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31일 차
가장 첫 번째 글 : #1 산티아고'술'례길의 시작 https://brunch.co.kr/@2smming/52/
산티아고 순례길 31일 차
2018. 6. 12. 화 ~ 2018. 6. 13. 수요일
오 페드로우쏘(O Pedrouzo)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이전 글: 도착까지 하루를 남기고 https://brunch.co.kr/@2smming/202
오늘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날이다. 이것만 걸어내면 길이 끝난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이 너무 이르게 왔다. 대성당이 가까워지는 만큼 기념품가게도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순례자들은 이 길을 추억할 거리를 뭐라도 사야만 하는 강박이 있는 듯해 보였다. 혹은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을 소중한 사람들을 이제야 떠올리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기념품 가게마다 등산복을 입은 순례자가 우글거렸고 그들의 손에는 각종 핀과 엽서, 마그넷 등 올해의 이 길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품으로 가득했다. 바야흐로 마지막 날이자, 짐이 무거워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나도 사람들 속에 섞여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기념품을 자꾸 사들였다. 손이 무거워질수록 길이 끝나는 섭섭한 마음이 조금 무뎌지는 것 같았다.
오늘은 고작 20km 정도 되는 얼마 안되는 거리를 걷는데 자꾸 몸이 지쳤다. 한 시간을 겨우 걷다가 쉬고, 또 한 시간을 걷다 쉬었다. 어제는 평소보다 술도 많이 마시지 않고, 수면도 충분히 취해서 컨디션이 좋은데도 왜 몸이 처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이내 깨달았다. 우리, 그리고 이 길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늦장을 부리며 걷고 있었다. 보통 때보다 더 많이 멈춰 사진을 찍고, 괜히 신발끈을 다시 동여매고, 괜히 사람들과 스몰톡을 했다. 발을 질질 끌며 걸으니 다리가 아플 만도 했다. 이 시간을 조금이나마 늘리고 싶은 마음들이 보였다. 길이 아쉬운 건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성당에 점점 더 가까워져 갔다. 차츰 길에도 설렘이 깔렸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 나라의 국기를 몸에 두르고 국가를 부르며 걷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큰 배낭을 메고 겅중겅중 뛰어다니기도 했다.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재잘대며 걸었다. 도시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욱더 커졌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다다른 건 딱 정오쯤이었다. 성당을 마주하고 선 순간 마음이 기쁨으로 빠듯해졌다. 넘치는 행복이 횡격막을 밀고 올라와 나는 자꾸 가쁘게 숨을 크게 들이마셔야 했다. 내 다리로 800km를 걸어왔다는 사실이 매일을 겪었던 사실인데도 생경하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내 육체활동으로 무언가를 이룩한 적은 없었기에 심장 뛰게 벅찼다. '해냈다'라는 효능감이 세포 하나하나에서 느껴졌다. 정오의 따뜻한 햇볕이 대성당을 내리쬐고 여름의 미풍이 순례자들 사이를 쏘다녔다. 햇빛과 바람이 내 머리도 쓰다듬어 주는 것만 같았다.
성당 앞 광장에는 여정을 끝낸 순례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대성당을 배경으로 앉고, 서고, 뛰고, 기분 좋은 탄성을 지르며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작은 팔레트를 들고 그림으로 이곳을 그려내는 사람들도, 오랫동안 앉아서 다이어리에 글을 쓰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과 영상통화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도를 하는 사람도 많이 보였고 낮잠을 자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도 한차례 인증 사진을 열심히 찍고는 광장에 널브러져 누웠다. 스페인의 여름볕에 달궈진 광장의 돌이 마치 돌침대처럼 아늑했다.
광장에 오래도록 앉아 대성당을 바라보았다. 벅차게 뛰던 심장박동이 잦아들고 난 틈으로 다양한 생각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 길이 정말로 끝나고 말았구나 하는 아쉬움, 아무 일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는 안도감, 함께 걸은 친구들과 길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기쁨과 감사가 몰려왔다. 돌아보면 감사할 일 투성이었다. 무탈한 것도 감사, 길을 완주할 수 있는 것도 감사,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도 감사, 늘 도움을 받으며 걸었던 것도 감사한 일이었다. '신의 가호'라는 표현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감사할 일은 또 있었다. 거리에서 순례길 초기에 자주 만났던 브라질 친구 마누엘을 만난 거다. 보통 산티아고 순례길은 비슷한 시기에 출발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얼굴을 종종 마주치는데, 우리는 내키면 40km 이상을 걸어버리거나 한 도시에 2일 이상을 머물기도 해 버리는 탓에 친구들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데 여기서 마누엘을 만나니 우리 둘 다 눈물이 왈칵 나왔다. 마누엘은 순례길 후반부에 발을 다쳐서 내일 비행기로 브라질로 바로 돌아간다고 했다. 오늘이 지나면 마누엘은 아마 내 인생에서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길에서 만난 친구들 중 유일하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는, 허락된 마지막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 오래 껴안고 자신의 언어로 안녕을 말하며 서로의 안녕을 바랐다. 마누엘의 발이 빨리 나을 수 있기를, 돌아가서 하는 모든 일에 행운이 따르길, 이 길에서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행복하길 마음 깊이 기도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는 매일 도착한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미사를 진행한다. 미사 중간에 '보타푸메이로(Botafumerio)'라고 불리는 향로를 움직이는 의식이 있어 향로 미사라고도 불린다. 원래 낮 12시에만 볼 수 있는 의식이지만, 오늘은 저녁에도 향로 미사가 있다고 해 운좋게 미사를 들을 수 있었다. 성당을 중학교 이후로는 가본 적이 손에 꼽아 조금은 멋쩍은 기분으로 성당 의자에 앉았는데 다행히도 한국 성당과 미사를 진행하는 방식과 타이밍이 거의 동일했다. 나는 기억 저편에 남아있는 기도문을 끄집어 내 조용히 한국어로 기도를 읊었다.
성체 의식도 끝나자 거대한 오르간 소리가 성당을 가득 채우고 성가대의 성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향로 의식이 시작된 것이다. 신성하고 거룩한 분위기에서 향로가 앞뒤로 진자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향로가 날아다닐 때마다 연기와 좋은 향기가 물씬 퍼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향로를 보며 내가 빌고 싶었던 건 내 주변 사람들의 안녕과 평화밖에는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의 취업 성공이라든지, 부자가 되는 것이라든지 이런 세속적인 생각은 하나도 나지 않았다.
다다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몇 개의 낱말만이 전부라는 것. 이를테면 사랑 같은. 진부한 단어라고만 생각했던 '사랑'이 그 어떤 것들보다 귀해졌다.
오늘은 내일 없이 마셔도 되는 유일한 날이다. 마트에서 한 손 장을 본 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쌓인 요리 실력을 가감 없이 뽐냈다. 먼저 통통한 새우와 마늘을 잔뜩 넣은 감바스를 만들어 오늘 만든 바게트빵과 같이 내었다. 비빔국수와 샐러드 채소를 한데 담아내고 한 접시에는 김가루와 참치, 밥, 마요네즈를 버무려 한 입 크기의 주먹밥을 올렸다. 양송이버섯은 씨알이 큰걸 사서 프라이팬에 오래 구워냈고, 오징어 튀김과 KFC에서 시킨 치킨, 입을 깔끔하게 해주는 샐러드와 콘옥수수, 오렌지까지 한 상 가득 차렸다. 여기에 마트에서 발견한 바카디 모히토 럼과 화이트 와인을 시원하게 마시니 천국 같았다.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으니 빨리 잠에 들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마지막다운 만찬을 즐기며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새벽 늦게까지 나눴다. 우철오빠는 우리가 자주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유쾌한 사람이자, 우리가 처질 때 다시 힘을 내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페이스 메이커였다. 덕분에 길의 칠 할은 늘 웃고 있었다. 순례길을 돌아봤을 때 자꾸 재밌었던 생각밖에 들지 않는 건 모두 오빠 덕분이었다. 혼자였으면 걷지 못할 길을 오빠 덕분에 끝까지 완주했다. 오빠는 체력이 좋아 길을 빠르게 걸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우리와 기꺼이 속도를 맞춰줬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우리의 안전을 보살폈던 덕분에 부상 없이 걸어낼 수 있었다.
수지는 힘든 길도 힘들지 않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수지의 들숨과 날숨에 깃든 긍정은 함께 있는 사람들도 덩달아 행복해지게, 용기를 가지게끔 한다. 나도 꽤나 많은 행복을 그녀에게 빚졌다. 우리가 걷다가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거나 의견이 모두 다른 상황이 오면 수지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가장 좋은 답을 일러주곤 했다. 수지와 대화를 할 때면 내가 100% 온전히 존중받고 신뢰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말을 해도 될 것 같은 사려 깊은 눈을 마주하면 자꾸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우리가 이곳에서 만나서 마음의 빗장을 금세 내려놓고 친구가 된 건 대부분이 수지의 덕이다.
웅민이는 요리를 잘해서 매일 황송한 상을 차려내 주었고 엉덩이가 다소 굼뜬 우리 대신에 늘 빠르게 움직여줬던 친구다. 그러면서도 섬세하게 우리 모두의 안위를 살폈다. 웅민이의 가방은 15kg가 넘는 아주 무거운 배낭이었는데 그곳에는 웅민이를 위한 것들보다는 남들에게 나눠주는 것들이 더 많았다. 누군가의 컨디션이 안좋아지는 걸 눈치채면 그 가방에서 해결책을 꼭 찾아내 쥐어주곤 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있는 곳에 어떤 식당이 맛있는지, 어떤 축제가 있는지 늘 찾아봐주던 덕택에 우리의 순례길 세계가 더 넓어졌다. 모르고 지나칠 뻔했던 재미있는 지역 이벤트를 그렇게나 많이 즐길 수 있었던 건 모두 웅민이 덕분이다.
셋과 함께 걸어 더없이 좋았다. 매일 체력이 바닥나곤 하는 이곳에서는 배려가 얼마나 많은 노력으로 빚어지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매일을 넘치는 배려 속에 걸을 수 있었다. 셋은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귀한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잠시 잊고 있던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내가 몰랐던 나를 알아가기도 했다. 나를 찾는 여정은 홀로 사색하며 이루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관계 안에서 서로의 눈과 입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순례길이 가르쳐 준 것은 함께하며 진심을 나누는 법이었다는 것. 이제야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선명하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