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태어난 지 이제 곧 100일이 된다. 이제 100일이 한 달도 안 남았다. 며칠 전에는 자기 오른손을 발견하고는 한참을 요리조리 살폈다.
90일 정도 아기를 돌보다 보니, 육아와 현업의 몇 가지 공통점이 보였다. 육아와 현업은 비슷한 점이 아주 많았고, 현업에서 익히면 좋을 것들은 육아에도 써먹기가 좋았다.
육아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원하는 걸 적재적시에 적절한 형태로 제공해야 한다. 요구사항을 빠르게 파악하지 않으면, 아기의 인내심은 금방 바닥난다. 인내심이 바닥난 아이는 비협조적이며, 포악하다.
그러면 10분 걸릴 일이 30분, 1시간이 걸린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빙- 돌아서 가는 격이다. 잠이 들 타이밍을 놓친 아기는 금방 배가 고파지고, 이내 밥 달라고 울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기를 잠재우는데 실패하고 다시 수유를 하고 나면 엄마도 아기도 쉬지 못한다.
아기가 아직 뱃속에 있을 때 생각했다. 나는 과도하게 아기와 관련된 짐을 늘리지도 않을 것이며, 우리 집의 인테리어를 해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육아에 올인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ㅎ)
하지만 조리원 퇴소 후, 우리 부부가 가장 먼저 결제한 것은 바운서였다. 임신 기간에는 위시리스트에 있지도 않았던 품목이었다. 하지만 불과 삼일 만에 우리 부부의 팔은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겨우 4킬로밖에 되지 않는 신생아지만 하루 종일 안고 있으려니 팔이 너덜거렸다. 일주일 만에 바운서를 결제한다는 우리 부부에게 지인은 '바운서는 처음부터 그냥 쓰는 거'라며 오래 버텼다고 말해주었다.
바운서 이모님을 들이고 우리에게는 식탁에 앉아 밥 먹을 시간과 각자의 공간에서 짧게나마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타이니 이모님 + 바운서 이모님 조합은 근본이다. 육아도 툴빨이다.
결코 들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젖병 소독기는 윗집에서 나눔 받았고, 기저귀 갈이대와 점퍼루퍼, 터미타임 매트 등도 물심양면으로 이곳저곳에서 도움받았다. 이제 거실에 우리 공간은 소파뿐이다. 아, 소파에서 수유도하지 참.
어제까지 분유를 140ml 먹던 아기가 오늘은 160ml을 먹고도 눈이 말똥말똥한 채로 입맛을 다신다. 그새 뱃구레가 커진 것이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엎어놓으면 고개를 못 들던 아기가, 오늘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5분을 버틴다. 마치 그동안 할 수 있었는데 못하는 척하고 있었던 것처럼. 아기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다.
어제는 오른손을 발견하더니, 오늘은 왼손을 발견하고는 하루 종일 양손을 천장으로 치켜들고 벌서는 자세로 요리조리 주먹을 살펴본다. 팔도 안 아픈가 보다. 흑백으로 보이던 세상도 이제 알록달록해 보이는지 안고 집안을 돌아다니면 열심히도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잠자는 시간도 조금씩 늘어서, 이제는 밤에 5시간 정도는 쭉 자준다. 2시간 간격으로 깨어서 울 때는 죽을 맛이었는데, 벌써 엉아가 다 된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에게 대응하고 있다 보면 일주일이, 열흘이, 한 달이 쏜살이다.
아기를 낳으면 어른이 된다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다. 나는 별로 바뀌는 게 없는데, 아기가 요구하는 걸 들어주다 보면 스스로를 많이 내려놓게 될 뿐. 연애는 설득이나 협상이라도 하지, 아니면 박 터지게 싸우던가. 말이 통해야 설득을 하지. 하루종일 아기의 요구사항에 대응하다 보면 어느덧 해가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아기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고, 아기가 원하는 걸 부족함 없이 들어주고 싶다.
그러려면 당장에 하루 종일 아기를 안고 어를 수 있는 단단한 코어가 필요하다. 운동하기 싫을 때마다, 우리 토실이 5분이라도 더 안아주려면 내가 체력을 길러야지. 하는 마음으로 몸을 움직인다. 프O다 백 사주는 것보다 그게 쉬우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