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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작가 Oct 22. 2020

나의 심리상담 도전기_(3)

두 번째 난관_죄책감


나의 묵혀두었던 감정들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직면하게 된 두 번째 난관은 죄책감이었다. 대부분의 부정적인 감정은 누군가를 향하는 감정일 때가 많다. 아무리 상담실에서 은밀히 하는 이야기라지만, 또 다 지나간 감정들을 표현해보는 것뿐이라지만, 때로는 드러내어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 대상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붙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더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에는 상담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 오늘 상담에서는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실컷 뒷담화만 하다가 끝난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속이 시원하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다.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이 마음에 일었다.


이러한 혼란은 심리 상담을 진행하는 중에 겪는 흔한 일 중에 하나다. 사실 나의 경우에는 상담 초, 중반 거의 매 순간 겪었던 혼란이다. 가까운 이들을 뒷담화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드는 데다가 그들이 꼭 나쁜 사람만은 아닌데 내가 너무 나쁘게 말하는 것만 같아 더 큰 미안함이 생기기도 한다. 하필 꼭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이 나를 위해주고 챙겨주었던 경험이 떠올라서 더 괴로워지기도 했다.






어떤 말이든 상담실에서 뱉은 말들은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상담에서 뱉은 말들은 상담을 받는 그 순간에도 나를 돌아보게 하지만 상담을 마친 후 일상으로 돌아가서 상담을 복기해보는 과정을 통해 조금 더 명료해진다. 다음은 상담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서 떠올렸던 말들이다.


'교수님(상담사님)의 질문에 내가 왜 그런 대답을 했을까?'
'그때 그 말은 너무 과장해서 표현했던 것 아닐까?'

'아, 그때의 감정을 표현해보라고 하셨을 때 이렇게 말할 걸. 그땐 이 말이 안 떠올랐네. 다음에는 이 표현을 써봐야지.'



상담을 마친 후 나눴던 대화들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려보는 것은 조금 귀찮기도 하고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복기의 과정을 갖는 것은 나의 생각과 마음을 알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복기를 하려면 상담에서 내 생각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복기할 만한 상담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상담을 복기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상담에서 뱉었던 말들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조금 더 명료화되고 있음을 느꼈다. 밖으로 꺼내 말하지 않은 것들은 여전히 나만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어서 명확하지 않고 구체적이지 않은 희미한 것들이다. 마치 단순히 지식을 알고 있는 것과 그 지식을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의 차이점과 비슷하다. 내 안의 있는 생각들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건 구름 속에 가려져 있는 달빛과 같다. 빛은 새어 나오는데 잘 보이지 않아 달의 형태를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밖으로 꺼낸 말들은 그 형태가 조금씩 명확해지고 구체화된다. 지난번 글의 주제였던 '감정의 언어화'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구체화된 말속에서 마음속 혼란들은 조금씩 잠잠해지기 시작하며 내 마음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구름이 걷히고 달의 형태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상담을 복기하는 과정을 통해 상담에서 꺼냈던 말들의 효용성에 눈을 뜨게 되면서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도 내가 서운했던 이야기들, 내뱉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교수님(상담사님) 내보이기 시작했다. 밖으로 내뱉어 말하면서 풀리는 실타래가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내뱉어야 실타래가 더 잘 풀린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어차피 엉킨 실타래를 풀려고 상담실에 찾아온 거 아니야? 그러려면 서운했던 것들, 아팠던 것들에 대해서 말해야 돼.'하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죄책감을 떨쳐내려고 노력했다. 한 번에 모든 걸 떨쳐낼 수는 없었지만 점차, 조금씩 마음이 편해졌다.



쌓여있는 나의 생각과 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말을 할까 말까 고민되는 주제가 있다면, 어쩌면 그게 엉킨 실타래를 푸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마냥 쌓아두기만 한다면 엉킨 실타래는 그대로 엉킨 채로 마음속 한 구석에 덩그러니 남아있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이 내게 잘해줬던 일도 있지만 그 사람에게 내가 서운함을 느낀 일도 분명히 있다. 상담에서 이야기를 할 때 이 두 가지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두 가지를 분리해놓고 평생 서운함을 마음에 담아두라는 말이 아니다. 평생 담아두지 않으려고 상담을 받는 거다. 서운함으로 인해 내 안에 쌓여있던 감정들이 어느 정도 풀릴 때까지 상담에서 털어놓으며 치유하기 위해서.




사실 나도 당시에는 무척이나 어려웠던 부분이기에 심리 상담을 막 시작했거나 심리 상담을 받게 될 분들에게 '내가 겪어봤는데요, 그냥 다 털어놓는 게 좋습니다.'하고 무책임하게 말하는 것 같아 조금은 염치가 없다. 나도 처음부터 그러지 못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 꼴이니...


그렇지만 '누군가는 상담을 받으면서 나와 비슷한 것을 경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글을 쓴다. 상담을 받으며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읽는 그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해주고 싶다.


'그런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 스스로를 위해 그런 죄책감을 떨쳐냈으면 좋겠어요. 당신을 아프게 했던 것들은 당신 잘못 때문이 아니에요. 그리고 상담에서 당신의 상처를 용기 내어 말하는 건 그 누구보다도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 당신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상담을 받는 동안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아픈 마음들을 하나씩 꺼내 내려놓고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당신만의 달을 찾아나가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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