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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작가 Oct 28. 2020

만화영화에서 시작된 물결


20대 초반의 내게 ‘만화영화’란 어릴 적을 추억하게 만드는 스위치 정도였다. 스토리는 잘 기억나지 않아도 만화 주제가는 기억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 주제가를 떠올리다 보면 그 당시의 친구들도 함께 떠올랐는데 그때는 친구 집에 가면 일단 투니버스 채널을 틀어놓고 놀았기 때문이다. 투니버스를 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마치 카페의 배경음악과 같았달까.


이렇게 만화영화를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한정 지어서 생각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만화는 단지 나의 과거를 떠오르게 하는 수단 정도이며 이젠 내게서 멀어진 어린이들만을 위한 매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만화는 비현실이 아니던가? ‘사람이 아닌, 단지 그림일 뿐’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20대 초반에 나의 감수성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아마 그 당시에 나를 만났던 사람이라면 나를 보며 ‘이런 낭만도 없는 매정한 사람 같으니라고!’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언뜻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예매한 것이었지만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갔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영화 속의 장면, 장면들을 거치면서 나의 죽어있던 감정들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음을 느꼈다. 감정들을 캐릭터로 표현한 것이 큰 역할을 했는데 기쁨이, 슬픔이, 까칠이, 소심이, 버럭이 캐릭터의 움직임을 보며 나의 감정이 실제로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나는 조금은 얼떨떨했다. 나의 편견이 깨진 순간이었다. 때로는 비현실이 더 현실을 잘 반영한다는 것을, 비현실이 현실에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그 이후로 나는 가치판단을 할 때 현실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실이 비현실보다 더 뛰어나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데는 현실도 비현실도 모두 필요하다. 현실과 같은 비현실을 그려내는 만화영화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만화영화와 함께 또 다른 허구의 세계인 소설 속에 풍덩 빠져버렸다. 허구이지만 현실과도 같은 그런 세계들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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