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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Apr 06. 2021

동양의 시선에서 말하는 신뢰.

영화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문화의 이해]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연구하고 이해하여 섬세하게 담아낸 점이다. 디즈니는 백인 중심의 애니메이션이라는 비판을 받아들이고, 세계 속 여러 나라의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물론 그 한계는 아직 존재한다). 「알라딘」,  「포카혼타스」,  「뮬란」 등의 90년대 애니메이션부터, 백인이 주인공이었던 원작을 뒤엎고 흑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새롭게 재해석했지만 피할 수 없었던 논란과 저조한 성적을 거둔 「공주와 개구리」, 처음으로 폴리네시안의 이야기를 다룬 「모아나」까지, 많은 이야기를 담기 위해 여러 시각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디즈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동양의 여러 나라들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자 노력했으며, 그들의 문화와 관습, 풍습, 삶, 가치관 등을 잘 녹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준다.




용(드래곤).


상상의 동물인 용을 대하는 동양과 서양의 태도는 완전하게 상반된다 (물론 동양의 용과 서양의 드래곤이 완벽하게 같은 동물을 지칭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동양에서는 신비한 존재이자 많은 능력을 지닌 영물로 여겨지지만, 서양에서는 압도적인 힘을 가진 공포의 대상으로서 부정적으로 여겨진다. 동양의 ‘용’은 성공, 급제 등의 좋은 의미를 가진 속담이나 사자성어에 많이 들어가 있을 정도로 경외의 대상인 반면, 서양의 ‘드래곤’은 주로 악역으로 등장하여 선이 타도해야 할 사악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에 따라 묘사되는 형태 또한 매우 다르다. 동양의 용은 뱀과 같은 모습에 큰 발톱을 가졌으며, 날개는 없지만 비행이 가능하다. 반면 서양의 드래곤은 공룡과 비슷한 모습에 이족이나 사족 보행을 하며, 큰 날개로 비행을 한다. 동양의 용은 구름과 비를 부리며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이지만, 서양의 드래곤은 독이나 불을 내뿜는 빌런의 역할이다.


또한 '드래곤 젬'이라 표현되는 것은 사실상 동양의 '여의주'에 해당되는데, 서양의 드래곤은 혼자서 번식을 함으로써 태어나는 생명이지만, 동양의 용은 이무기 등의 생물이 여의주를 가지고 용으로 승천함으로써 탄생한다.


이렇게 뚜렷하게 차이 나는 존재인 용을 온전히 동양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반영했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감탄할만한 부분이다.


특히 주인공 용 ‘시수’가 소위 ‘아름답게’ 묘사되지 않았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동양인의 느낌을 다분히 담은 생김새라 생각하고 쉽게 넘길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이 또한 서양의 관점에서는 생각하지 못했을 부분이다. 지금껏 책과 영화 등으로 접했던 서양 문화적 관점에서 상상해보면, 드래곤이 인간의 형상으로 변했을 때의 모습은 ‘엘프’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다. 아름답고 우아하며 고귀해 보이는  요정 같은 모습. 따라서 용일 때의 얼굴은 납작하고, 인간화한 모습은 마녀와도 같은 시수를 마주하고 적잖이 실망한 것이 사실이다 (무척이나 개인적인 감상임을 밝힌다). 일본식,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려내는 마녀가 자꾸만 겹쳐 보였다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많이 참고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특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많이 떠올랐다.


그러나 영화를 감상하다 보니, 점차 성우인 아콰피나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정겨워 보이기까지 한 그 얼굴을 아콰피나를 염두에 두고 그린 것은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까지 들었다. 그동안 얼마나 외모지상주의에 찌들어 살았던가, 편견 속에 갇혀 있었던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매력'임을 말로만 되풀이한 모양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동양의 문화를 보여주고자 한 디즈니의 노력은 고양이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서양에서는 길한 동물이라 여겨지는 이미지의 고양이는 사실 동양에서는 불길한 동물로 여겨지며 괄시를 당해 왔다. 요즘 들어 일명 ‘캣맘’이 등장하고, 애묘인도 많아지면서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는 추세지만, 사실상 울음소리나 독립적인 행태 때문에 아직도 고양이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중장년층 이후 세대에게서 고양이는 환대받지 못하는 존재다. 이러한 동양의 시선을 담아,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서의 고양이는 악역을 자처하는 송곳니 부족이 타고 다니는 동물로 나오며, 그 묘사가 매우 사납고 거칠다.



발상의 전환.


각자가 나고 자라 속해 있는 나라의 고유한 문화 속에서 길러진 가치관은 쉽사리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어린 시절을 어디에서 보냈는가’는 그 사람의 정체성과 인생관, 그리고 자아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성장하며 놓인 환경과 주변 사람들의 영향에 의해 조금씩의 변화는 있을 수 있으나, 대표적으로 대조가 많은 동양과 서양을 예로 들 수 있는 근본적인 차이를 뒤집을 수는 없다. 따라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동양의 관점에서 만들어낸 서양의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물론 수많은 동양인들 혹은 동양계 미국인들이 제작에 참여하여 애니메이션의 다양하고 많은 부분을 제작하고, 동양의 문화를 연구한 것은 알고 있다.)


일명 어른이들이라 불리는,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고 좋아하는 성인들이 늘어가고 있기에 애니메이션 사업이 점차 발전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되지만, 어쨌든 애니메이션이라는 기본적인 포맷은 어린이들을 주 고객층으로 다룰 수밖에 없기에, 애니메이션의 다양화는 언제나 반길 일이다. 앞으로 자랄 어린이들에게 보일 디즈니에는 왕자와 사랑에 빠지는 백인 공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종이 등장하고, 성으로 인한 차별이 없으며, 인간과 동물을 포함하여 모든 생물들이 주가 되는 이야기가 펼쳐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완성될 날이 그리 머지않았음을 느낀다.



[디테일]


점차 발전하는 기술력에 따라 애니메이션 작화 또한 사실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해진다. 「겨울 왕국 2」에서부터 느꼈지만, 그 섬세한 표현의 기술은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서 더욱 발전했으며, 황홀하기까지 하다. 특히 용의 표현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한 올 한 올 살아 있는 털과 색색으로 빛나는 모습은 (올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벌써 올해 최고의 미장셴 중 하나라 꼽을 수 있을 정도다. 하늘을 가득 메우며 인간들 세계에 다시 찾아온 용들의 모습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지기까지 했다.



동양권 나라들의 각기 다른 특성을 담아내어 표현한 방식 또한 훌륭하다. 용의 각 부위 이름을 따 만든 부족의 이름들은 그 특성을 담고 있으며, 건축 양식이나 의상, 생활사를 각각의 특색에 따라 표현했다.


먼저, 라야가 살고 있는 '심장(Heart)'은 5개의 부족 중 가장 온화하고 평화로운 성품을 가졌으며, 중국 분위기가 가득하다. 라야와 갈등을 겪는 나마리가 살고 있는 '송곳니(Fang)'는 여성 리더와 전사들로 이루어진 부족으로, 야망과 야욕이 가장 많고, 평화보다는 쟁취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이집트와 일본을 섞어 놓은 느낌이 들었다.


뾰족한 산으로 둘러싸인 '척추(Spine)'는 도끼를 주 무기로 사용하며, 코끼리나 매머드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을 타고 다닌다. 산 위에 눈이 있고, 털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모티브로 한 듯하다. 수중 가옥을 가진 '발톱(Talon)'은 동남아시아를 표현한 듯했으며, 등불과 부족장의 성은 마치 베트남을 떠올리게 했다. 마지막으로 '꼬리(Tail)'는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몽골과 아프리카 부족들을 섞어 만든 이미지가 강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동양 냄새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부족들의 모습과 마을들을 구경하다니, 서양인의 시선을 최대한 배제한 디즈니라니,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미국에서 대두되고 있는 아시아 혐오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한참 먼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신뢰]


어쩌면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뻔한 주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세상 곳곳의 불행이 싹트는 이유는 불신이 그 씨앗이 되기 때문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지낸다. 그 불신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많은 이들의 목숨을 통해 ‘신뢰’를 말한다.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던 신비의 땅 ‘쿠만드라’에 불신이 움트는 순간, ‘드룬’이 나타나 인간과 용을 동물로 만든다. 사람들의 욕심으로 깨어진 탓에 다섯 부족이 나눠 가지고 있는 드래곤 젬 조각들을 모아 다시 하나의 드래곤 젬으로 완성시키면 드룬이 없어질 것이라는 내용의 이야기는 신뢰와 협력을 강조한다. 흩어진 무언가를 모으는 것은 보통 막강한 힘을 얻어 다른 이들을 지배하기 위함이 그 목적이 된다. 작년 엄청난 음악과 컬러풀한 미장셴으로 황홀함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한  「트롤:월드투어」만 해도 흩어진 스트링은 그저 전쟁의 원인이 될 뿐이었다. 그러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모든 이들의 생명과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드래곤 젬을 모은다. 당연한 이야기를 따뜻하고 소중하게 다루는 것, 디즈니의 장점이다.


처음 이 영화를 접하고, 마음이 울렁이며 눈물이 왈칵 쏟아진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 영화를 보고 울었다고?’ 의아함과 당혹스러움에 나 자신도 놀랐지만, 이내, 영화 곳곳에 감동이 묻어 있고, 그 감동은 신뢰를 기반으로 했으며, 내 감정을 건드렸음을 알았다. 아빠이자 족장인 벤자가 딸이자 공주인  라야를 포함하여 다른 모든 이들을 살리기 위해 결심하는 희생, 가족을 잃었다는 아픔 아래 서로에게 의지하는 인물들, 잃은 가족의 수만큼 떠내려 보내는 꽃잎에 깃든 슬픔, 형제의 마지막 능력을 얻어 비를 내리게 하고 그 비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시수의 모습, 돌이 된 엄마를 잃고 어린 나이에 도둑이 되어 영특해 보이던 ‘노이’가 엄마를 만나자 한없이 돌봄이 필요한 아가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순간, 모든 곳에 신뢰가 존재했고, 그래서 뭉클했다.


내가 먼저 신뢰하는 세상, 참으로 불가능한 일이 되어가는 것 같지만, 분명 희망과 빛도 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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