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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May 16. 2022

12주간의 해프닝

영화 「레벤느망」


레벤느망(l'événement)


영화는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소설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임신중절이 불법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시선에서도 벗어날 수 없었던 196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대학생 '안'의 임신과 낙태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다.


원작과 영화의 제목을 영어로 번역하면 'The happening' 즉, 사건이라는 뜻이다.


남은 일생을 좌우할 만큼 큰일이었던 이 선택을 그저 12주간의 '해프닝'으로 표현한 작가의 의도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는 극단적인 태도가 아니라,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가 없을 만큼, 그 외의 선택지는 고려할 겨를도 없을 만큼 간절하게 자신의 인생을 원했다는 뜻이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낼 수는 없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희미해지는 그런 하나의 사건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참고로 프랑스는 1975년 12주 이내의 태아를 낙태할 수 있는 법이 마련되었으며, 이는 낙태의 합법 시도를 가장 빨리 진행한 국가 중 하나라고 한다.)



임신 중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냐 태아의 생명이냐를 두고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 문제는 바라보는 시각과 가치관에 따라 의견이 극단적으로 갈린다. 이에 개인적으로 중립의 의견을 가진다. 양쪽 모두의 말이 지극히 옳기 때문이다.


생명의 소중함은 구태여 강조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생명이라 볼 수 있는가, 수정과 착상이 이루어지면 무조건 생명인가, 세포의 시기를 지나 태아가 되는 시점을 정할 수 있는가 등의 정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파생된다.


모두가 가진 자기 결정권이라는 것이 왜 임산부라는 여성에게만 당연한 권리가 되지 못하는 걸까 의문이 든다. 그러나, 생명의 무게보다 자기 결정권이 중요하다 볼 수 있는가, 임신과 출산이 인생의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인가, 자신의 행위(범죄 등의 사유를 제외한 일반적인 경우를 말한다)에 대한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등의 의문점 또한 따라온다.



한쪽의 입장만을 옹호하기 어려운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의도치 않은 임신이라는 것의 무게가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치우치는 것 때문이라 생각한다. 결과를 떠나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며 함께 해결하려 하지 않고 여자에게 떠넘기는 그 남자가 원인이다. 적어도 결론이 날 때까지는 책임감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고통과 상처.


보기 힘든 장면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고통이 배에서 느껴지는 것만 같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아도 여자라면 모두가 어느 정도로 상상 가능한, 적어도 중등도의 생리통을 겪었다면 어렴풋이 짐작 가능한 고통이 뇌를 자극한다.


안의 표정과 소리만으로 전달되는 그 장면들을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녀의 의지일 것이다. 자칫 잘못되면 감옥에 가게 되어 남은 인생을 미혼모보다 더 끔찍한 범법자로 살아야 하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도 낙태라는 어려운 결정을 쉽게(그렇게 보이도록)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아직 준비되지 않은 '엄마로서의 인생'보다 아직 한창인 '온전한 나로서의 인생'을 강렬하게 원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흔들리지 않고 단호한 결정을 내린 안일지라도 그 속은 어떠할지 아무도 모른다. 


누가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할 수 있을까.



충격과 공포의 순간들이 다 지나가고 끝이 보일 때쯤, 의사가 진단을 내린다. 화면에 얼굴이 등장하지 않고 목소리만으로 전달되는 의사의 그 말 한마디에 안도했다. 찰나의 순간 '이런 감정을 가져도 되는 걸까' 반문하면서도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님을 안다. 애써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뿐, 안이라는 사람은(여자는) 이미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일상으로 돌아가 웃고 있는 안의 모습이 왠지 슬퍼 보인다. 

(이 영화는 4DX라는 어떤 분의 코멘트를 보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 영화.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전형적인 프랑스 영화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인물을 따라다니는 카메라, 공기가 코로 느껴지는 것만 같은  분위기와 몽환적이면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색감, 뿌연 안개가 낀 듯한 미장센. 보는 내내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로제타', '쁘띠 마망' 등의 영화들이 떠올랐다.


(분위기나 미장센과는 다른 이유로 '티탄'이 떠오르기도 했다.)


여성의 이야기라고 재단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을, 잘 만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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