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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Apr 29. 2021

바다에서 그린 수묵화

영화 「자산어보」



[감독]


이준익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본다. 한국 영화를 선호하고 챙겨보는 편이 아니기에 기억하는 것보다 꽤나 꾸준히 이 감독의 영화들을 보아 왔음에 무척이나 놀라다가, 한국 대표 감독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다작 활동을 하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들 중 기억에 남는 작품 몇 개를 꼽아 본다.



당시로서는 센세이셔널했던, 15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촌스럽거나 유치하지 않고 여전히 매력적인 「왕의 남자」. 그 취지와 분위기에 알맞은 '흑백'이라는 현명한 선택을 함으로써 영화의 격을 한층 올린 「동주」(사실 좀 지루했다).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취향에 맞지 않았지만, 특유의 무게감 있는 분위기와 긴장감을 고조시키던 꽹과리 소리, 유아인의 열연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사도」(이상한 노인 분장 또한 또렷하다). 그 외 「변산」,「박열」, 「소원」 등은 보지 못해 평가할 수 없으나, 앞으로도 볼 계획이 있지는 않다.



이번 영화 「자산어보」는 이준익 감독의 대표작 서너 개를 합쳐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두 남자의 이야기이며, 흑백 영화고, 조선 시대가 배경이다. 본인이 '잘하는 것'들을 요목조목 합쳐 멋진 수묵화 하나를 그려냈다. 「동주」에 이어 흑백을 선택한 감독의 현명함은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살렸고, 조선시대 배경에 충분히 어울리며 독특한 매력을 선보인다.


오랜만에, 남녀노소 모두가 유익하고 재밌게 볼 수 있으며,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을 한국 영화가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취향에 맞지는 않으나, 의미 있는 작품이면서 상업적이기까지 한, 가뭄에 단비 같은 한국 영화임은 틀림없다.



[정약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약용 선생과는 다르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정약전에 관한 이야기다. 알고 보니 위인이라 칭송되는 정약용의 스승 같은 형이었으며, 평등한 세상 이치와 천주교에 일찍 깨우치고, 길이 가치 있게 남을 어류 학서 '자산어보'를 남겼다. 처음 들어 보는 '자산어보'라는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나니, 정약전의 열정과 안목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시대를 앞서간 생각과 가치관은 무엇이었는지 와 닿는다.


시대를 앞서간, 혹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인물들이 있다.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그들 중 대부분의 삶은 순탄치 않다. 당시에 인정받지 못하고 외려 천대받고 무시당하며, 고되고 가난한 현생을 살다 후대에 천재나 위인으로 칭송받는다. 위인으로 대접받지는 못하지만, 이제야 서서히 그 이름을 알리는 정약전이 있다.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무원들의 청렴 교과서인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의 가치와 훌륭함은 익히 알고 있다. 공무라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변화의 흐름에 맞추어 변형될 뿐, 큰 틀은 변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므로, '목민심서'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그러나 '목민심서'는 유교 사상이 기반인 나라에서 살던 사람이 쓴 책이기에, 소위 '꼰대스러움' 혹은 틀에 박힌 말처럼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반면, 그러한 책은 누군가(정약용 포함)가 쓰고 있으니 자신은 다른 책을 쓰겠다던 정약전. 세상의 이치를 미리 내다보는 그 혜안은 열려 있으며 깊이가 남다르다. 이런 인물들이 정계에서 제대로 된 정치를 펼치고 왕을 보필했다면, 역사와 지금 우리의 세상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생각해본다.



[미장셴]


한 편의 수묵화라 표현할 만큼 대한민국의 산과 바다를 아름답게 담았다. 주된 배경인 흑산도의 들과 바다, 정약용의 유배지인 강진의 숲과 나무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 속에서, 자연과 어우러져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평화롭고 따뜻하다. 


첫 장면부터 '아름답다'라고 생각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산세의 빼어남에 입이 떡 벌어진다. 우아함을 더하는 흑백은 감탄할만하다. 한국에도 아직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곳들이 많음을 떠올리며,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 못 간다고 아쉬워하지 말고, 이 기회에 국내 여행을 다녀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훌륭한 미장셴이다.



[그 외]


개인적인 취향에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점은 꽤나 아쉬운 점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지극히 평범했고, 사실을 기반으로 픽션을 가미한 스토리 자체와 플롯은 좋았으나, 사건의 정점이라 할 만한 부분 없는 밋밋한 진행은 후반부로 갈수록 호흡이 늘어뜨리며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었고, 과감한 편집으로 적절한 속도감을 유지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덧붙여 설경구 캐스팅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배우의 사적인 부분이 영화에서 떠오르지 않았다면 좋았으련만, 조선 시대에는 첩이라는 것이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가장 칭찬할만한 부분은 억지스러운 신파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 상업 영화들의 전형에 갇히지 않았다는 것에 다시금 고마운 마음까지 든다. 다음 작품에는 조금 더 기대를 걸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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