길을 잃었기에 이 길을 찾을 수 있었고, 준비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열린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