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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이 Dec 15. 2023

17년은 자발적 딩크족으로, 이후는 자연적 딩크부부로.

6월에 전자궁절제술을 했다. 빈궁마마라 하던가. 40대 중반에 자궁을 떼고 앞으로도 지속될 굴레에서 홀가분하게 해방되었다. 몇 개월 안 됐는데 너무 편하다. 홀가분하다.


몇 년 동안 눈에 띄게 생리양이 늘고, 기간 중에 통증이 심해지고, 여기저기 묻히는 일이 종종 생기더니 급기야 밤에 1시간도 안 돼 오버나이트를 적셔대서 잠을 최대한 늦게 자고 중간중간 화장실 가고, 토퍼까지 완전히 적셔서 버리는 일도 발생. 그런데도 그냥 폐경기가 빨리 오려나 했다. 끝나면 병원 가봐야지 하다가도 막상 끝나면 잊어먹고 다음 달에 또 그러고. 내 둔함이 한번 더 빛을 발했다. 

대바늘로 찌르는 목 뒤 통증에 파스만 붙이다 목디스크가 터져서 실려갔을 때처럼. 

덕분에 그렇잖아도 내 걱정 많은 토끼띠 남편님을 자주도 놀래킨다.


동네 병원에서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여의사의 진단을 받을 때부터 큰 병원 가서 처음 내진날 수술날짜를 잡을 때도 그 어떤 동요나 기분변화가 없이 덤덤해서 나도 이상하더라. 이렇게까지 아무 아쉬움이 없다니.

근데 시어머니와 아는 동생이 더 난리난리.. 다행히 어머니는 본인도 이미 떼어내서 그런지 큰 동요 안 하셔서 다행.. 역시 우리 가족이 이런 일에 덤덤하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핏줄이 그런 걸 지도.


기본적으로 통증에 예민한 편이 아니고 살성이 좋아 수술이나 치료를 받아도 빨리 아물고 빨리 낫는다.

아픔에 예민하지 않아서 빨리 낫는 건지, 그저 통증에 둔하니까 좀 아파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건진 몰라도. 어쨌거나 늘 주변 걱정보다 생각보다 빨리 멀쩡해진다.

오히려 위가 안 좋아서 수술 후 금식 내내 진통제에도 항생제에도 계속 토하고 괴로워서 입원기간 밥도 못 먹고 위통 때문에 고생했다고. 예전에 위경련 와서 응급실 갔을 때만큼 아파서 죽는 줄 알았네.




남편은 내가 알았던 그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어른스럽고, 잡학다식하며, 다정하고 섬세하다. 웬만한 사람보다 젠더감수성이 뛰어나고 센스 있는 사람. 제일 유머러스한 사람. 내가 우주의 중심인 사람.


22살 때 남편을 만나 스물아홉에 결혼하고 강산이 2번 가까이 변할 동안 몸은 변해도 마음은 변함이 없다.

난 여전히 남편과 얘기하는 게 제일 재밌고, 그의 인정과 지지가 큰 힘이 되고, 불평 없는 그의 성실함이 존경스럽다. 아이를 참 예뻐하던 사람이 아이를 안 좋아하는 나를 따라, 아이 없는 삶이 그저 편해진 건지 익숙해진 건지 몰라도 우린 처음보다 지금이 더 많이 행복하다. 


몸은 통증에 둔하지만 정신은 예민한 내가 그 긴 조울증에서 벗어나고, 한결같이 달팽이집처럼 지고 살았던 우울에서 건져질 수 있었던 건 그를 만나서다. 살면서 처음으로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 사람 덕분이다.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사람을 만나 알게 됐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던 사람도 지속적인 사랑을 받으면 자신도 타인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사랑하는 법도 배울 수 있다는 것.


딩크족의 삶의 연장을 쓰려했는데 남편의 구애로 이야기가 흘러갔네...ㅎ




내가 결혼할 즈음만 해도 아이 없는 부부는 만나기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결혼도 출산도 필수가 아닌 시대가 됐다. 원해도 여건 때문에 '못'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몰라도 전보다 선택이 좀 더 수월한 시대이긴 하지 않나..


한때 딩크족 경험을 묻고 고민하는 글들이 자주 보일 때가 있었는데 성향에 따라 천만 가지 케바케가 있지 않나.. 언제부턴가 본인인생을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묻는 이들이 많아진 거 같다.

수없이 많은 사례를 들으면 이쪽이냐 저쪽이냐 선택이 쉬워지는 걸까.? 자신의 생각과 가장 닮은 답을 기대하는 걸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깨달은 건 자신의 성향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 같은 무게로 상대의 마음방향이 같아야 하고 끊임없이 자주 얘기를 할 수 있는 관계여야 둘이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확신, 후회는 미지의 영역이고 타인의 끈적한 간섭이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소소한 오지랖에 휘둘리고 스트레스받기 쉬운 멘탈이라면 더더욱 쉽지 않다는 거 정도.




결혼 후 아이 없이 살게 되겠구나.. 생각하면서 마치 아이가 삶의 무게 균형을 맞춰주는 '무게추'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린 그 무게추가 없어서 찐 어른도 아니고, 남들처럼 두발을 땅에 다 디디지 않은 채 지표면 가까이 동동 떠다니며 가볍게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느낌이 든다. 온전히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고.



어찌 됐든- 그리하여- 우리의 딩크생활이 자발적 기간을 넘어 순리에 상관없이 자연적으로 지속할 수 있게 된 일상을 기록하고 싶었다. 물건을 줄이다 줄이다 이제 쓸 일 없는 자궁까지 줄인일에 대한 (10년 가까이 이어질 매달의 괴로움에서도 탈출~!) 단상은. 더할 나위 없는 홀가분함. 딱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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