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이제는 친한 사이가 된 직장 동기이자 형의 첫마디였다. 처음엔 마스크를 쓴 탓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드니 정중하게 인사하시는구나 하고 나도 꾸벅 인사를 건넸다. 인사는 계속됐다. 다음 날도, 모레도 서로 얼굴을 어느 정도 익힌 후에도 항상 높여서 인사를 먼저 건넸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얼핏 보기에도 본인보다 나이가 훨씬 어려 보이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말을 편하게 된 사이가 되었을 때, 언제부터 그런 예의를 몸에 지녔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상당히 의외였다.
"나도 어릴 적부터 그런 건 아니었어. 그냥 어느 날인가부터 어떤 동기였는지, 착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 그때부터 착한 사람이라는 가면을 썼다고 생각하고 행동했어. 좀 웃기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지금도 그렇고."
"에이 그런 게 어딨어. 그냥 원래부터 심성이 착했던 거 아니야?"
"그거까진 잘 모르겠네. 아무튼 지금까지도 내 생각은 그래."
알다가도 모를 이야기를 듣다 보니 비슷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나와 인사만 건네던 동료와 우연히 같은 팀으로 편성이 됐던 때였다.
"같은 팀이 되어서 정말 좋아요. 항상 뭐든 열심히 하시잖아요."
"아하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열심히 해봐요.”
오랜만에 타인에게 들은 평가였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일에 대한 흥미에 따라서 온도 차이가 꽤나 나는 사람이었다. ‘좋은 면만 봐주셨구나.’하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나도 그런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착한 사람의 가면을 쓰고 있다라..' 내 에피소드는 타인의 의견에 따른 순간의 감정이나 느낌이었다. 그와 달리 혼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객관화해가며 남들에게도 그렇게 보이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지 차마 가늠이 가지 않았다.
프랑스 비평가 폴 부르제는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고 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며,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살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겠다. 끊임없는 고민 끝에 내려진 생각이 행동이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