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오 올리오 @아시아나 라운지
멜번에서의 1년 생활이 결정된 이후 아이들과 함께하는 첫 장거리 비행이라 비즈니스 좌석을 예매했다.
비즈니스석 이용은 남편도 나도 처음이었다.
사실 말이 비즈니스지, 1,3세 아이 둘을 데리고 가는 비즈니스 좌석이 어디 호사스럽기 하려나만. 예상했던 대로 180도로 누워서 갈 수 있다는 거 외엔 딱히 좋은 점도 없었다. 앞, 뒤, 옆 좌석을 훑어 보며 다들 10시간 넘는 비행에 편하게 가기 위해 비싼 돈을 내고 티켓을 끊었을 텐데우리 애들로 인해 불편하시면 어쩌나 하는 안절부절은 덤이었고-
그 유명하다는 아시아나 비즈니스의 쌈밥 기내식은 전혀 먹지 못했는데, 내가 그 비싼 비행기 티켓이 아깝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라운지 이용 덕이었다.
요즘은 신용카드로 라운지 이용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난 그런 카드가 없어서 비즈니스 라운지를 이용해본 경험도 처음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곤 조용한 식당을 가본 적이 없고, 가족 모임으로 고급스러운 식당을 가게 되더라도 다른 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룸이 있는 곳을 예약해왔다.
그런데 비즈니스 라운지를 처음 가봐 감이 없었는데 꼭 값비싼 레스토랑에 온 것 마냥 조용해 이 평화로움이 우리로 인해 깨어질까 긴장이 됐다. 입구 쪽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비행 중 꺼내려고 한 스티커 북들을 꺼냈다. 다행히 아이들은 스티커 북과 라운지 음식들에 빠져 평소보다 조용하고 얌전하게 시간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아이들에게 정중한 태도를 가르치고 주변에 앉은 차분하고 정돈된 모습으로 각자의 여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비싸고 호사스럽긴 하지만, 아이들이 이런 곳에서 호사스러운 경험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생각이 들었다.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에는 수업 시작 전, 아이의 외투 시중을 드는 교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외국 영화 속 귀족들의 파티에 나오는 고급 저택 속 집사처럼 외투를 받아주고 입혀주는 선생님이라니. 어딘가 조금 멋쩍고 어색하지만, 작가는 이에 대해 말한다.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내가 우리 애들에게도 어린 시절 몇 번은 호사스러운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다. 허세나 과시욕은 당연 아니다. 과시할 만큼 가진 것이 없을 뿐더러 비싸고 좋은 것이 반드시 아이들에게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단지 조용히 해야 하는 곳에선 떠들면 안되고, 사람들이 쉬고 있을 때는 내가 뛰어 놀고 싶어도 소란스럽게 굴어선 안된다는 걸 가르치듯이 때와 장소에 맞는 에티켓을 배우기 위해 그런 매너가 요구되는 곳에 가서 직접 서비스를 받고 경험해보며 스스로를 통제하고, 예의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인 거다.
1, 3세 딸들의 첫 비즈니스석과 비즈니스 라운지는 35세 엄마에게도 처음인 경험이었고, 애들 시중을 드느라 나는 그 호사를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지만, 그런 아쉬움 보다는 무사히 비행을 마쳤다는 안도감과 울음은 몇 차례 있었지만, 큰 소란은 없었다는 다행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self-control과 manner를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말과 잔소리로, 훈육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그 곳의 매너를 지키는 부모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 체득하고 스며들어 가는 과정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멜번에서 1년 간 지내게 되었다고 했을 때 지인들이 말했다.
“애들이 좀 더 크면 좋을텐데 -”
“아직 영어 배워오기엔 이르잖아?”
그런데 내 생각은 달랐다. 인터넷 창만 열면 AI가 매끄럽게 번역을 해주고 사진으로 찍기만 하면 5초 내에 해석이 나오고 음성 파일로 통역을 해주는 지금 시대와 태교 때부터 영어를 듣고, 한글 말을 하기 전부터 영어 노출을 시키는 요즘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 엇박자와 괴리감에 마음 한켠이 불편했다.
아직 아이들의 교육을 논하기엔 매우 이른 시기이지만, 굳이 굳이 멜번에서 지내는 1년 동안 내가 세운 아이 교육에 관한 목표는 딱 하나. 바로 “적응하는 법”이다. 낯선 사람, 낯선 환경, 낯선 문화, 낯선 언어 모든 게 낯선 이 곳에서 아이들이 낯설다는 것은 나쁜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이고, 배울 수 있는 기회이고, 처음이 어렵지만 두 번, 세 번 반복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거다.
떠드는 아이에게 “조용히 해” 라고 하기 보단 “주변을 봐, 이 곳은 조용히 해야 하는 곳이야” 라고 말했을 때 아이가 더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새로운 걸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법을 어린 시절 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도록 하는 것이 진짜 글로벌한 교육이라 생각한다.
근데 글로벌이란 단어는 어째서 오피셜하게나 프라이빗하게나 쓸 때마다 오글거리고 민망스러운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