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크 Oct 23. 2022

60개월 할부 내돈내산 안마의자 뽕 뽑기

바디 프렌즈 팬텀 메디컬 케어 (협찬 아님)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어머, 이건 내 이야기야' 하면서 공감하고 읽었던 것은 '아무튼 반려병' - 부제는 '또 아파?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도'이다.


어머! 어머! 어머! 하고 읽었던 '아무튼 반려병'의 부분이다.

***

이때의 '또 아파?'라는 질문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제1의도: (너는 자기 관리를 얼마나 못 하면) "또 아파?"라는 질타

제2의도: (걱정도 되고 안쓰러워서) "또 아파?"라고 하는 연민

제3의도: (지난주에 아팠는데 어떻게 다시) 또 아플 수 있지?라고 묻는 놀람

제4의도: (그 정도 아픔에 너무 엄살 부리는 건 아닐까 싶어) 정말 아픈 건지 확인해보려는 의심

사실 또 아프냐는 질문은 '네', '아니요'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의문문의 탈을 쓴 명령문이다. 어떤 의도로 물어보았건 결론은 '그만 좀 아파!'라는 것인데 그 말이 아픈 이들에게는 깊은 상처가 된다. 왜냐하면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후략) (p70~71)

***


중병은 아니지만 지긋지긋한 잔병치레의 역사를 솔직하게 풀어내는 에피소드들을 읽으면서 '어머,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니'라며 반가워서 손을 흔들고 싶었달까.


그렇다, 나는 변변치 않은 몸뚱이를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이다. '또 아파?'라는 질문은 스스로에게 하루 걸러 하루에 한 번씩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더욱더 예민해진다. 왜냐면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내가 아플지 안 아플지 모르거든.


나의 잔병치레의 역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한다. 일단 탈 것만 타면 멀미를 했고, 계절마다 돌아가며 감기가 걸렸다. 어렸을 때부터 골골대는 내 모습을 보고 할머니는 녹용을 한 첩 지어주셨는데, 매번 한약을 먹으면서도 토하지 않는 것이 과제였다. 비유가 약했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들어서는 생리통이 나를 괴롭혔다. 한 달에 이틀은 꼬박 누워있어야 하거나, 진통제를 때려먹어야 하는 그런 상태. 한 번은 정말 기절할 정도의 통증에 앰뷸런스를 부를 뻔했던 적도 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한 달에 이틀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해야 할 회사를 나가는 것 같다.


무언가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상황이 되면 도지는 위염과 위경련을 지나 20대 초반에는 또 새로운 잔병을 얻게 되었다. 자고 일어난 어느 날, 온몸이 근육통처럼 묵직하게 아프더니 팔다리에 빨간색 반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첫날에는 한 20개 정도, 그리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더니 삼일이 지나자 온 팔다리가 빨갛게 보일 정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무서운 마음에 병원에 가보았더니 '자가면역질환'을 진단받았다. 자가면역질환의 종류로 어떠한 스트레스나 요인에 의해서 혈관이 터지는 염증 반응이었다. 나의 경우는 피부에 있는 모세혈관들이 터지는 거였고, 가장 중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 팔다리의 모세혈관들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무런 증상은 없지만, 피곤하거나 감기에 걸리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싶으면 여지없이 터지는 모세혈관은 내 건강의 리트머스지가 되어줬다.


그리고 20대 중반에 나는 큰 수술을 받게 된다. 이번에는 퇴행성 디스크였다. 영국 유학 도중 허리가 너무 아파서,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아픈가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퇴행성 디스크가 심했던 것이었다. 발작처럼 1년에도 몇 번씩 눕지도, 앉지고 서지도 못하는 에피소드가 늘어났을 때 서울의 큰 병원을 예약했다. 그 병원을 가던 날, 아무렇지 않게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렸는데 그 내린 순간부터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 발자국을 움직이기는커녕 굽혀진 허리를 펴지도 못했다.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며 10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의 병원까지 택시를 타고 도착해서는 병원 정문에서 휠체어를 불러다가 타고 가면서 눈물을 질질 흘렸다. 너무 아프면 눈물이 그냥 수도꼭지에서 튼 것처럼 의식할 새도 없이 새어 나온 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진료를 보러 간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 앞에서 엉엉 울면서 아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이거 수술해야 해요".


그래서 남들 노년기에 받는 디스크 척수 유합술을 받고 허리에는 4개의 나사를 박게 되었다는 소식. 그리고 그곳은 몸 컨디션이 안 좋을 때나, 아니면 날씨가 안 좋을 때 (할머니들이 비 올 때마다 관절이 쑤신다고 하는 건 엄살이 아니었다) 아파오기 시작한다.


여기서 끝이면 좋을 테지만, 그렇다 자잘 자잘하게 나는 늘 골골댔다. 호흡기 질환과 장염, 설사와 역류성 식도염, 매년 검사받을 때마다 맘 졸이면서 추적 검사하는 자잘 자잘한 낭종과 석회들.


2021년 말,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하고 나서 1년여 사이 위경련과 설사 등의 증상으로 응급실에 5번 정도 갔다. 이 정도가 되다 보면 일주일의 반은 변변치 않은 몸 상태로 지내는 것 같고, 오늘 조금 무리한다 치면 내일 아플지 안 아플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늘 내 몸이 편한 것이 1순위의 목표가 된다. 근데 사실 이게 얼마나 귀찮은 기준인지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또 아파?'

'... 응....'


어쨌든 이렇게 이곳저곳 아파서 골골대는 나에게 '마사지'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안마의자에 빠지게 된 것은 예정된 운명이라고나 할까.


남자 친구와 데이트할 때 자주 가던 곳도 안마의자 카페였다. 1시간짜리 패키지로 (인위적인) 숲 속 향이 나는 산소방에서 안마의자로 1시간짜리 전신 마사지를 받고 나와서 커피를 마시는 코스로 1시간 12000원 정도였다. 데이트로 저런 곳을 찾아다닐 정도였던 나의 안마의자 사랑은 본가에 내 돈 내산 (사실은 부모님 돈으로 부모님이 산) 60개월 할부 바디 프렌즈 팬텀 메디컬 케어가 들어오면서 정점을 찍었다. (*협찬 아님)


당시 네팔에서 지내고 있었던 내가 휴가를 맞아 한국을 들어갈 때, 부모님이 온 가족 깜짝 선물이라며 안마의자를 시원하게 지른 것이다. 60개월 할부라는 외국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할 새로운 한국의 자본주의 도움을 받아서 장만했던 바디 프렌즈의 최상위 모델, 메디컬 케어! 디스크와 거북목 치료에 도움이 된다던 그 안마의자!


사실 안마의자를 사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싼 옷걸이나, 비싼 가구처럼 덩그러니 자리만 차지하고 쓰지는 않는다는 후기를 많이 보아왔지만 그것은 나의 걱정이 아니었다. 내가 마사지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이 유전자가 어디서 왔겠는가. 허공에서 뾰로롱 하고 내가 태어나진 않았을 것 아닌가. 우리 아빠, 엄마 모두 내가 보기로는 안마의자 소비자 중의 상위 10퍼센트에 들 정도의 충성고객이다.


그 뒤로 내가 영상통화를 할 때마다 아빠나 엄마나 모두 안마의자에 누워서 전화를 받았다.


‘어, 지금 안마받고 있어.’


심지어 아빠는 아침에 30분, 점심에 30분, 저녁에 30분씩 안마를 받는다고 했다. 안마를 너무 많이 받으면 근육이 빠진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야기에 이제는 하루에 1번만 안마를 받으라고 잔소리 하지만 여전히 전화를 할 때면 아빠는 안마의자에 누워있다.


나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안마의자 ‘휴식’ 코스로 휴가를 시작했고, 안마의자의 ‘슬림’ 코스로 휴가를 마무리했다. 스스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코스들은 물론이고, 한 50가지는 넘는 안마 코스들이 의자에 프로그래밍되어있었다.


‘골프’ 코스는 어깨와 팔을 위주로 강하게 마사지해준다. ‘슬림’ 코스는 살이 빠진다는 의미 같은데, 엉덩이의 고관절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터라 허리 수술해 항상 엉덩이 고관절 부분이 뭉쳐있는 나에게는 최고의 코스였다. 그중에는 ‘숙취’ 코스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전 날 그렇게 술을 마신 너는 맞아도 싸다는 듯이 온몸을 주먹으로 때리는 듯한 마사지로 조져댄다. ‘숙면’ 코스는 안마의자가 우주선 출발할 때처럼 몸을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눕히는데, 이게 무중력 모드란다. 이 상태로 부드럽게 어깨부터 시작해서 발바닥까지 마사지를 한다.


‘굿모닝’과 ‘힐링’이라는 코스도 있었는데 남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나와서 마사지를 하면서 명상을 시켜준다. ‘굿모닝,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예요!’. 개인적으로는 별로였다. 아무 생각 없어지기 위해, 아무 생각 없으려고 마사지를 받는 건데, 마사지받는 순간조차 무언가의 활동을 강요받다니! 나는 완전한 수동태의 형태인 마사지의 정수를 좋아한다.  


일주일 휴가 동안 최소한 15시간은 안마의자를 이용한 것 같다. 그리고 나의 휴가 동안 우리 집에는 안마의자 번호표가 있었다. 내가 받고, 아빠가 받고, 엄마가 받고, 동생이 받고. 사실 60개월까지도 필요 없고 6개월이면 뽕을 뽑고도 남을 만한 회전율이었다. 그 이후 안마의자의 매력에 더욱더 푹 빠지게 된 나는 네팔에 돌아오고 나서 네팔에서 바디 프렌즈를 찾아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서 안마의자를 사서 컨테이너를 통해서 보내는 방법을 찾아보았는데….. 관세 200퍼센트에다가.. 통관 절차를 찾아보다 겨우 정신을 차렸다는 소식.


나는 육중한 몸무게를 자랑하는 안마의자를 우리집 막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집 막내가 그리워서라도 빨리 다시 한국에 가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