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cook Sanctuart Lakes Black Swan
12월의 비가 호수의 고요함을 건드리며 동그라미를 그린다. 구슬 같은 빗방울들이 무화과나무에 총총하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을 우아하게 장식하는 여름비다. 추위와 눈 대신 무성한 나무와 신비스런 보라색 꽃들과 무화과 열매를 보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큰애 집이 있는 호숫가의 풍경이다. 이 생경한 느낌이 내게 여유로움을 주는 건 여행자처럼 잠시 머물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곳의 평온함 때문일까. 모든 것이 촉촉하게 젖어든다.
이곳은 호주 빅토리아주 포인트쿡에 있는 Sanctuary Lakes이다. 블랙 스완(Black Swan)이 새끼들을 데리고 호숫가 가장자리에서 쉬고 있다. 일명 흑고니라고 불리는 검은 백조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상징하는 새 중 하나이기도 하다. 태어난 곳에서 평생 살아가는 텃새라고 하는데 가끔 한국의 강기슭에서도 한두 마리가 보이기도 한다니 신기할 뿐이다. 호숫가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운다. 저 새를 처음 보았을 때의 놀라움이란! 고고하고 귀한 새가 새끼를 키우는 모습이 신기하여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다. 흰색 솜털이 보송한 새끼 3마리를 부모가 애지중지 살뜰히 보살피는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부모는 검은데 새끼는 흰색이다. 같은 백조라고 태어날 때는 흰색인가보다.
Black Swan은 또 다른 의미로 쓰인다. 상식에 대하여 반대로 생각하는 것과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을 내포하는 것으로 예외적이고 발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일이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뜻한다. 그것은 호주에서 18세기에 검은 백조가 발견되면서 생긴 용어이다. 수천 년 동안 유럽인들은 모든 백조는 희다고 생각해왔다. 유럽의 한 탐험가가 호주에서 검은 백조를 발견하면서 그 통념이 깨진 데에서 유래 되었다. 경제 용어로는 흑조 이론이라 일컫는다. 그 의미는 미국의 금융 분석가 니콜라스 탈레브의 저서 <Black Swan>으로 더 유명해졌다. 탈레브는 Black Swan을 과거의 경험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관측 값이라고 정의했다.
어쩌면 우리는 통념이 없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가만히 살펴보면 Black Swan 같은 일들이 우리에게도 또 세상곳곳에 빈번히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내게도 Black Swan과도 같이 그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온 것이다. 이곳에 와서 정원 앞에 호수가 펼쳐진 그림 같은 이층집에서 머물게 될 줄 상상이나 했던가.
호주하면 백호주의(白濠主義)가 강해서 차별이 심하다고 생각했었다. 여행도 오고 싶은 않은 나라였다. 뜻밖에도 멜버른에 내렸을 때 온갖 인종들이 다 모여 사는 곳이라는 걸 오감으로 실감했다. 이곳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감행했으며 나자신 편견에 가득차 보고듣는 것이 막혔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는 예외적인 이민정책을 많이 펼쳤다. Black Swan 즉 과거의 통념을 부순 예기치않은 관측값이 일어난 것이다. 큰애가 여기 와서 살거나 아기 때문에 내가 오게 될 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다. 정원 앞의 호수를 바라보면서 그레이 기와지붕에 크림색 벽, 테라스가 있는 이층집의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르내리게 될 줄이야!
오스트레일리아는 나무로 집을 짓는다. 1층은 생활공간으로 차고와 주방이 있으며 바닥은 돌로 된 타일을 깔았다. 이층은 거실과 방이 있으며 마루바닥에 카펫을 깔았다. 계단부터 베이지색 카펫이 깔려있는데 나무의 단단하면서도 정겨운 감촉과 덜꺽거림이 카펫 아래에서 느껴진다. 7년 된 이 집은 여기저기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럴 때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 콘크리트로 지은 아파트에서 수십 년을 지내다오니 이층 테라스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서 있으면 판타지 영화 속의 나라로 들어온 착각에 빠진다.
이 곳 오스트레일리아 포인트쿡에 있는 호수에는 흑고니 이삼십 마리 정도가 산다. 물길 따라 굽이굽이 자신들의 영역이 있다. 거의가 암수 한 쌍으로 다닌다. 부리는 새빨갛고 치켜든 꽁지 속으로는 흰 깃털이 살짝 보인다. 유유히 호수 위에 그림같이 떠 있으면 이곳이 낙원같고 환상의 세상속으로 건너온 느낌이다. 고전 발레가 떠오르며 백조의 호수가 연상되기도 한다.
블랙스완 몇 마리의 목에는 인지표가 있다. 자치적으로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서는 멸종했다고 한다.
새끼를 기르는 블랙 스완의 영역이 우리집 앞인 것 같다. 새끼 보호가 얼마나 강한지 암수가 에워싸다시피 하면서 다닌다. 물닭이나 갈매기가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하면 그 커다란 날개를 펼치면서 위협을 가한다. 물 위에 있는 모습과 나는 모습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목을 길게 빼고 빨간 부리를 치켜들면서 날개를 펼치면 숨어있던 새하얀 깃털이 펼쳐지면서 우아하기 이를 데 없다. 검은색이지만 백조임을 나타내는 것 같이…. 블랙 스완이 노니는 호수를 바라보며 자연과 더불어 잠시나마 지내게 된 것이 꿈을 꾸는 것 같다.
멜버른시티 중심가를 걷다보면 유럽인, 아시아인, 인도인, 아랍인 등 얼굴빛과 옷차림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게 된다. Black Swan 시대를 실감한다. 알 수 없는 수많은 언어들이 흘러간다. 백호주의(白濠主義)를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다문화 시대의 문을 열었다.
호숫가의 블랙 스완을 바라보면서 오스트레일리아를 다시 깨우치고 있다. 이례적일 수도 있고 다양성의 세상으로 문을 연 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들이 들락거린다.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지혜를 얻기 위해 틀을 무너뜨리며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