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꽃 피다
물로 만들어진 내 몸에서도 물꽃이 피어난다
물꽃 피다
아침 일찍 밖을 나오니 공기에서 향기가 느껴진다. 눈을 감고 촉촉한 기운을 흠뻑 들이마시니 상큼하다. 아직도 전날의 여운이 남아 있어서 진한 풀내음이 코끝을 맴돈다. 쥐똥나무 옆을 지날 때는 은은한 향기가 보도블록 가득히 깔려 있고 아침 안개가 좀 꼈지만 싱그러운 내음이 안개 사이로 퍼지고 있다.
전날 하루 종일 촉촉이 비가 내렸다. 그것도 안개비가 기척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있고 싶어 하는 내 마음과도 같이 그렇게 하루 종일 내렸다. 그 모습이 좋아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산책길로 나왔다. 물의 세상이다. 풀잎 위에도 나뭇가지에도 물방울들이 촘촘하다. 안개가 은행나무 밑으로 내려와 깔린다. 물기를 머금고 흐릿해지는 대기가 주위의 모든 것을 감싸고 있다. 오솔길은 인적도 없이 안개에 잠겨 있다가 소리 없이 방문자를 맞이하고 있었고 나 또한 그들의 적막을 깰까 가만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흙은 내 마음을 아는 냥 안아주듯이 땅의 자리를 내주었다. 정적 속에 잠기듯이 자신을 맡기고 하늘높이 치솟은 메타세콰이어나무 사이로 흐릿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은 희미하지만 하나인 듯 느껴졌다. 알려주고 싶다. “여기 제가 들어섰습니다.”
뿌연 안개가 오솔길 그득하니 내 몸을 휘감는다. 미세한 물방울들이 마치 글자와도 같다. 문학 가까이 사는 것은 기쁨이다. 천년을 넘나드는 사연들이 흐르고 있다. 나무와 풀들 사이로 총총히 피어난 물꽃은 응결된 언어다.
물로 만들어진 내 몸에서도 물꽃이 피어난다. 길에 서서 몸을 적시는 침묵속의 언어에 귀 기울이며 말을 걸었다. “이곳에 이야기를 띄웁니다. 언어의 알갱이를 마음으로 보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