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직장인박사생
2016년도 12월에 석사졸업을 했다. 나름 내가 공부하는 분야에서는 전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유명한 학교였고. 그 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일 당시, 상사는 자꾸 나에게 또 다른 석사학위를 받으라고 했다. 코로나 시국이니만큼, 온라인으로 석사과정을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innovation이나 Technology 관련된 석사를 하나 더 하라고 조언했다.
아니, 석사 졸업장에 아직 잉크로 마르지 않았는데 (당시 석사 졸 3년반도 안되었을 시기) 똑같은 분야의 석사를 또 하라는게 말이 되냐 말이지.. 그리고 석사 학위 따는데 돈은 한두푼 드나?(회사가 내줄 것도 아니면서).. 라면서 "아, 네네. 생각해볼께요."를 시전했다.
하려면 내가 박사를 했지, 뭐 석사를 또 한다냐. 내가 하고싶은건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쌓는거지. 어나더레벨로 가고싶은거지, 어떤 분야의 지식을 쌓는 수업석사는 사실 석사를 듣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지 않나, 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5월 달쯤 폭발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회사의 상사와 서로 맞춰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유명한 짤...)
상사는 마이크로메니징에 열정맨이었다. 어디가서 동아시아의 일 열심히하는 여성상을 벗어나지 않는 내가, 일하는 양과 속도와 무엇보다 지시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나에게 밤을 새워서 일을 해야한다면, 밤을 새우라고 친히 말해주셨던 나의 상사. 그리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의 성에 차지 않는 듯 보였다. 아일랜드 사람인데 일하는건 우리나라 부장님들 스타일.. 너무 힘들어서 거의 울면서 전임자인 일본인 동료에게 국제전화 시전.
"나 진짜 일하는거 너무 힘들고, 일도 맨날 너무 늦게까지하는데, 알아주지도 않고. 결과물을 내도 항상 더 요구만하고..아니 내가.. (주저리주저리)"
그랬더니 그 일본인 동료가 웃으면서 말해줬다.
"나는 처음에 같이 일할때, 그 사람 정말 죽빵 한대 칠뻔 했어. 나는 너의 심정을 백퍼센트 이해해..(웃음). 근데 지나고 보니깐 최고의 멘토이자 상사더라. 너를 푸시해서 결국 너의 성장을 도와주는 사람이니깐.. 나도 맨날 새벽 2시까지 일했어" (워라밸어디갔냐고)
그 전임자는 맨날 새벽 2시까지 일했대서, 매일밤 10시까지 일하고 주말출근까지 도맡아하던 나의 입을 닥치게 했다.
매번 감정적으로 치이고, 체력적으로도 치여서 집에 퇴근해서 불닭볶음면을 두개 먹으면서 든 생각이, "이열치열" 전략이었다.
1. 앗, 직장이 너무 매운맛이면, 엄청 매운맛의 박사과정을 시작하면 직장이 덜 힘들지 않을까?
2. 요즘 유행하는 부캐를 만들어보자. 직장인이라는 본캐의 힘들고 짜증나는 점을 상쇄시킬 박사생이라는 부캐!
3. 오호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general하니깐 나의 전문 분야를 만들수 있게끔 박사를 해보자 룰루랄라.
4. 직장을 다니면서 할수 있는 코스가 있을까?
5. 엇 UN University의 프로그램중 하나가 파트타임이 가능하네?
6. 뭐야, 등록금도 싸잖아? 연구분야도 내가 하고싶은거랑 맞네? 그리고 직장의 유관기관이잖아?
7. 지원 하자
8. 엇, 지원하려면 지원서랑 리서치 프로포절이랑.. 아 아카데믹 추천서랑 직장 추천서가있네.. 추천서를 받아보자!
그래서 상사에게 가서 넌지시(라기보다는 시간을 잡아놓고) 이야기를 했다.
"상사야, 니가 나한테 항상 continuous learning 이 중요하다고 했잖아? life-long learning. 그리고 나한테 석사도 또 하나 하라며,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하생략) 박사지원하려고!"
"뫄뫄야, 너 지금 박사라고했니? 석사 말고 발사?"
"응, 박사 과정. 왜냐면 (주절주절 이하생략)"
"뫄뫄야, 나는 반대야. 박사를 왜해. 유엔다니면서 박사해가지고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아. 누가 박사를 하니? 그리고 박사는 자기 이고가 너무 큰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야. 지금 파트타임 박사하고 있는 UNDP 걔 일도 제대로 못하잖아. 박사도 집중못하고 일도 제대로 못하고. 박사는 그냥 너의 ego booster야"
망했다... 지원하는 첫 과정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그것도 아주 큰, 상사의 반대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