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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작가 Oct 15. 2020

나의 심리상담 도전기_(2)

첫 번째 난관_감정의 언어화


평소에 감정 표현이 서툴었던 사람에게 '자, 이제부터 너의 감정을 표현해봐!'라고 말한들 그때부터 술술 자기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심리상담을 통해 나의 감정 표현력이 조금씩 나아진 건 사실이었으나 더디고 더딘 그 과정 속에서 나에게 찾아왔던 여러 가지 난관들이 있었다.


그중 첫 번째 난관은 감정을 언어화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안 해본 일을 하는 것은 무척 어색하지 않던가. 애초에 어떤 일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타고난 감정표현의 천재가 있다고 한들 처음부터 청산유수로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다. 물론 나는 감정 표현의 천재가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나는 감정 숨기기의 천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심리 상담을 받던 그때, 나는 감정을 숨기는 천재적인 재능을 내던져 벗어버리고 기꺼이 감정 숨기기의 바보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감정 숨기기의 바보가 되겠어!'



감정 숨기기의 바보가 되겠다는 건 상담에서만큼은 감정을 잘 표현해보고 싶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큰 결심이 무색하게도 평소에 표현해본 적이 없는 감정들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내게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적절한 단어와 문장들로 나의 감정을 표현하게 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연습기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기어 다니던 아기가 마침내 땅을 딛고 일어나 한 발짝 내딛으며 걷다 보면 나중에는 뛰어다닐 수도 있게 되듯이, *감정표현도 반복하고 연습하다 보면 조금씩 실력이 는다. 누구나 꾸준히 자기감정을 표현하다 보면 표현력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한마디 내뱉는 게 이토록 힘든 것이라니.'



초반에 상담을 받으면서 했던 생각이다. 처음에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상담의 절반이 침묵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그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하는 질문에 '그냥 힘들었어요.'라고 답하는 건 감정표현이 아니라고 교수님(상담사님)께서 말씀하셨기에 나는 평소에 쓰지 않던 단어들을 머릿속에서 떠올려야 했다. 교수님은 내가 답변을 떠올릴 때까지 기다려주셨고 때문에 침묵의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그렇기에 침묵이 흘렀다고 해서 상담이 끊긴 건 아니었다. 내 입장에서는 모든 순간이 치열한 말짓기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혹시 적합하지 않은 단어나 문장을 말하더라도 다시 수정하면 되니까 떠오르는 단어들을 이것저것 말하라고 하셨다. 이러한 훈련을 하면서 처음에는 머리에 쥐가 나는 기분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생각보다 풍부한 언어로 서술 가능한 존재였다. 그렇게 나는 나를 다양한 측면에서 인식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은 그때의 감정 표현 연습이 발단이 되어 지금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되어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도 일종의 자기표현이자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감정 표현과 비슷한 면이 있다. 용기 내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하게 해 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도 몰랐던 본래의 나를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 아, 감정표현도 실력이라니. 하지만 나는 실력의 상승에 점수를 매길 생각은 없었다. '전에는 감정표현을 10 정도 했었는데 지금은 20 정도 표현하는 사람이 됐어! 2배나 늘었네!' 하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나는 이전의 나보다 자유로워진 것이었다. 얼마큼 더 나아졌는지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경험,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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