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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늘보 Apr 24. 2021

이 시국에 아이를 낳은 밀레니얼은 대체 누구십니까

세대에 대한 구분은 여러 분야에서 쓰인다. 마케팅을 공부하며 소비자학의 세대 구분에 대한 연구를 많이 접했다. 세대를 구분하는 것은 단순히 청소년기, 청년기, 중장년기와 같은 연령에 따른 구분뿐 아니라 해당 세대가 어떠한 역사적∙사회적 사건을 경험했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똑같은 청소년기여도 어느 시기를 살았는지에 따라 다르다. 예로 같은 1970년대의 청소년기와 2000년대의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의 차이가 큰 것처럼 말이다. 반면, 공통된 역사적∙사회적 사건을 공유한 세대에 따른 구분은 시간이 흐름에 함께 움직인다. 성장기에 전쟁을 겪은 세대, 청소년기에 IMF를 경험한 세대는 청년이 되고 중장년이 되면서 경제관이나 라이프스타일 등에서 비슷한 특성을 지니는데 이는 세대를 구분하는 개념 중 코호트(cohort) 개념에 속하는 구분법이다.


나는 베이비붐 세대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연령으로는 청년세대에 속하면서 코호트 구분으로는 밀레니얼 세대에 속한다. 초등학교 때 IMF를 겪은 K장녀로 조금 일찍 철이 들었고, 아이돌 2세대의 빠순이었으며, 7차 교육과정의 적용을 받으며 대학에 갔다. 대학을 졸업하는 시점부터는 88만 원 세대, N포 세대로 지칭되고 사회인으로서 이제는 단군 이래 최초로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가 되었다. 또한,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우리 세대는 딩크도 아닌 비혼족으로 대표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혼을 하니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자녀 계획’이다. X세대 까지만 해도 자녀 계획을 물으면 “딸 하나, 아들 하나 낳고 싶어요”, “한 명만 낳으려고요~”라는 식의 대답이 일반적이었겠지만, 나 때의 자녀 계획이란 아이를 낳을 건지 말 건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만큼 결혼을 했다고 당연히 자녀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가치관이 많이 형성되었음을 느낀다.


그런데 굳이! 이런 시대에 아이를 낳은 밀레니얼들은 대체 누구일까.

이 질문은 아이를 낳은 후 나 자신에게 많이 던진 질문이다. 누군가 내게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알고는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출산을 하기 전까지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었다. 알고만 있을 때와 엄마 됨의 현실이 어떻게 다른지는 이미 많은 콘텐츠를 통해서 표현되었으니 차치하더라도,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은 내가 자라면서 경험해 온 모성과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엄마들이 생각하는 모성이 다르다는 점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마케팅을 전공으로 한 탓인지 나는 그 차이의 원인을 ‘세대’에서 찾았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나온다. 우연한 기회에 그는 르네상스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그처럼 나에게 판타지가 되는 시대는 X세대가 살던 시절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영향도 있겠고, 10대를 아이돌 빠순이로 보냈던 사람으로서 팬덤이 시작되는 90년 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선배들에 대한 존중의 의미도 있다. 그렇게 뜨겁고 똑똑하던 X세대 선배들이 엄마가 되고, 육아를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어린이 시장이 고급화되기 시작했다. 계획적인 사교육, 엄마들 브런치 모임과 같은 문화들은 바로 이때 생겨났다. 그 문화를 잘 보여주는 드라마가 바로 품위 있는 그녀이다. 상류층 X세대 엄마들의 관심사와 열띤 교육열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X세대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밀레니얼 세대 엄마들은 어떤 모습일까. 이제 막 밀레니얼 맘들이 태동했기에 그들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진 않지만,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보면 밀레니얼 맘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았다.   


먼저 살펴볼 내용은, 가족관이다. 연구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는 가족중심적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기며 사회적인 기여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밀레니얼 세대 또한 가족을 중심으로 한 삶을 꾸린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핵심적인 차이가 있는데 바로 ‘합리성’이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명절날 아빠 쪽 친척을 먼저 만나고 엄마 쪽 친척은 명절 끄트막에 만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부부들은 이러한 관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베이비붐 세대가 중요시하는 가족중심적 가치관은 가정 내에 이미 형성된 문화를 따르는 것을 의미하지만, 밀레니얼은 기존의 문화가 합리적이지 않거나 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최선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가부장제 하에서 이루어지던 성 역할을 수용하지 않고, 부부 각자의 상황과 사회적 변화에 발맞추어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소비 습관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열심히 돈을 벌면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자녀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해 부채도 높다. 성인이 된 자녀에게도 계속 지원을 하고 있어 그들의 자녀인 밀레니얼 세대는 버는 돈에 비해 지출 수준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재무구조는 밀레니얼 만의 독특한 소비 특성을 만드는데, 바로 ‘합리적 가치소비’이다. 청년층은 생필품에 있어서는 최대한 싸고 합리적인 선택을, 그 외의 소비에서는 심리적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가치소비를 한다. 이는 밀레니얼의 육아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당근마켓을 통해 중고로 육아템들을 구입하는데, 중고로 저렴하게 산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합리적인 소비 활동을 증명하는 셈이다. 육아에 필요한 소모품이나 오래 사용하지 못하는 옷이나 장난감은 최대한 싸고 합리적으로 구입하지만, 그 외의 소비에서는 브랜드나 심리적 만족을 줄 수 있는 상품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가치소비를 한다.


세 번째, 정체성이다. 밀레니얼 부모는 누구누구의 아빠, 엄마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한 존재다. 우린 더 이상 출산이 필수가 아닌 시대에 출산을 했다. 출산을 한 이유는 각자 다양하겠지만, 우리의 공통점은 자녀를 낳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인생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 충분히 고찰한 후에 자신의 의지로 출산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많은 고민과 성찰 끝에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육아가 쉬운 것은 절대 아니지만, 부모라는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가치관과 철학을 바탕으로 육아를 수행한다. 태교여행, 만삭촬영, 주수 사진 등의 문화는 밀레니얼 부모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길고 고된 임신 기간을 즐기고자 노력하며, 이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육아 방식에 있어서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방식이나 부모 세대로부터 배운 것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미국식, 네덜란드식, 프랑스식, 유대인식 같이 다양한 육아 문화를 접하고, 아이 교육 역시 몬테소리식, 발도르프식 등의 깊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 스스로 교육관을 세우고 있다.


각 세대마다 처한 환경은 다르다. 그런데 부모 됨과 모성에 대해서는 획일적인 잣대가 향한다는 것을 느낀다. 베이비붐과 X세대, 그리고 밀레니얼. 이들이 살아온 환경이 다름에 따라 가족관과 경제관이 다르듯이 추구하는 부모의 모습과 모성 또한 다를 수 있다. 가정은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이다. 사회가 변하는 것은 가정에서 가장 빨리 느낄 수 있다. 당장 명절에 여자 쪽 가족들을 먼저 보러 가지 않아도, 아이 이유식을 만드는 주 담당자가 아빠가 되지 않더라도, 갑작스러운 어린이집 휴원 소식에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한 해결책을 부부 공동의 일이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기존 세대가 해오던 방식이나 성별에 따라 주어지는 역할이 불편할 수 있다. 그 불편함을 알아채는 것. 그래서 새로운 규칙과 역할을 세워가는 것이 시대에 맞는 가정을 만들어가는 시작이 아닐까. 아직 밀레니얼 세대의 결혼생활과 출산, 육아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지만, 밀레니얼 세대가 이제 막 본격적으로 육아계에 발을 내딘 만큼 관련 논의가 다양해져 새로운 모성과 부모에게서 자라는 아이에 대한 관심 또한 사회적 화두로 오르길 바란다.



■ 참고문헌
권정윤∙김난도, 소비자학 분야에서의 세대의 개념, 범주 및 특성에 관한 연구, 소비자학연구 제30권 제5호, 2019.
김정은∙구혜경,  X세대 기혼여성 소비자의 생애사적 관점에서의 소비생활 탐색, 소비문화연구 제20권 제4호, 2017.
이은희, 20대 청년세대의 고민과 정책문제에 대한 탐색적 연구, 소비자정책교육연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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