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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하리 Jun 21. 2021

할아버지가 아빠 그만 미워하래

정말이야. 하늘나라에 있는 할아버지가 그랬어.

아빠. 우리 얼마 전에 할아버지 산소 갔었잖아. 아빠랑 삼촌들은 할아버지 산소 주변 향목에 비료 주고 나는 엄마랑 산에서 달래 캐고. 그리고 할아버지한테 인사드리고 왔잖아. 근데 말이야. 내가 그 후에 꿈을 꿨어. 시답지 않은 잔 꿈만 꾸던 내가 아빠 꿈을 꾼 것 있지. 그것도 아빠가 죽는 꿈.


아빠 장례식장이었어. 엄마랑 오빠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울고 있었지. 그리고 우리집 장면으로 이어지더라고. 목소리 큰 아빠가 없는 고요한 집. 엄마랑 오빠는 집에 와서도 오열했어. 근데 나 그때까지도 안 울었다? 눈물 한 방울 안 나오더라고. 스스로도 참 독하다 생각 들더라.


내가 그랬잖아. 아빠 정말 싫어한다고. 말 거는 것도, 쳐다보는 것도 싫으니까. 서로 없는 셈 치며 살자고. 아빠가 신장암 수술 이후 언제 전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날 이유 없이 때린 그 순간부터 나에게 아빠가 없다 생각했어. 화를 주체 못 해 내 얼굴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가격하고 그 다음날 아무 일도 없이 행동하는 아빠를 보면서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아빠는 모를 거야. 그때 난 고작 17살 여자애였는데.


나는 있지. 그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1초도 고민 않고 아빠를 말했어. 중학교 때, 내 잘못으로 아빠가 학교에 불려 와서 선생님과 면담했었잖아. 함께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내 손 붙잡으면서 했던 말 기억나? '세상 사람 모두가 하리한테 등 돌려도 아빠만큼은 하리 믿을 거야.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하리만 믿을 거야.' 내 사춘기 방황은 그 말 한마디로 끝났어. 아빠가 나한테 주는 절대적인 믿음이 내 인생을 바뀌게 하더라. 아빠는 나에게 세상 그 자체였어. 그리고 한순간에 세상을 무너지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지.  


24살에 일이 터졌지. 친할머니 수술 후 요양 문제로 엄마와 아빠가 싸울 때였어. 친할머니를 잠시 집에서 모시자는 아빠의 말에 난 완강히 반대했어. 엄마 몸도 안 좋은데 일 끝나고 집에 와서 할머니까지 돌봐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들었거든. 아니야. 솔직히 말할게. 그냥 아빠가 한 말이라 싫었고 아빠 때문에 내가 피해 보는 게 싫었어.


단단한 유리그릇이 산산조각 났잖아. 아빠가 내 머리에 내리쳐서. 전날 친구들과 쓸데없는 선물 받기를 했는데, 그때 받은 우스꽝스러운 꽃무늬 조끼가 피로 검게 변했어. 형형색색 화려한 패턴이 피로 다 지워졌잖아. 피가 너무 많이 흘러 발까지 적셨고 내가 걸을 때마다 피로 물든 발자국이 찍혔지. 나는 그때 피가 그렇게까지 뜨겁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


그때 아빠 기억나? 피범벅인 내 얼굴을 보면서 차마 만지지도 못하고 손 부들부들 떨면서 '어떡해.. 어떡해..' 하면서 울었던 거. 사시나무 떨 듯 덜덜 떠는 아빠 모습 보면서 내가 말했잖아. '괜찮아. 아빠. 나 안 아파. 정말 괜찮아.'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아빠를 위안시키려고 하더라고. 딸을 참 지랄 맞게도 착하게 키웠다. 그렇지?


응급실에 실려가 여덟 바늘을 꿰매면서 의사선생님이 물었어. 어디서 다쳤냐고. 장식장 위에 있던 유리그릇이 떨어졌다 말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다짐했어. 내가 아빠한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는 여기까지라고. 그래서 나는 아빠가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올 줄 알았어. 평생 남자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갈 내가 아빠의 죽음에 슬퍼할 리가.


꿈의 마지막 장면은 평범했어. 평소 아빠가 집에 있는 모습. 텔레비전을 보고 밥을 먹고 집안일을 하는 모습이었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빠는 나를 못 본다는 거. 내가 말을 걸어도 듣지 못했고, 손을 만져도 느끼지 못했어. 그저 묵묵히 아빠 할 일을 했지. 그때부터 눈물이 수도꼭지 고장 난 것처럼 흐르더라.


그 일이 있고 시간이 참 많이 흘렀지. 아빠는 새 사람이 된 것처럼 변했잖아. 욕이 일상이던 아빠가 욕을 끊었고, 언성도 높이지 않았어. 내게 손 올리는 일은 당연히 단 한 번도 생기지 않았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고생했다는 아빠의 말을 무시하는 게 일상이었잖아. 그럴 때마다 아빠는 방문을 조심히 열고 '오늘도 힘들었지? 배고프면 아빠가 밥 차려줄까?'라고 말했고.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나가라고 말했지. 내가 집에서 하는 일은 오직 아빠한테 상처 주는 일밖에 없었어.


내가 지옥에서 살았던 것처럼 아빠도 그러길 바랐거든. 평생을 죄책감에 사로잡혀 죄인처럼 살기를 바랐어. 근데 말이야. 사실 난 알고 있었어. 아빠가 그 일이 있고 난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죄수처럼 살고 있다는 걸. 아빠의 변한 모습을 보면서도 애써 무시했어. 아직 난 미워할 사람이 필요했거든.


꿈의 마지막 장면에서 내가 한 행동이 뭐였는지 알아? 아빠의 발목을 부여잡고 펑펑 우는 거였어. 수년간 아빠가 변한 모습을 유지하는 걸 보면서 왜 한 번이라도 따뜻한 말을 건네지 못했을까.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 어떤 방송프로그램을 보고 있는지, 집안일은 힘들지 않은지. 그런 사소한 말들 조차 건네지 못했을까 후회하면서 아빠 발목을 부여잡고 울더라고.


눈물범벅인 얼굴을 감싸며 잠에서 깼어.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했지. 내가 만든 악몽에서 이제 깨어나야겠다고. 나는 이미 아빠를 용서했어. 반성은 말로만 하는  아니라 변한 모습을 유지하는 거라던데.  아빠가 수십 년간 배어있던 습관들을 버린 모습에서 이미 알고 있었어. 굳이 내가 비수 꽂는 말들을 내뱉지 않아도 아빠는 매일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는 .


참 신기하지. 하필 할아버지 산소를 갔다 온 후에 이런 꿈을 꾸다니. 할아버지가 나한테 알려주고 싶으셨나 봐. 후회할 행동 그만 하고 남은 날들 후회 없이 아빠를 사랑해주라고. 돌이킬 수 없는 날이 왔을 때, 더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갈 내가 걱정되셨던 것 같아.


이제 아빠 그만 미워하래. 할아버지가 그랬어. 정말이야. 아마  글을 평생  보겠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말해볼게. 아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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