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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늘보 Jan 05. 2024

더운 건 싫지만 이런 맛과 웃음을 주는 여름이라면

옥수수

한여름 뜨거운 볕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기다란 옥수수 나무는 더위에 입맛도 잃은 듯 앙상하다. 가느다란 몸에 제 몸통 보다 넓고 굵은 이파리와 열매를 매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순간 사과나무나 귤나무가 야박하단 생각마저 든다. 등치에 맞지 않게  열매나 매달고 있는 니들은 얄상한 옥수수 줄기를 보면 민망하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푹푹 찌는 날씨에 다닥다닥 붙어서 서로 엉켜있는 옥수수 잎들과 굵은  열매들을 보면 신영복 교수가 말한 교도소의 여름을 떠오르게 한다.  밤 좁은 교도소 방 안에서 칼잠을 자다 보면 옆 사람을 37도의 열덩어리로만 여기게 되어 증오하게 된다는 거 말이다.


옥수수는 늦여름의 선물이다. 끝나가는 여름, 지긋지긋한 뙤약볕아 제발 좀 그만 내리 쬐라! 싶을 때 어리석은 자들아 뜨거웠던 날들을 있는 그대로 즐기던 시간을 그리워하라며, 떠나는 마당에 주고 가는 흔적과 같다.



몇 해 전 서울 집을 정리하고 근교의 한적한 곳으로 귀농하신 친정 부모님은 집 앞 밭에 옥수수를 잔뜩 심었다. 거실 창으로 밭이 한 눈에 보이는데, 딸들은 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구경하길  좋아했다. 트랙터가 와서 밭을 가는 모습부터 옥수수 씨를 뿌리는 모습까지, 그리고 그 씨앗이 자라고 자라 자신들의 키를 훌쩍 넘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엄마와 아빠의 키를 넘기는 모습까지 지켜본다. 그렇게 봄이 지나고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 옥수수 열매가 알맞게 익는다.



3대가 모여 옥수수를 따는 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통이 큰 티셔츠를 입고 얼굴이  잡담도 잊고 옥수수 열매를 따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에게 이 모든 게 놀이이다. “아냐! 그건 따면 안돼”, “아직 옥수수 껍질 벗기는 거 아냐” 하는 잔소리라도 있어 무더위의 옥수수 수확이 지루하지 만은 않다. 함께 얼굴이  아이들은 옷을 다 벗고 기다란 호스에서 나오는 찬물로 찬물 샤워를 한다. 그 순간을 함께하다 보면 ‘여름은 이렇게 즐기는 거지’ 싶다. 내게도 여름은 더워서 좋고 겨울은 추워서 좋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여름은 더워서 싫고 겨울은 추워서 싫은 불만쟁이가 되었다.



그렇게 수확한 옥수수는 바로 먹었을 때가 가장 맛있다. 이때 큰 솥이 필요한데, 갓 딴 옥수수를 한 번 삶은 후 냉동실에 얼리면 옥수수 본연의 촉촉함이 유지되어 가을, 겨울까지  먹는 듯 든든하게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수확한 옥수수들을 그 자리에서 모두 삶는다.  나는 옥수수 열매를 찜기에 넣고 삶은 후 뚜껑을 열면 수증기와 함께 채 가시지 않는 풋풋향 내음이 슬며시 난다. 옥수수에 배어 있는 뜨거운 김을 입으로 후후 불며 앗뜨거  알씩 집어 먹다 보면 먹는  풋풋한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버터에 굽거나 치즈를 올리고, 각종 향신료를 뿌려 마약이란 이름을 달고  옥수수 메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문구점에서 산 싸구려 색조 화장품을 어설프게 눈두덩이에 바른 어린 학생들을 보는 기분이다. 옥수수는 제 모습 그대로 굵은 몸통에 박힌 알들을 뜯어 먹는 게 가장 맛있다. 다 삶아진 옥수수 껍질을 까주면 옆에 앉아 “엄마 다 식었어?”, “엄마 이제 먹어도 돼?”, “나 통째로 들고 먹을 거야!” 하는 세 살 아이의 재잘거림이 들린다. 아이에겐 옥수수 알맹이를 하나씩 따먹는 게 얼마나 즐거운 놀이일까.


멜번에 온 후 마트에서 옥수수를 사서 처음 아이들에게 삶아주었을 때 도무지 언제까지 삶아야 하나 감이 오지 않았다. 그 이유가 한국에서 자주 먹던 옥수수는 잘 삶아지고 있는지 삶는 중간에 눌러보았을 때 젤리처럼 살짝 말랑해진 느낌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데, 호주 옥수수는 탱글탱글한 식감이라 다 삶아진 후에도 탱탱하기 때문이다. 한국 옥수수가 찰지고 고소한 맛이라면 호주 옥수수는 탱탱하고 달콤한 맛이다. 물기와 당도가 더 높은  맛이다.



아직 그 미묘한 차이를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옥수수를 보고 좋다고 달려든다. “한국 옥수수가 좋아 호주 옥수수가 , “둘 다  우문현답을 내놓으면서. 맞다. 비교조차도 어른의 눈으로 바라본 거지.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아이였던 시절로  얻는다는 거다.  손가락으로 알알이 뜯어 먹다가 한입에 잔뜩 베어 물고 채 입에 들어가지 않은 알맹이들을 양 볼에 가득 묻힌 얼굴들을  나 또한 체면이고 뭐고  와구와구 씹어 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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