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늘보 Apr 20. 2021

현대판 육아일기가 된 맘스타그램



결혼한 애들이 인스타에 자꾸 자기 밥상 사진을 올리는 건지 이해 못 하겠어.


L이 말했다.

“근데 나도 결혼하니까 같이 올리게 되더라?”


딩크족을 지향하는 L은 몇 달 전 결혼식을 올렸다. L의 인스타그램은 여행하는 사진과 자췻집에 진열해 둔 와인 컬렉션, 그리고 브라이덜 샤워와 결혼식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다. 결혼식 후 최근까지는 거실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와인을 마시는 모습, 자연 속 캠핑 사진, 지인들을 초대해 음식을 먹는 장면이 보인다. 아마 퇴근 후 남편과 함께 와인과 넷플릭스로 저녁 시간을 보내고, 결혼하면서 캠핑을 취미 생활로 즐기는 것 같다. 이처럼 인스타그램을 보면 내 친구의 일상과 취미, 관심사를 알 수 있다.


나 또한 결혼을 기점으로 인스타그램 피드가 달라졌다. 30년 넘게 밥솥을 만져본 적도 없으면서 결혼을 앞두고 대대적인 주방용품 쇼핑에 들어갔다.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김치전과 김치볶음밥같이 김치만 있으면 90%는 해결되는 소울푸드뿐이지만 그릇은 꼭 당시 유행하던 자연 질감이 돋보이는 도자기를 고집했다.


이런 내 모습에 엄마는 빈 깡통이 요란하다며 혀를 찼다. 내 피드에 요리 사진보다 새로 마련한 그릇 사진이 더 많은 이유가 빈약한 요리 실력 때문이란 걸 알만한 사람은 알았을 테지만, 어쨌든 나도 ‘#신혼밥상’, ‘#결혼스타그램’ 이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기를 낳은 후 내 인스타그램은 결혼 전후의 차이보다 더 극명하게 달라졌다. 가끔 L이 내 피드를 보며 “애기 낳은 애들은 왜 자꾸 자기 애 사진을 올리는 거야?”라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엄지손가락이 쭈뼛거릴 때도 있지만, 이내 ‘아 몰랑~’하며 사진 공유 버튼을 누른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결혼 준비 중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예비 신부들에게 인스타그램은 결혼을 위한 중요한 레퍼런스로 활용된다. 이미지 중심의 콘텐츠와 장소나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하는 태깅 기능으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활발한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의 이러한 장점은 엄마가 되고 난 후 더 빛이 난다. 결혼을 준비할 때는 정보를 얻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이용했다면, 이제는 정보 플러스 진정한 소셜 네트워크로 쓴다. 인스타그램이야 밀레니얼이라면 누구나 이용하는 플랫폼이지만, 육아하는 밀레니얼 맘들에겐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현대판 육아일기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먼저, ‘#맘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인스타그램의 육아 관련 콘텐츠는 자녀를 위한 소비 활동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우리는 여러 전쟁에 투입되지만, 그중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게 바로 택배와의 전쟁이다. 아기가 집에 오기 전부터 수많은 육아 템들이 집에 도착하는데, 아기가 누워있기만 할 때 필요한 먹고재우니즘에 관련된 아이템들은 양반이다. 움직이고 놀기 시작하면 의류, 교구, 서적, 가구까지 무궁무진한 템들 사이의 선택전(戰)에 빠진다. 이때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다른 엄마들과 트렌디한 인플루언서들의 존재는 한줄기 빛과 같다. 그들이 사용해 보고 남기는 육아 템들에 대한 게시글은 직접 발품을 팔며 물건을 보고 비교해 구매해오던 과정을 단축해 늘 시간에 쫓기는 엄마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이는 인스타그램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데 빌미가 되기도 하지만, 똑똑한 밀레니얼 맘들은 양질의 정보만 쏙쏙 골라서 소비에 참고한다.


다음으로 ‘#맘스타그램 아이의 성장에 대한 꼼꼼한 기록과 전문가 뺨치는 육아 노하우를 공유하는 매개로 활용된다. 인스타그램에서 ‘육아소통’ 이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3244만 개의 콘텐츠가 있는데(2021년 4월 기준), 광고를 위한 상업 콘텐츠도 많지만, 아이를 데리고 가기 좋은 여행지 또는 체험 학습장, 집에서 할 수 있는 엄마표 촉감 놀이 등과 같이 육아를 하며 얻는 지식과 노하우는 물론이거니와 아이의 성취나 장점을 자랑한 게시글을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삼삼오오 동네 아주머니들과 모여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마다 옆에서 온갖 것에 참견하며 알짱거리는 내게 엄마는 저리 가 있으라고 꼬시며 믹스 커피를 한 모금씩 맛보게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에 딱지가 앉게 듣던 엄친딸, 엄친아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그 삼삼오오 모임에서 나왔던 거였다. 우리 엄마가 맺던 오프라인 모임을 밀레니얼 맘들은 온라인으로 진출해서 이어가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의 관계는 느슨한 연대가 특징이다. 끈끈하진 않지만 끈적하지도 않다.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지만, 서로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아마 내 딸은 자라면서 인친딸(인스타 친구 딸), 랜선아들(랜선 이웃의 아들)에 대한 TMI를 잔소리로 듣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맘스타그램’은 육아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도 톡톡히 담당한다. 가끔 새벽 2시에 쓴 듯한 구구절절함이나 열폭하는 심정으로 쏟아낸 배설 글은 살포시 비공개로 전환되기도 하지만, 적절한 수위로 작성한 육아 중 단상은 밀레니얼 맘의 서사로 남는다. 육아는 굉장히 많은 감정의 집합체이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아이를 보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황홀함과 ‘젠장, 내 인생은 이제 쫑인 건가’ 하는 절망감 사이에서 매일 널뛰기한다. 그때마다 감정을 쏟아내면 인스타그램의 있어빌리티를 해치겠지만, 다행히 우리에겐 ‘스토리’ 라는 기능이 있다. 24시간 동안만 공유된 후 휘발되는 인스타그램의 스토리엔 하트를 누를 수는 없지만, 누가 봤는지 확인이 가능해 적당히 관종증을 채워주면서 중2병의 낯간지러움을 눈감아주는 고마운 녀석이다. 맘스타그램을 통해 표현되는 기록들은 육아하며 보내는 일상 중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부터 아이를 키우기 힘든 현실에 대한 토로까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밀레니얼 맘의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엄마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모두 엄마로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 함께 길을 걷고 있는 동료가 필요하다. 밀레니얼 맘이 표현하는 엄마의 삶을 누군가는 이해하기 어렵고, ‘왜 저렇게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아이에 관한 내용을 자꾸 올리는 거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때로 우리는 모성의 그윽함에 관해 쓰기도 하고, 육아 전쟁에서 느끼는 웃픈 현실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은 모두 자신만의 속도와 강도로 나에게 맞는 모성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나의 방식을 풀어내고 남들을 엿보기도 하면서 새로운 밀레니얼의 모성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시국에 아이를 낳은 밀레니얼은 대체 누구십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